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윤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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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제국 (18) 차입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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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않는제국18

    역삼동 다비드 앤 솔로몬의 서울 사무소 회의실, 그곳 책임자인 알렉스와 파트너 브라운 그리고 한국인 변호사 이종민이 심각한 얼굴로 소리를 낮추며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알렉스는 제법 두툼한 보고서를 뒤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 변호사, 아직 한국의 대법원은 LBO(Leveraged Buyout, 차입매수)의 법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알렉스의 말투는 거만스럽게 들렸다.

    대법원의 판례에 대한 분석보고서를 작성한 이 변호사는 한국 대법원을 얕보는 듯한 알렉스에 말에 적잖이 불쾌했다.

    “알렉스, 꼭 그렇게 볼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아직도 LBO방식에 의한 기업인수가 그렇게 활발한 편이 아니어서 구체적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우리 대법원이 LBO방식에 의한 기업인수를 반드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이종민은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형식적으로는 다 같은 파트너라고 하지만 알렉스는 다비드 앤 솔로몬의 서울사무소 책임자로서 이종민의 상사나 다름없었다.

    “LBO방식에 의한 기업인수는 이미 미국에서는 수십 년에 걸쳐 해온 기업인수에 관한 선진 금융기법인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법조인뿐만 아니라 기업인들조차도 LBO에 대해서 무지한 거 아닐까요?”

    특유의 비꼬는 듯한 말투로 브라운이 내뱉었다. 몸집이 비대한 브라운은 전형적인 뉴요커 발음을 구사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법률 후진국인 한국에 파견된 사실에 대해 자주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종민은 불쾌함과 수치심으로 마음이 착잡해졌다. 알렉스와 브라운이 한국의 법조인과 기업인을 싸잡아 무시하는 태도에 말할 수 없이 불쾌했지만 이종민 역시 법과대학이나 사법연수원 시절 LBO방식에 의한 기업인수합병에 대해 들어본 일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LBO에 대해 들었을 때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피인수기업의 자산이나 현금흐름을 담보로 하여 금융기관으로부터 인수자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말이다.

    어떻게 그런 날강도 같은 수법을 선진금융기법이라고 하는지, 미국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가장 흔하게 활용된 기업인수방식이라는데 참 납득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LBO에 관한 법리를 차근차근 공부하다보니 그럴듯하면서도 기가 막힐 정도로 탁월한 수법이었던 것이다.

    “LBO거래가 한국에서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자본주의시장 경제를 실시한지 불과 몇 십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도 있지만 한국 사람들은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도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70~80년대 대우가 부실화된 기업을 인수했을 때에도 LBO방식에 의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인수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재계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종민은 나름대로 한국에서 LBO방식에 의한 기업인수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도덕성? 도덕성이라… 먹느냐 먹히느냐하는 판에도 도덕성을 따진다? 흐흐흐…”

    브라운은 같잖다는 듯 비웃었다. 알렉스와 마찬가지로 브라운 역시 한국에 오기 전 한국어 공부를 했는지, 이젠 제법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브라운, 그것은 문화와 민족성의 차이지, 결코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 아니오.”

    이종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한마디 했다.

    “아, 미안합니다. 이 변호사, 내가 잠깐 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브라운은 황급하게 웃음을 거두며 두 손을 들어 흔들며 과장된 몸짓으로 이종민에게 사과했다. 실제 생각이야 어떻든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는 만큼 한국 사람을 비웃어 이종민을 불쾌하게 만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변호사, 그럼 실제로 한국에서 최근에 LBO방식에 의한 기업인수가 성공한 예도 있습니까?”

    묵묵히 보고서를 검토하던 알렉스가 물었다.

    “네. 보고서에도 간략히 언급했지만 2005년 휠라코리아와 해태제과 인수가 대표적인 LBO방식에 의한 기업인수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중에서 휠라코리아 인수는 기존 경영진이 SPC(Special Purpose Company :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하고 증자 및 차입거래를 통해 인수자금을 마련한 다음, 인수대상기업의 기발행주식을 대부분 매수한 후 SPC와 합병한 것으로 LBO 방식에 의한 기업인수 중 전형적인 MBO (Management buyout: 경영자매수) 거래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면 휠라코리아의 인수합병의 경우 한국법상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이 판결은 어째서 LBO방식으로 기업을 인수한 대표이사에게 특경법위반(특정경제범죄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유죄선고를 하였지요? 내가 보기에는 전형적인 LBO방식에 의한 기업인수일뿐 특별히 범죄가 되는 것 같지는 않은데.. ”

    알렉스가 가리키는 것은 대법원에서 2006. 11. 9. 선고한 판결이었다.

    알렉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브라운과 이종민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브라운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두 팔을 벌리며 입을 삐죽거렸다.

    “물론 이 판결에 대하여는 법조계로부터 상당한 비판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대표이사에게 배임의 범의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고등법원 판결을 지지하는 견해도 많습니다. 다만 이 대법원 판결은 피고인이 인수거래와 관련해 거의 지분 투자를 하지 않고 인수자금 대부분을 차입금으로 충당했기 때문에 이는 리스크는 전혀 부담하지 않고 투자수익만 극대화 하려는 일종의 투기적 거래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전체 인수대금 중 몇 %정도를 투자자가 지분을 투자하면 된다는 거요?”

    “투자자의 지분참여가 몇 %가 되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은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LBO거래에서도 인수자의 직접 투자율이 25%에서 50%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서도 LBO거래에 관해 비슷한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브라운, 장미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설립한 퍼시픽 파이낸스의 자본금이 7억5천만 불인데 그렇다면 전체인수대금의 몇%정도 될까요?”

    “글쎄, 아직 장미은행 인수대금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아서 정확하게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총인수대금을 50억불로 보면 15%정도 될 겁니다. 그런데 지난번 최강로펌에서 장미은행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하면서 장미은행의 주가가 20% 이상 떨어졌으니까 총 인수금액은 좀 더 내려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변호사, 장미은행의 주가를 좀 더 끌어내릴 방법이 없겠소?”

    “글쎄요, 지난번 소제기로 큰 타격을 받아서 현재 주가가 최저수준인데 여기서 더 끌어내리겠다는 건 무리가 아닐까요?”

    “장미은행의 총 인수대금을 40억불정도로 맞추고 SPC의 자본금은 10억불로 올리면 그런대로 모양은 갖추어질 것 같은데.. 알렉스, 볼트만과 이 문제를 한번 상의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브라운은 장미은행 인수대금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나도 조만간 그럴 생각이에요.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고할 필요도 있고… 아무튼 이 변호사, 최강로펌과 국민연대와의 협조를 긴밀하게 하고 비용이 필요하면 아낌없이 쓰세요.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자, 오늘은 이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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