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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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제9회 법원행정고등고시 합격, 현재 남양주시에서 법무사로 일하며 소설가로도 활동, 법률신문사 간 "법조 50년 야사" 집필, '월요 법창'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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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끝 그리고 시작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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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그리고시작(25)

     

    25

     

    고향에 온 듯 포근한 기운이 와락 전신을 감쌌다. 오래전에 겨우 일주일 정도 머문 곳이었음에도 눈에 익은 지형 때문일까, 아마 북한 땅을 벗어났다는 안도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날이 밝자 복장을 다듬고 마을로 내려갔다. 호산장성 관문 부근에 있는 김중호의 집은 대문이 따로 없었다. 허리 높이의 돌담 사이에 난 공간이 입구였다. 몇 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새 2마리가 담장 위에 앉아 시끄럽게 재잘댔다. 입구에서 젊은 여자가 그와 마주쳤다. 돌멩이 하나를 들고 바닥에다 주인을 찾는다고 한자로 썼다. 여자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가 늦가을이었던가. 철망을 두른 창고 안에는 옥수수가 가득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수확기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드디어 북한 땅을 벗어났구나. 비로소 조금씩 실감이 났다. 오욕과 모멸의 땅.―아들을 잃었고, 벙어리와 절름발이가 되었고, 온몸은 흉터투성이였다. 이것이 진정 죽음보다는 나은 것일까.

    베트남 중부인 투이호아에서 마을 작전을 하던 중 부하 하나가 적의 박격포 공격을 받고 팔다리가 모두 잘린 채 후송이 되었다. 얼마간 치료기간이 끝난 뒤 면회를 간 인성에게 덜렁 몸뚱이만 남은 그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참말로 큰일 날 뻔했어예. 그때 내가 빨리 엎드리지 안았으모 댓바로 죽었을 낍니더.”

    정말 저 몸을 하고도 죽지 않은 것이 요행이었을까. 그를 본국으로 후송시킨 후로도 그런 의문은 참 오래 계속됐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어떤가. 이 몸으로 그 지옥의 땅을 벗어난 것에 대하여 안도하고 있는 것인가. 어쨌든 지난 몇 개월간 전력을 다해 시도한 탈출은 일단 성공했으니 우선 그것만으로 위안을 삼자고 생각했다.

    10여 분 지난 후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사내가 나왔다. 김중호였다. 인성은 반가운 나머지 얼른 달려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김중호는 꼿꼿하게 선 채 미간을 찌푸렸다. 종업원으로 보이는 청년 3명이 그를 둘러쌌다.

    “누군데 날 찾는가?”

    그의 게슴츠레한 눈이 인성의 위아래를 경멸하듯 훑었다. 인성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돌멩이로 땅에다 글을 썼다.

    ―나는 몇 년 전에 김선호 씨와 함께 와서 7일간 머물고 간 한국특수단장입니다.

    글을 읽던 김중호가 깜짝 놀라며 대번에 표정이 변했다. 다시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인성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 일행은 한국정부로부터 특수임무를 받은 한국특수단이라고 소개했었다. 동행했던 베이징대사관 무관의 짓이었다. 관광업자를 움직이려면 정부 사람임을 강조해야 한다는 핑계였다.

    “아니, 이게 어리케 된 노릇이요? 이리루 들어오라요.”

    김중호는 종업원들을 손짓으로 물리치고 인성을 사랑채로 안내했다. 방 안에 들어가 앉은 인성은 종이와 펜을 청한 후 간단하게 그간의 경과를 적고 빨리 동생을 좀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밥상이 들어오자 김중호는 쪽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흰 쌀밥과 된장국에 반찬은 김치와 우엉 등이었다. 몇 년 만에 보는 정찬인가. 교화소 시체처리장에 버려진 뒤부터 지금까지 쌀알 한 번 씹어 보지 못해선지 밥을 숟가락에 떠서 입에 넣고 그것을 씹는 것이 너무 생소하기만 했다. 젓가락질이 잘 안 되었다. 밥상을 마주하고 있어도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가슴 가득 포만감이 넘쳐 도대체 밥을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새삼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지며, 창호지며, 기름 먹인 장판이며, 밥상이며 모두가 눈에 익었다.

