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하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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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자생존, 또 다른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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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연시에는 사자성어가 홍수처럼 넘친다.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들이 너나없이 신년인사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쏟아낸다. 짧은 네 글자의 조합으로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고 유식해 보이기도 하니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자도 어렵거니와 중국의 고사성어다 보니 화자와 청자 사이의 소통으로 좋은 방식은 아닌 것 같다.

    교수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해 한 해를 잘 표현한 사자성어와 새해의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를 발표하기도 한다. 교수신문은 2013년 희망의 사자성어로‘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의‘제구포신(除舊布新)’을 선정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1년이 미래지향적이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고 평가하면서 2013년을‘도행역시(倒行逆施)’로 특징졌다. 순리를 거스르는 일들이 많았다는 질책이다. 2014년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로는‘轉迷開悟(전미개오)’를 선정했다.‘미망에서 돌아 나와 깨달음을 얻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속임과 거짓에서 벗어나 진실을 밝히고 새로운 한 해를 열어가자는 취지일 것이다. 필자도 참여한 교수 설문조사는 나름대로 우리 현실을 잘 대변하는 고사성어를 골랐다고 생각한다. 모두 다 어려운 한자성어지만 그 의미는 와 닿는 한자어들이다.

    적자생존0

    고사성어는 아니지만 유행하는 사자성어‘적자생존’을 소개한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은 원래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이나 집단이 살아남는다는 의미다. 경쟁이 치열한 우리의 현실에서는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살아남고 1등만이 기억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는 다른 뜻도 있다. 한자는 다르지만 적자(赤子)를 본 듯해야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잘 살 수 있다는 뜻으로 전용해서 쓰기도 한다. 자신의 이익만 꾀하다보면 친구도 잃고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살피고 배려해야 동반 상생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또 다른 뜻도 있다.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보고 들은 것을 바로 적어 놓아야 나중에 재생할 수 있다는 유머러스한 유사 사자성어다. 원래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말이지만 이 단어는 지금의 청와대에 딱 들어맞는 말인 것 같다. 신문이나 방송에 비춰진 수석비서관회의 모습을 보면 그렇다. 대통령 말씀에 고개 숙이고 받아 적기에 열중하는 수석비서관들의 모습이 적자생존을 실천하는 것 같다. 국무회의장의 풍경도 다르지 않다. 회의가 아니라 일방적 지시와 말씀뿐이다. 비서관들의 의견개진과 대통령과의 의견교환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내 말이 곧 진리요 정의이니 믿고 따르라’는 자세라면 누가 감히 토를 달거나 비판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비정상과 불법으로 단정하고 타협하지 않겠다니 국민들은 그저 숨죽이고 따르라는 말인가. 교수들이 뽑은 2014년 희망의 사자성어에는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여민동락(與民同樂)도 있다. 연말에 부정적 사자성어 성적표를 받지 않으려면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 이 글은 2014년 1월 9일자 법률신문 14면 <서초포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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