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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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제9회 법원행정고등고시 합격, 현재 남양주시에서 법무사로 일하며 소설가로도 활동, 법률신문사 간 "법조 50년 야사" 집필, '월요 법창'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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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끝 그리고 시작(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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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그리고시작_14

     

    14

     

    며칠간 주눅이 들도록 만든 뒤 그들은 장소를 옮겼는데 심문 위주였던 이전과는 달랐다. 각종 고문기구가 즐비하여 비릿하고 썩는 듯한 냄새를 자아내는, 그들이 예심실이라고 부르는 고문 장소였다. 10평 남짓한 실내에 들어서자 기름이 번질거리는 나무 의자와 각목 외에도 벽과 벽 사이의 서까래에 걸린 채 늘어져 있는 몇 가닥의 쇠줄들, 전기 충격기, 그리고 전기 화로 위에 얹힌 각종 크기의 인두들, 욕조 등이 눈에 들어왔다. 조명이 미치지 않아 음침한 앞쪽에는 형틀과 각목, 쇠갈고리, 가죽 채찍, 물통 등이 어렴풋이 보였다.

    섬뜩한 기운으로 꽉 찬 방 안의 분위기 때문에 그렇잖아도 오랜 절식으로 울렁대던 속이 단번에 뒤집혀 버렸다. 시위하듯 윤의 뒤를 수행하던 체격이 크고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쭈그리고 앉아 헛구역질하고 있는 인성의 팔을 잡아 일으킨 뒤 쪽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갑자기 전혀 다른 냄새가 코를 찔렀다. 뜻밖에 탁자 위에 음식이 가득했고 중앙을 차지하고 앉은 사람은 윤이었다.

    “며칠 굶었다고요? 그래선 안 되지. 자, 이리로 와서 앉아요.”

    윤은 다정한 어조로 인성에게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인상 고약한 사람이 저렇게 부드러운 언사를 사용할 때 한층 경계심이 생기는 것일까. 그의 서울말에는 간간이 이북 억양이 묻어 나왔다. 앞에 놓인 것은 설렁탕이고 중간 접시에 담긴 것은 돼지 불고기인 듯했다. 부드러운 말투와는 달리 그의 권하는 자세가 자못 드세어 마지못해 수저를 들었다. 그러나 한번 뒤집힌 속은 좀체 가라앉지 않아 인성은 국물 한 모금도 삼킬 수가 없었다.

    “저런, 저런. 걱정을 많이 했나 보군그래. 그럴 것 없어요. 황 선생. 자, 우리 마음 턱 놓고 맛있게 먹어 봅시다.”

    인성의 코끝에는 아직도 옆방의 고약한 냄새가 스멀거렸지만 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베트남 전선을 누볐던 인성으로서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온 땅이 열기로 후끈거리던 날이었다. 그의 특전대는 중부 전선의 어느 계곡에서 사살한 베트콩 시체 2구를 가운데 놓고 매복 중이었다. 그들이 동료들 시신을 수습하러 오는 현장을 덮치기 위해서였다. 소지품과 복장으로 봐서 사살된 시체는 거물급이었으므로 수습하러 오는 병력 역시 정예일 가능성이 짙었다. 상황이 벌어진 지 불과 이틀 후 시체에서 손가락만 한 구더기가 기어 나왔고 간장을 달이는 듯한 냄새가 온 계곡에 질펀하게 깔렸다. 대원들은 그곳에서 씨-레이션(군용 비상식량)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비위가 상한 적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훈련 중에도 자주 이런 환경과 만나게 된다. 극한 상황에 대비해 평소 뱀이나 개구리, 지렁이, 달팽이 등을 주식으로 하는 연습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비위로 말한다면 인성도 자기 몫은 했다. 그렇지만 윤이 한 수 위였다. 그는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자기 몫을 비웠다.

    “이거, 당에서 특별히 황 선생을 위하여 마련한 것인데 나만 포식을 하고 말았네.”

