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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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제9회 법원행정고등고시 합격, 현재 남양주시에서 법무사로 일하며 소설가로도 활동, 법률신문사 간 "법조 50년 야사" 집필, '월요 법창'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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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끝 그리고 시작(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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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그리고시작_15

     

    15

     

    “우리가 괜히 그러는지 이것 좀 보기요.”

    새로 바뀐 심문관 심이 탁자 위에 신문 두 장을 놓아 주었다. 회복실에서 인성은 손가락으로 급소를 찔러 자살을 기도했었다. 그러나 병원 측의 재빠른 조치로 그 의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그들은 아예 인성의 팔을 뒷짐 지워 놓고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속내는 잘 모르겠지만 새 신문관 심은 퍽 친절해 보였다.

    인성은 고개를 길게 뺀 채 신문을 쳐다봤다. 한국에서 발간되는 중앙 일간지였다. 심이 펼쳐 놓은 2면의 1단으로 된 제목은 ‘피랍 승객 귀환’이었다. 한 달 전, 그러니까 그들 부자가 고문실에서 버둥거리고 있을 무렵 발행된 신문이었다. 인성은 재빨리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북에 피랍됐던 한국항공 A320기의 탑승자 155명 중 승무원과 일부 승객을 제외한 127명이 오늘 오후 4시 판문점을 통해 남으로 귀환했다. 그동안 정부는 직접 협상 외에도 국제적십자사와 중국 정부를 통해 꾸준히 북측과 승객의 안전 귀환을 위한 교섭을 벌여 왔는데 납북된 지 6일 만에 그 첫 결실로 승객 132명 중 127명이 무사히 귀환한 것이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북측이 특별한 대가를 요구함 없이 이처럼 발 빠르게 남측과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서 현재 한창 물밑 작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부는 계속해서 승무원과 나머지 승객은 물론 기체반환에 관하여 추가 협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승객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무렵부터 인성 부자에 대한 고문이 시작된 셈이었다. 인성은 계속해서 다른 신문에 눈을 돌렸다. ‘미귀환 승객’이란 3단 크기의 제목 아래 ‘한민족일보 이재훈 기자 단독 취재’라고 표시된 기사였다.

    한국항공 A320기 납북 이후 본사는 승객들의 명단을 확보하기 위해 전 사력을 모은 결과 납북 사흘 만에 승무원 23명과 승객 132명의 현황을 정확히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본사는 간부회의를 열어 오랜 숙의 끝에 미송환 승객의 조속한 귀환을 촉구하는 뜻에서 오늘 돌아오지 못한 승객 5명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의했다.

    신문은 기사 끝머리에다 인성 부자를 뺀 3명에 관한 신변을 자세하게 실었다. 바로 납치범들에 관한 기사였다.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승객의 안전을 위해 명단 외에 신상에 대한 기사는 기자들 사이에서 엠바고(embargo: 기자들을 상대로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일, 또는 기자들 간의 합의에 따라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자제하는 일)가 걸리게 마련인데 이 신문은 그걸 파기한 것 같았다. 인성은 자신에 관한 기사를 살펴보았다.

    황윤식(50세): 육군 대령으로 전역한 후 수영 장비 제조 회사인 주식회사 수정의 대표이사로 근무하고 있으나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그는 특수부대 출신으로 현재 대북 관련 사설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으며 인천 인근의 모 기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방부 측에서는 이 사실을 즉각 부인하고 있어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대북 관련 사설 프로젝트 책임자라니…….

    1기 민간정부 시절 창간된 이래 꾸준히 사세를 확장하고 있는 신문이었다. 아무리 그렇기로 엄연히 대한민국에서 발행되는 일간지가 아닌가. 인성은 지금까지 자신의 기내 행동 때문에 억류되어 이런 일을 당하는 줄 알았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결국 아들을 잃었다는 자책감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기사는 북측이 인성을 압박하는 내용과 일치하는 면은 있으나 시기적으로는 며칠 늦은 것이다. 특히 대북 관련 프로젝트와 훈련 기지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보 제공자는 단 본부의 역할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혹시 그들이 북측에 미리 정보를 제공한 것은 아닐까? 이전 심문관 윤은 황인성이라는 이름을 들먹였다. 또한 이 기사의 내용 역시 취재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관이라도 임의로 이 프로젝트에 접근할 수 없었고 책임자와 기획자의 이름은 1급 비밀 사항이었다. 누굴까? 어떤 세력들이 그 프로젝트의 존재를 공론화하려는 것일까. 더구나 정부 주도가 아닌 사설 단체로 호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무슨 음모가 있는 듯했다. 위기감으로 인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국가의 안위가 주 관심사였던 인성으로서는 정부가 어떤 노선을 밟든 어떤 정책이 시행되든 그것이 북의 적화 야욕을 부추기고 국가를 해롭게 하는 일만 아니라면 묵인해 왔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다. 프로젝트 ‘TRAP’은 단순한 대북 전략 전술이 아니다. 북이 우리에게 위해를 가했을 때 비로소 작동되는 것으로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 개념이다. 또한 그 내용도 민족 생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시에 한반도의 초토화를 막는 일이며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많은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을 공개하려는 집단이 정부 관료 중에 있다는 말인가. 그러다가 인성은 불쑥 의심이 들었다. 그렇다면 북측이 이런 신문기사를 자신에게 보여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들이 그 프로젝트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인가. 그래서 핵심 내용을 얻어 내기 위해 자신을 압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연유였든 자제의 불행은 참 안타까운 일이었소.”

