글쓴이 : 하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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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천만(危險千萬)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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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학기 대학원 세미나 과목으로 ‘위험형법론’을 개설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그의 저서 ‘위험사회‘에서 언급한 위험은 과학기술발전이 고도화된 후기산업사회에서 나타날 새로운 형태의 위험이다. 산업화와 더불어 부산물로 내던져진 다양한 위험을 예방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형법이 위험예방의 도구로서 투입되어야 하는가, 형법이 적절한 안전 확보 수단인가, 위험사회의 새로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형법적 보호영역의 확장과 가벌성의 양적 확대가 법치국가형법의 이념에 부합하는가 등등이 세미나의 핵심주제이다.

    대한민국도 선진산업사회다. 그러나 고도로 산업화된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 사회는 선진적 과학기술에 내재된 위험뿐만 아니라 산재사고나 교통사고와 같은 후진국형 위험이 여전히 혼재되어 있는 위험사회다. 하루에도 5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고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5000명이 넘는다. 산재사망률이나 교통사고 건수 및 사망자 수가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다. 잊을만하면 대형 인재사고가 터져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도 붙어 다닌다.

    국격은 경제가 성장한다고 함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국제회의에 참석한다고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높았던 것도 아니었던 그 국격이 일어나서는 안 될 대재난으로 꽃다운 청소년들의 귀하고 귀한 생명과 함께 침몰하고 말았다. 압축성장 과정을 거쳐 비교적 짧은 기간에 선진국 수준으로 경제는 발전했지만 압축성장이 불가능한 사회체계는 여전히 저급한 수준이다. 경제성장과는 달리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성장은 압축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천천히 단계적으로 발전하면서 발생될 위험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예방과 안전을 위한 규제와 법제도를 정비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 채, 그저 성장과 이윤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온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나라를 위험천만한 사회로 만든 것이다. 위험이 어디에 도사리고 있다가 튀어나올지 예측 불가다.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할 생명과 미래, 안전보다는 이윤과 효율이 먼저였다. 경제부흥이나 경기활성화 관점에서 규제를 풀다보면 안전도 풀어지게 마련이다. 위험을 예방하고 안전을 강구하는 법과 제도는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경제성장과 개발에 드라이브를 걸면 대기업들은 자본의 효율과 이익 추구에 몰두하면서 사회적 책임경영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급속성장의 이면에는 부패와 부조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안전예방의 비용보다는 뇌물이 통하고 로비의 비용이 더 적게 드는 사회에서는 후자를 택하기 마련이다. 안전장치와 제도, 안전을 담보하는 규제는 느슨해지고 감독과 감시의 눈은 반쯤 감겨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안전의식은 우리의 몸속에 내면화, 생활화되지 못한 채 위험에 무뎌지고 안전 불감증만 커지게 되었다. 이제라도 생명, 안전, 미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라는 값지고도 값진 교훈을 얻어야 한다.

     

    ◊ 이 글은 2014년 5월 12일자 법률신문 14면 <서초포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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