    식사를 마친 윤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컵의 물로 입속을 서너 차례 헹궈 꿀꺽 삼킨 뒤 그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미동도 않고 뒤에 서 있는 사내에게 식탁을 치우라고 명했다. 면식용 거울을 통해 옆방의 전경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짐작이 갔다. 그러나 두려움은 없었다. 막연하긴 하지만 각오는 이미 해놓았다. 윤이 담배를 권했으나 사양했다. 식탁 위의 그릇을 치우는 동안 줄담배를 피우며 한참을 지체하던 윤이 입을 열었다.

    “경고하지만 누구든 입을 열지 않고는 여길 빠져나가지 못한다오. 황 선생도 예외는 아닐 것이오. 자, 이제 시작해 볼까요?”

    윤은 습관처럼 철제 의자를 드르륵 하고 끌어당겨 앉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황 선생이 하고 있는 일이 뭔가요?”

    도대체 이들이 무슨 냄새를 맡은 것일까. 인성은 의도를 찾아내기라도 할 듯 그를 정면으로 마주 봤다.

    “이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내가 운영하는 회사는 운동기구를 국가기관에 납품할 뿐입니다.”

    인성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윤이 정색을 하며 소리를 약간 높였다.

    “아직도 우리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소?”

    “글쎄요. 윤 선생이 왜 이러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장사꾼일 뿐입니다.”

    “우린 되도록 신사적으로 황 선생을 설득해서 자발적인 협조를 받고 싶소.”

    고문실을 눈앞에 두고 이들이 말하는 ‘신사적’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생도 시절 외에는 거의 피동적 신분이 되어 보지 않았던 인성이었다. 언제나 적극적이었고 어떤 상황이든 주도를 했다. 물론 군인으로서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여러 경우를 대비한 훈련으로 습득했다. 실제 상황에서는 포로가 되기보다는 자결을 선택하도록 예정되어 있긴 했다. 그렇지만 이번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예기치 못한 올무에 걸리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최악의 지경에 이르렀다. 어쨌든 이 위기를 극복하고 상황을 반전시켜야 한다.

    “내가 해야 할 협조란 무엇인가요?”

    “먼저 현재 황 선생의 처지를 정확히 깨닫도록 내가 좀 도와드리지요. 우린 황 선생이 모종의 군 특수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파악했소. 자, 이쯤에서 우리 거래합시다. 우리가 수긍할 정도로 정보를 준다면 황 선생이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들어줄 용의가 있소.”

    윤이 정색하고 말했다.

    “글쎄요. 나는 무슨 말인지 통 알 수가 없습니다.”

    그의 입에서 특수 임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인성은 체념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우리는 황 선생을 남쪽으로 보내 줄 수도 있고, 이곳에서 영웅 칭호와 함께 여생을 편하게 지내도록 최고급 대우를 해 줄 수 있소. 물론 필요하다면 상부로부터 보장을 받아 주지요.”

    “…….”

    “자제인 황현 군 역시 마찬가지요. 황 선생이 하기 나름일 거요.”

    현재 인성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아들임을 잘 알고 이들은 분명히 그걸 활용할 것이다. 그는 잠시 잊고 있었던 아들을 다시 떠올렸다. 벌써 며칠째 보지 못했다. 얼마나 불안할까. 이것은 완전히 협박이었다. 시제 지내러 가자는 말을 꺼냈을 때 현이 뭐든 핑계를 댔더라면 데리고 가지 않았을 텐데……. 가슴이 아팠다. 교만한 마음이 화를 불렀다는 자책이었다. 아들이 육사에 합격한 사실을 종원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현에게는 우리도 친척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했다. 사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며 몇 년을 벼르고 벼른 동행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장사꾼일 뿐이오.”

    인성은 스스로 다짐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결국 불게 될 것인데……. 우리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지요.”

    윤 역시 만만치 않았다.

    “…….”