    현이 죽은 뒤 처음 보이는 북측의 공식 반응이었다.

    “…….”

    “우린 모두 알고 시작했는데 황 선생이 너무 완강하게 버티니까 일꾼들이 약간 흥분을 했던 것 같소. 당에서 선생에게 사과를 드리라는 당부가 있었소.”

    “…….”

    인성은 심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윤보다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였고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인상은 역시 날카로웠다. 아무렴 어떠랴. 이제 나는 더 잃을 것이 없다. 내 목숨이 필요하다면 가져가거라.

    “황 선생, 그러지 말고 그 프로젝트의 구체적 내용을 말해 주시오. 그러면 선생은 남은 평생 당의 보살핌으로 편히 살 수 있을 것이오.”

    심은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웃는 얼굴은 인상조차도 바꾸어 놓는 것 같았다. 인성은 수갑을 풀어 달라고 한 뒤 펜을 들고 미리 준비해 둔 백지에다 글을 썼다.

    ―분명하게 말합니다. 나는 이 신문기사의 내용도, 당신들이 내게 강요하고 있는 것도 전혀 모릅니다. 모르는 것을 어떻게 실토합니까?

    심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살기가 번득였으나 이내 사라졌다. 이렇게 안면 근육이 많은 사람은 표리부동일 가능성이 있다. 그는 다시 넉살을 풀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친해 봅시다.”

    ―당신 같은 사람과 친해질 이유가 없소.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오.

    “원하기만 하면 젊은 여인과 연애하면서 멋지게 살 수도 있지요. 황 선생 마음먹기에 달렸지요. 그 항공기의 여 승무원 중에서 골라잡아도 좋소.”

    ―당신이나 즐기시오. 나는 이 더러운 땅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인성이 쓰는 글을 읽어 나가던 심이 갑자기 탁자 모퉁이에 놓인 컵을 집어 들더니 인성의 면상을 향해 집어던졌다.

    “이 새끼가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먼. 자식새끼 죽는 꼴을 뻔히 보면서도 엉뚱한 짓만 한다더니…….”

    인성은 피하지 않았고 컵은 이마를 친 뒤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눈에서 불꽃이 번쩍했고 끈끈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이마의 핏줄이 터진 모양이었다. 인성은 꼼짝도 않고 앉아 심을 노려봤다. 뭐라고, 자식새끼 죽는 꼴? 그가 내뱉은 말을 되새김하다 인성은 벌떡 일어나 몸을 날렸다. 그리곤 그의 가슴을 힘껏 걷어차 버렸다.

    심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자 고문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내가 달려와 함께 쓰러져 있는 인성을 먼저 일으켜 세웠다. 이 사내 역시 전번 이 군관 못지않게 키가 크고 신체가 우람했다. 손아귀의 힘이 꽤 거셌다. 수갑을 찬 채 끌려가면서도 본능적으로 전혀 무방비 상태인 사내의 급소를 살폈다. 허점은 많았으나 더 이상 대응을 하기가 싫었다. 아들만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 심에게 달려들지도 않았다. 현처럼 그냥 죽어 버리자. 인성은 체념했다.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인성을 욕조로 끌고 가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거칠게 얼굴을 물속에 처박았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악취가 났고 차가웠다. 이마의 상처에 물이 닿자 머리 전체에 쩍쩍 금이 가는 듯 아렸다. 아직 흥분 상태였지만 인성은 복식호흡을 시작했다. 3분은 견딜 수 있겠지. 죽더라도 이따위 물고문에 굴복하지는 않으리라.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쯤 사내는 머리를 쳐들었다. 인성은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얼굴 여기저기에 끈끈한 물체가 들러붙은 듯했다. 펑하고 귀가 뚫렸다. 비로소 세상이 움직이는 소리가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내가 탁 하게 소리쳤다.

    “무슨 프로젝튼지 말하간?”

    “…….”

    “다시 처박아.”

    심의 목소리였다. 그새 몸을 추스른 모양이었다. 곁에 다가와 있었다.

    “…….”

