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황필규
  •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연락처 : 02-3675-7740
이메일 : hopenvision@naver.com
홈페이지 : http://www.kpil.org
주소 :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8-1
소개 : 같이 꿈꿀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서로 다른 꿈을 가지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꿈이 커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줄 사람, 꿈을 지키지 못할 때 꾸짖어줄 사람, 꿈을 버리지 말라고 토닥거려줄 사람...

이 포스트는 1명이 in+했습니다.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베이비박스, 입양특례법, 그리고 대안적 양육에 관한 논쟁에 부쳐

1

베이비 박스

저는 막 태어났어요.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얘기하려고 해요. 법에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얘기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 제가 여러분처럼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제가 어떤 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상상하면 돼요. 그때 제가 무슨 얘기를 하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돼요. 아니 꼭 그러셔야 해요.

비혼모인 엄마는 저와 헤어질 것을 고민해요. 제 ‘안녕’을 걱정하신다고요? 먼저 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려고 노력해주세요. 모든 것은 제 생명에 관한 것이라고요? 먼저 제가 목숨을 부지시켜야 하는 생명덩어리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 인격체라는 것을 생각해주세요. 버려진 혹은 버려질 수밖에 없는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라고요? 버려지지 않을 수 있었든 혹은 버려져서는 안 되는 아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해주세요.

엄마. 사랑해요. 비혼모에 대한 편견, 특히 미성년 비혼모에 대한 편견 너무 심해요. 어떤 분들은 비혼모에 대한 편견 때문에 아이들이 버려진다고 해요. 하지만 눈치가 보여서 자기 자식도 직접 키울 수 없는 사회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에요. 당당하게 맞서세요. 그리고 저한테 꼭 물어보세요. 주위의 시선 때문에 너를 버려도 되겠느냐고. 생계유지 수단도 없고 먹고 살기 힘들지요. 보건복지부이고 구청이고 다 알아보세요. 엄마가 아는 것보다는 더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물론 턱없이 부족해요. 생계를 유지할 수도 없는 사람을 방치하는 정부는 정부라고 할 수 없어요. 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엄마가 굶어 죽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정부도 그 상황을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저를 버리셔도 돼요. 엄마를 원망하지 않을게요. 엄마. 사랑해요.

많은 분들이 저 같은 아이를 어떻게 버릴 것인가를 놓고 목소리를 높여요. 출생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손쉬운 입양이냐 아동유기냐의 양자택일의 문제라고 얘기해요. 어떤 경우든 저는 엄마와 함께 살 수 없게 돼요. 엄마에게 버려지는 것도 가슴이 찢어지는데 엄마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거짓 출생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분들. 제 의견을 한 번이라도 들어볼 생각이나 하셨나요? 베이비박스. 일 년 동안만 수백 명,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많은 아이들이 단기간에 작은 공간에 집중적으로 버려지고 있어요. 국제적인 베이비박스 논란의 도화선이 된 체코의 경우 전국에 약 50개의 베이비박스가 있고 지난 6년 동안 60여 명의 아이들만이 버려졌다고 해요. 과연 꼭 버려졌어야 했느냐, 우리가 이러한 사태에 대해 책임은 없느냐는 자문을 던지는 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아동유기의 공간 운영자는 수백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칭송받고 이를 광고한 언론은 올해의 기자상을 받아요. 해외입양 반세기 동안 세계 해외입양의 1/3인 15만 6천 명의 한국 아이들이 해외입양 됐어요. 아이들을 엄마와 떼어놓고 버리는 분야에서 세계신기록 금메달이 여러 개예요. 기네스북에 올려서 국위선양이라도 해야 할까요? 앞으로 수 세기 동안 깨지기 어려운 기록일 테니까요.

아이들을 입양한 분들, 낙태에 반대하는 분들, 덩달아 춤추는 언론은 아동유기의 원흉이 개정된 입양특례법이라고 해요.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들이 아이들에 대한 포기각서를 써야만 했던 과거를 알고 계시죠? 태어나기도 전에 버림받는 그 심정, 한 번이라도 헤아려보신 적이 있나요? 형식적인 절차만 좀 거치면, 입양의 불가피성, 양부모의 자격 등은 거의 고려되지 않고 아주 편리하게 입양이 이루어졌지요. 엄마들에게 양육에 관한 충분한 상담이나 양육정보의 제공이 이루어진 적도 거의 없었고요. 입양인들의 친부모 정보에 대한 접근은 입양인이 입양기관에서 얼마나 난리를 치느냐에 따라 그 정도가 결정됐지요. 출생기록은 조작되고 은폐되고, 출생신고가 제대로 안 돼서 아이들이 값이 더 매겨지면서 도매, 소매로 재판매된 선례도 있다는 것을 모른다고 하실 건가요? 그런 것 좀 고쳐보자고 법이 개정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계신 거지요?