    ‘삼성’ 상호가 붙은 텔레비전 수상기와 전화기에도 친밀한 느낌이 들었다.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감격과 안도감이 가슴에 사무쳤다.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감정의 통제가 잘 되지 않았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채 천천히 밥과 반찬을 먹어치웠다. 숟가락을 놓자 염치도 없이 졸음이 몰려왔다. 빈 밥상을 마루에 내놓고 벽에 기대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김중호였다.

    “동생에게는 이자 기별을 했시오. 고단할 텐데……, 여기루 오시라요.”

    김중호가 배낭을 집어 들고 앞장을 섰다. 호산장성 성벽과 잇닿아있는 동산의 모퉁이를 돌고 나니 방이 꽤 많은 단층집이 나왔다. 김중호는 입구 쪽 맨 끝 방으로 인성을 안내했다. 방 안에는 이불이 깔렸고 곁에는 내의와 겉옷 한 벌이 놓여 있었다. 방바닥은 따뜻했다. 벽에 걸린 달력은 9월분이었다. 납북된 지 햇수로 꼭 5년 만이었다.

    “만제 목욕하고 눈 좀 붙이라요.”

    위엄과 권위로 포장했던 그 특수단장이 아니었음에도 인성을 대하는 김중호의 태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알몸 위에 가운을 걸치자 그는 아직도 이가 득실대는 헌옷을 걷어 밖으로 보내고 배낭을 방 안에 넣어 주었다. ‘ㄴ’ 모양인 건물의 구석에 있는 화장실과 목욕탕에 갔더니 종업원 하나가 바리캉과 가위를 들고 와서 머리를 자르고 고른 뒤 살충제를 머리카락과 겨드랑이에 뿌려 주었다. 비듬처럼 머리카락에 뿌옇게 붙박인 서캐를 어떻게 떨어내야 할까. 갖다 준 참빗을 사용해 봤으나 제대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몇 번 시도하다 욕조에 몸을 담갔다. 그러나 몸이 따끔거려 물속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전신을 담그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름 내도록 비를 맞고 다녔음에도 팔꿈치와 무릎, 손과 발등 같은 곳은 아무리 밀어도 눌어붙은 때가 잘 벗겨지지 않았다. 목욕 한 번 하지 못하고 이와 빈대, 벼룩들에 뜯긴 자국에 생긴 부스럼은 잃어버린 세월만큼 죽어서 쌓인 세포의 잔해였다. 군데군데 더께가 앉아 세균들의 숙주 역할을 했다. 전신의 화상 자국 역시 이미 아물었음에도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목욕이 끝난 후 종업원은 전신에 피부 연고를 발라 주었다.

    점차 소멸하던 그의 삶에 비로소 치유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밥을 먹으면서, 목욕을 하면서, 그리고 따뜻한 방과 이불의 감촉을 느끼면서 짐승처럼 살았던, 아니 지옥에서 보낸 그 세월이 꿈처럼 아련했다. 방 안의 괘종시계가 11시를 쳤다. 배가 부르도록 밥을 먹었고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여 긴장이 풀릴 만도 한데 잠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전신을 포근히 감싸는 감촉에도 이불을 덮는 행위 자체가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했다. 일단 모든 것을 잊어버리자. 이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계속 걷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환한 낮임에도 방 안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는 사실, 현실의 안락 그 자체를 즐기자. 기적같이 폭 좁은 강 하나를 건너 지옥의 도가니였던 그 저주의 땅을 벗어났음을 감사하자. 길고 험했던 그 여정을 기억에서 지워 버리자.

    망각은 병이 아니라 확실한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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