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장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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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의 변호인, 오늘의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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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변호인’을 개봉하자마자 달려가 보았다. 남녀간 달콤한 로맨스도 아니고 화끈한 액션장면도 없는데다 고작(?) 75억원으로 만들었으니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급도 아닌데, 이 영화가 한국 영화사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관객수 1,0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이 영화의 성공은 2010년 출간된 후 1년 만에 100만부 넘게 팔려나갔던 인문서적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돌풍을 떠올리게 한다. 책으로 치면 인문서적과도 같은 이 영화가 이런 대기록을 작성하는 것은 송강호를 비롯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 국민들이 현실의 사회에서 느끼는 정의에 대한 갈증, 그리고 우리를 위해 부정과 맞서 싸워줄 영웅에 대한 기대감이야말로 ‘변호인’ 흥행의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 영화 '변호인'

    ▲ 영화 ‘변호인’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다 보니 이 영화의 허구와 진실의 경계가 어딘지에 대한 궁금증도 무성하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부림사건은 실제 사건이다. 1981년 부산지역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있던 청년 19명을 용공세력으로 몰아 계엄법, 국가보안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 위반죄로 3차례에 걸쳐 기소한 사건이다.

    영화 중 송우석 변호사가 변호를 한 국밥집 아들 ‘진우’의 실제 모델은 부산대 법대를 졸업한 송병곤씨라고 한다. 송씨는 1차로 구속되어 기소된 8명 중 한 명이었다. 1, 2차로 구속된 16명에 대한 재판의 담당판사는 조모 판사였고 검찰의 기소를 대부분 인정하여 피고인들에게 징역 1년에서 6년까지 선고했다. 실제로는 부림사건의 국가보안법 위반죄가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되어 있는 기사가 보이는데 이것은 3차로 기소된 사건의 1심 재판에서였다. 또 1, 2차로 기소된 사건에서는 전부 유죄가 선고되었다. 3차 기소 사건도 2심에서 다시 유죄로 뒤집혀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버렸고, 1심에서 국가보안법 무죄를 선고한 판사 서석구씨는 좌천되어 법복을 벗었다.

    송병곤씨에 대한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 유죄판결의 내용은 이렇다. “피고인은 (중략) ‘역사란 무엇인가’, ‘서양경제사론’을 교재로 하여 역사란 민중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역사는 생산과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발전한다 등의 마르크스이론을 토론 학습시켜 반국가단체인 북괴 및 국외공산계열을 이롭게 하였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에드워드 카의 고전으로 중고생 필독도서이고, ‘서양경제사론’은 서울산업대 최종식 교수의 역저로 1978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으며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던 책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가르치는 것이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반면 국가보안법 무죄를 선고한 서판사는 검사가 불온서적이라고 지칭한 서적들을 불온서적으로 볼 수 없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한 후 그런 책을 공부했다는 것만으로는 찬양, 고무행위를 한 증거가 될 수 없으므로 무죄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무죄판결을 뒤집어 버린 항소심 판결을 보자. “위 교재들의 내용 중에는 올바른 사회인식이나 광범한 지식이 결여된 사람들이 공부하는 경우 저자들의 취지를 곡해하여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멸망하고 결국 사회주의를 도입하게 된다는 식으로 잘못 받아들일 위험성이 큰 부분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도대체 누가 올바른 사회인식과 광범한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그런 책을 읽어도 잘못 받아들일 위험이 없는 자이며, 그 판단은 누가 한다는 말인가.

    송씨의 판결문 중 ‘국외공산계열’을 이롭게 하였다는 대목이 있다. 당시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에 대한 찬양, 고무와는 별도로 국외공산계열에 대한 찬양, 고무행위도 동일하게 처벌했다. 이 규정은 국외공산계열인 중공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1992년의 직전 해인 1991년에 폐지되었다.

    영화를 본 감동의 한 켠으로 무슨 말만 잘못해도 붙들려가서 동물 취급당하는 세상이 다시 오지나 않을지 두려움을 안고 극장을 나섰다. 포장마차에 앉아 술 한잔 하면서도 말조심하라는 농담 같은 충고를 던지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우리에게도 변호인이 필요한 때인가.

     

    ◊ 이 글은 2014년 1월 7일자 한국일보<아침을 열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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