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하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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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법관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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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판(鄕判)’, 대법관에 오르면 우러러 보다가도 ‘황제노역’ 같은 사건이 터지면 비난의 화살을 받아야하는 그들의 운명이 참으로 딱하다. 올곧고 청빈하여 존경받는 향판도 많을 텐데 지금 여론은 그들을 싸잡아 낙인을 찍고 있다.

    일당 5억 원으로 벌금을 때운 그룹 전 회장과 ‘향판’ 법원장을 희생양으로 삼아 문제를 대충 얼버무리려 한다. 향판의 탓으로 돌려 아예 지역법관제를 폐지하겠다는 사법부 대책도 나왔다. 사법부 스스로 지역유지, 지역법조인 등과의 유착 또는 유착 가능성을 인정한 꼴이다. 사법부가 여론에 떠밀려서 제도의 존폐를 결정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제도를 없앤다고 이런 사태가 더 이상 생기지 않을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2년 주기 순환 인사로 ‘향검(鄕檢)’ 없는 검찰에서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스폰서 비리를 보면 인사제도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제를 향검과 향판의 문제로 축소하거나 덮어버려서는 안 된다.

    서울 중심의 대한민국에서 지방에 사는 것도 서러운데 토호세력과 유착하는 향검과 향판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불공평하고 비겁하다. 이미 서울 판사들이 삼성 이건희, SK 손길승, 선박왕 권혁 등등 재벌총수들의 환형유치 일당을 1억원, 3억원으로 산정한 경우가 있었으니 더욱 그러하다.

    이번 사태는 향판과 향검, 전관예우, 법조윤리, 재판 당시 양형기준의 부재, 지나친 환형유치 재량의 폭 등 모두가 얽혀있는 문제다. 한 지역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향변(鄕辯)이나 지역 유지들과 친분이 생겨 법과 양심의 한편에 인연이 자리하게 되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역법관제는 장점이 많아 도입한 제도다.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해 소송이 지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모두가 서울과 수도권 근무를 원하는 현실에서 그나마 지역법관제가 있어서 인사적체를 해소할 수도 있으니 대부분의 판사들이 만족하는 제도다. 문제는 서울판사냐 지방판사냐가 아니라 사법부의 법관이 국민을 만족시키지 못한 판결을 내린 데 있다.

    ‘황제노역’ 해프닝은 검사와 법관의 재량이 크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서울에서 이미 억대의 노역장 일당 판결이 있었기에 지방에서도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통제받지 않는 재량의 폭이 크면 클수록 불평등과 불공정이 생길 여지도 크다. 이 사건 재판 당시에는 횡령배임죄나 조세포탈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검사의 선고유예 구형과 항소심의 벌금 대폭 할인, 일당 5억 원이라는 판결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양형기준이 시행된 이후에 재벌총수들이 ‘3·5(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법칙 ’이라는 특혜를 누리지 못하고 실형이 선고되어 줄줄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현 상황을 보면 향판의 문제가 아님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래서 환형유치 기간과 노역금 산정기준, 환형유치로 대체하는 벌금액의 하루 상한선 등을 정해서 공개해야 한다. 벌금형이 병과되는 가중처벌범죄의 경우 벌금형 양형기준도 빨리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에 의한 감시가 가능해지고 재판부마다, 지역마다 생길 수 있는 편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2014년 4월 10일자 법률신문 14면 <서초포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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