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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판사의 통일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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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3년 충남 아산군 탕정면에서 태어난 이 모씨는 서울 성남중학교 재학중 한국 전쟁이 터진 직후 학도의용군으로 입대했지만, 1950년 9월쯤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이씨의 부친은 이씨가 실종된 지 10여 년만인 1961년 12월 사망했지만, 가족들은 실종된 이씨의 생사를 알 길이 없어 상속재산 처리도 못하고 있다가 1977년에야 이씨에 대한 실종선고를 신청했다. 이씨의 형제들과 모친은 이듬해 상속재산을 분할하여 나누어 가졌다.

    그런데 이씨의 동생이 수소문 끝에 이씨가 북한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2004년 5월 브로커를 통해 중국 옌지에서 54년 만에 이씨와의 상봉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씨는 북한 당국 몰래 남한의 가족을 만난 것이 들통이 나 조사를 받던 중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2006년 사망하고 말았다. 이씨가 사망한 직후 이씨의 딸이 탈북하여 2009년 6월 한국 입국에 성공했다.

    한국에 들어온 이씨의 딸은 먼저 아버지 이씨가 2006년까지 살아있었음을 증명하여 이씨에 대한 실종선고를 취소시켰고, 이씨의 부친이 사망한 1961년 12월 당시 이씨가 생존해 있었다는 점을 들어 이씨의 형제들을 상대로 상속재산을 회복시켜달라는 소송을 냈다.

    최근 탈북민들이 크게 늘면서 이씨의 딸과 같이 남한으로 와서 상속을 주장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아가 북한에 있는 주민이 북한에서 남한으로 대리인을 보내 상속을 주장하는 소송까지 생겨나고 있다. 핏줄과 금전관계는 얼어붙은 남북관계도 뚫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통일은 대박’일 수 있지만 이 사건의 이씨 형제들처럼 ‘통일은 아닌 밤에 홍두께’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러한 남북교류 증가로 인한 상속분쟁에 대비해 2012년 만들어진 법이 ‘남북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등에 관한 특례법’이다. 이 법은 이산가족이 되어 남한주민으로부터 상속을 받지 못한 북한주민은 민법에 따라 상속회복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민법상 상속회복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상속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 규정을 북한주민에게도 적용해야 하는가가 이씨의 딸이 제기한 소송의 핵심이었다. 이 민법규정을 적용하면 이씨의 형제들은 이씨가 살아있는데도 죽은 줄로 알고 1978년에 상속재산을 분할했고, 이씨 입장에서는 이때 상속권을 침해당한 것이므로 늦어도 1988년까지는 상속회복청구권을 행사하였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특례법에는 북한주민이 상속회복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분단 60년 동안 남북간 교류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북한 주민은 상속권을 전혀 행사할 수 없었는데 남한 주민들과 같이 북한 주민들에게도 10년의 기한을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북한주민에게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어 10년의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상속회복청구권의 행사시기를 제한하는 취지는 10년이 지난 후에는 상속인들 사이의 법률관계를 안정시키자는 것인데 북한주민에 대해서만 예외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이씨의 사건을 심리한 1심 법원은 북한주민의 상속회복청구권 행사기간에 대해 예외를 규정한 법률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남북분단이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남한주민과 같게 10년의 제한을 두는 것은 사실상 북한에 있는 상속권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가혹한 결과가 된다는 점에 주목해 북한주민은 상속권 침해된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상속회복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원고에게 상속재산을 나누어주라는 승소판결을 한 것이다.

    이 판결문 내용 곳곳에는 남북분단의 역사적 특수성, 분단과 이별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산가족의 기본권에 대한 담당판사의 깊은 고민과 사색이 엿보인다. 미리 준비하지 않은 통일은 우리민족에게 대박은커녕 재앙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의 판사가 우리사회에 던진 화두를 시민사회 그리고 정부와 국회가 받을 차례다.

     

    ◊ 이 글은 2014년 2월 18일자 한국일보<아침을 열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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