    그의 살벌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조금 전 사내에게 대응하지 않은 것이 슬며시 후회되었다. 계속 이렇게 당해야 하나. 수갑만 풀 수 있다면 단번에 이들을 처치해 버리고 자결을 할 수 있을 것인데……. 인성은 자신의 팔목을 비틀면서 다시 현을 생각해 냈다. 내 아들. 그 아이의 듬직한 모습이 떠올라 수십 배, 수십 배의 수백 배로 가슴에 사무쳤다. 그렇게 사라져 버려서는 안 될 아들이었다. 조국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생각이었다면 현을 위해서는 전 생애를 바쳐 지켜 내야 마땅했다. 문득 이대로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필코 살아서 그 신문사 기자와 기사 제공자를 잡아 자초지종을 밝혀내고 싶었다. 북에 억류되어 있는 피랍자의 신원을 그렇게 세세하게 기사화한 이유를 찾아내고 말리라.

    같은 동작을 대여섯 번 반복해도 반응이 없자 그들은 인성을 발가벗겨서 몸 넓이만 한 송판 위에다 눕혔다. 수갑을 풀 때 잠깐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일단 살아야겠다고 작정을 하자 또다시 행동이 위축되었다. 살아야 한다.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다만 현의 희생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만 남았다.

    사내는 벌거벗은 인성의 팔다리를 가죽 끈으로 묶은 뒤 전신에다 물을 부었다. 그리곤 얼굴과 가슴, 성기에다 전극봉을 들이댔다. 전신에 경련이 일었고 연탄불 위의 오징어처럼 손가락과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묶인 팔다리가 심하게 떨렸다.

    “자식 죽음도 감수했던 네놈이지만 우리 손을 벗어나진 못할 게다.”

    저 악마 표정을 한 심이 어떻게 그리 다정한 말을 풀어놓았던 것일까. 말투마다 소름이 쭉쭉 돋았다. 말뿐이 아니었다. 주전자로 콧구멍에 들이붓는 물에는 고춧가루를 푼 것 같았다. 재채기와 함께 갑자기 뇌에서 불이 활활 타 올랐다.

    “아무 때나 주디 열겠으문 머리 량쪽으로 흔들라.”

    사내, 보조 군관이 고함을 질렀다.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귓속에다 그 물을 부었다. 코와 귓속이 화끈거리더니 바로 골이 울렸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 머리통 전체가 폭발 직전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코를 통해 식도로 내려간 고춧가루 섞인 물은 단번에 위를 자극하여 구토를 일으켰다. 그렇잖아도 전극봉으로 인해 촉발된 경련과 함께 인성을 초주검 상태로 몰고 갔다.

    “무슨 프로젝트인지만 말하라우. 제목만 말하면 이걸 면하게 해 주지.”

    심이 또다시 표변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이걸 놓치면 다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심의 그 부드러운 말을 듣는 순간 숨이 막힐 것처럼 감격이 되었다. 온통 칠흑뿐이던 눈앞에 환한 빛줄기가 비쳐 드는 듯했다. 이 고통을 피할 수 있다니……. 굉장한 혜택, 놓치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조급함이 거세게 일었다. 무슨 말이든 해 버리고 싶은 강렬한 유혹이었다. 그 작전의 이름이 ‘TRAP’이라고 말만 하면 적어도 고통스러운 이 순간을 면할 수 있으리라. 찌르륵 찌르륵 전신에 전기가 흐를 때마다 정신이 아뜩해지고 피가 말랐다. 온몸의 수분이 모두 증발하는 듯했다. 금방 호흡이 멎어 버릴 것만 같았다. 도저히 숨을 내쉴 수도 들이마실 수도 없었다.

    고통을 덜어 준다고 하지 않는가. 그까짓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제거하기 위한 기본 계획이라고 말해 버리자. 그러면 전극봉을 치워 주고, 콧속으로 흘러들어 간 고춧가루 물을 죄다 씻어 줄 테지. 우선 숨부터 좀 제대로 쉬고 볼 일이 아닌가. 이제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심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아보려고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웅웅대며 어떤 소리가 인성의 뇌리를 울렸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고통은 잠시일 뿐이고 일시적일 것 같던 배신은 영원히 지속한다.

    인성이 요원들 정신교육 시에 입이 닳도록 강조하던 말이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어쨌든 진리였다. 유사시 어떠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요원들은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작전에 대하여 비밀을 지켜야 동료들의 안전과 나아가서 국가의 안위를 보전할 수가 있다고 가르쳤다.

    아, 이 부끄러움이라니……. 비록 잠시지만, 한순간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 한없이 미안했다. 지금도 버티고 서서 명령만 기다리고 있을 요원들에게, 그 과정을 거쳐 간 많은 동료들에게……. 수치스러워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더러운 기분에서 빨리 벗어났다.

    고문을 맡은 사내가 말로만 듣던 ‘통닭구이(손발을 묶어 매다는 고문)’를 거쳐, 인두로 전신을 지지는 동안 인성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다시는 그런 안일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몇 번이나 의식을 잃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독한 놈, 악질이야 악질. 혀를 차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어느덧 인성은 어둡고 좁은 공간에 내던져져 폐물처럼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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