“개정된 입양특례법 때문에 출생신고를 해야 하고, 신분노출을 두려워하는 비혼모들이 아이들을 입양시킬 수 없어 버릴 수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언론에서는 이것이 절대 진리, 절대 명제처럼 되어버렸어요. 이게 제가 태어난 나라의 상식 수준인가요? 입양특례법은 출생신고에 대해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않아요. 법원허가가 도입되어서 그렇다는데 법원허가는 민법에 의해 모든 입양에 적용되고 입양이 정말 불가피한지, 양부모가 정말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예요. 제가 입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 양부모로 나서는 사람들이 저를 기를만한 사람들인지 확인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아무한테나 입양되기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저를 위한답시고 생명 운운하는 그런 것, 제발 그만해주세요.

신분노출이 두려워 비혼모들이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다고요? 친부모 정보, 입양인 정보의 제대로 된 보호와 제대로 된 공개가 개정 입양특례법의 정신인 것쯤은 알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 여러분의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나요? 여러분의 아이들한테 말씀해보세요.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고요? 그런데 비혼모는 가능하다고요? 비혼모는 아이들을 버릴 수밖에 없는 특별히 이상한 사람들인가요? 비혼모 위한답시고 사생활 보호 운운하는 그런 것, 재발 그만해주세요. 허위출생신고는 범죄예요. 예전에 입양의 효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법원과 정부가 비혼모 보호를 위해서 허위 출생신고를 허용했었다고요? 그런 적 없거든요. 제발 거짓말만은 하지 말아 주세요.

출생신고는 제가 누구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이에요. 엄마와 여러분이 제 가슴을 찢어놓고 버리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제 존재 자체, 제 정체성을 앗아갈 권리는 엄마도,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없어요. 제 생명과 제 미래를 외치시지만 제 존재와 정체성이 가짜면 제 생명도 제 미래도 가짜일 수밖에 없어요. 제가 말씀드리지 않으면 이걸 정말 모르시나요?

이제는 바꿔야 해요. 개정 입양특례법은 체계 없이 함부로 이루어졌던 친부모와 아동 분리의 틀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화두 던지기였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였어요. 올바른 대안적 양육을 얘기해보아요. 친부모와 아동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어떠한 지원과 보호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어떤 경우에 어떤 조건에서 아동이 친부모와 분리되어야 하는지, 분리될 경우 어떤 시스템에서 아동이 보호되어야 하는지, 친부모와의 재결합은 어떤 조건으로 어떻게 촉진되어야 하는지, 일시적인 분리 보호가 적절하지 않거나 불가능하다면 입양이라는 영구적인 분리 보호는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이미 반세기 전에 얘기됐어야 해요. 아니면 적어도 복지법제가 붐을 이뤘던 20년 전에는 얘기되고 바뀌었어야 해요. 정부는 백번 혼나도 싸요. 이런 일을 제대로 하라고 우리가 정부를 만들고 세금 내는 것 아닌가요? 장기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당장 버려지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느냐고요? 아니에요. 장기적인 문제도 아니고 아이들이 당장 버려질 필요도 없어요. 직접 양육에 관한 충분한 상담이나 양육정보의 제공만 있었어도 다수의 친부모가 입양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연구조사 결과도 있잖아요. 시설아동 한 명당 1~2백만의 예산이 소요된다는데 그 돈을 비혼모에게 주면 재정적인 문제는 쉽게 해결 돼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조금만 시스템을 고치면 대부분의 문제는 당장 해결할 수 있어요. 베이비박스를 홍보해 온 수백 건 기사의 반만이라도,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외치는 열정의 반만이라도 이러한 문제를 제기했다면 벌써 거의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았을 거예요. 닫힌 사회, 갑갑한 사회는 없어요. 닫힌 마음, 갑갑한 마음만이 있을 뿐이에요.

이제는 심지어 이주아동 베이비박스까지 만든다고 해요. 법으로 아이를 기르지 못하게 하고, 아동복지의 영역에서 배제해놓고 베이비박스에 버리라고 해요. 이런 나라에서 법이 의미가 있기는 한 건가요? 좀 있으면 원전 수출하듯이 베이비박스 수출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겠지요. 노인유기도 아동유기 못지않게 심각하다는데 이제 곧 노인박스 만들자는 얘기도 나오겠지요. 저는 이런 나라에 태어난 것이 절망스럽고 이런 나라에서 살아 있다는 것이 부끄러워요.

여러분의 힘을 모아 주세요. 저 같은 아이한테 관심을 가진 여러분 모두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은 사회를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믿어요. 조금만 한 발 물러서서 세상을 보세요. 말씀을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여보세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수십만 명의 아이들을 기억해주세요. 제가 보이시나요.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엄마, 그리고 여러분. 사랑해요.

 

◊ 이 글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블로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http://withgonggam.tistory.com/1326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