    혼자라면 그냥 자결로 끝을 맺을 수 있다. 맨손으로도 얼마든지 목숨을 끊을 수가 있다. 그렇지만 이곳에다 아들 현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TRAP’을 누설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전면전이 발발했을 때 이 작전의 성패는 민족의 운명과도 직결된다. 남쪽보다 모든 조건이 열악한 북측은 미국의 힘이 닿기 전에 상황을 제압하기 위하여 우선 핵을 포함한 화학무기로 남쪽의 일정한 지역을 초토화하려 들 것이다. 빠른 시간 내에 정확히 북의 지휘부를 제거하려는 것은 그런 비극이 시작되기 전에 막기 위함이다. 목숨을 걸고 북측 경호총국의 경계를 뚫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윤이 손짓하자 군관이라는 사내가 문을 열었다. 병사 둘이 누군가를 부축하고 들어왔다. 아, 아들 현이었다. 인성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심호흡을 했다. 윤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실내로 들어선 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인성도 그 악취를 맡는 순간 숨이 막힐 정도였으니 이런 일을 난생처음 당하는 현은 더할 것이다. 사내는 어리벙벙한 채 서 있는 현을 끌고 가 나무 의자에 앉혔다. 현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알아내기라도 할 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겁을 집어먹은 표정은 아니었다. 비교적 판단이 정확하고 빠른 아이였다. 인성은 지금까지 꼭 한번 아들에게 제재를 가했다.

    11년 전, 현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소령 승진 후 처음으로 후방근무를 하게 되자 가족도 함께 부대 주변으로 이사했다. 국외와 전방 근무로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았으므로 아이에게 한창 아버지가 필요할 때였다. 그런데 생활환경이 크게 바뀐 탓인지 전학을 한 현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하지 못했다. 학년 초의 학력고사 결과가 엉망이었고 집중력도 떨어졌다. 인성은 아내와 함께 아들 걱정을 하다가 충격요법을 쓰기로 했다.

    어느 토요일의 해질 무렵에 현을 학교 운동장으로 데리고 갔다. 운동복 차림에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졸라맨 채 따라나선 아이는 아버지의 엄한 표정에 질려 숨도 크게 잘 쉬지 못했다. 그날 인성은 현과 밤새도록 달리며 운동장을 돌았다. 학교 숙직실이 폐쇄되고 보안 시설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방해꾼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의 화난 얼굴을 처음 본 현은 꼬박 밤을 새우며 체력 훈련을 고스란히 감당했다. 그날 현은 아버지가 자기 때문에 밤새도록 뜀박질을 했다는 사실에 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이는 다음 학년까지 제 성적을 회복하였고 그 후 졸업할 때까지 다시는 흔들리지 않았다.

    인성을 혼자 남겨 두고 고문실로 나간 윤의 지시에 따라 사내가 의자에 앉은 현의 손목에 가죽 벨트를 채웠다.

    “아저씨들. 별 소득 없는 짓을 하는군요.”

    현이 피식 웃었다.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는 뜻일까.

    “뭐라? 꽤 당돌한 놈이군 그래.”

    윤이 히죽거리며 인성 쪽을 바라보았다. 친구 사이에서 설득과 타협의 명수로 통하는 현이었다. 아내는 현이 친구네 가정 문제를 해결한 것도 몇 차례나 되었고 불량 학생들을 돌이켜서 학교와의 갈등을 해소시킨 적도 있다고 자랑했었다. 그렇지만 이런 인간들을 무슨 말로 설득하고 타협을 할 수 있을까.

    “미끼로 쓰려는 거죠? 안 되실 거예요. 뜻대로 안 될 겁니다.”

    현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지만 또렷했다.

    “그래에?”

    윤이 콧방귀를 뀌며 손짓을 하자 사내가 아이의 머리에 젖은 수건을 얹은 뒤 벽에 있는 전기 스위치를 넣었다. 현이 별안간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의연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다문 입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인성은 벽에 붙은 버튼을 연거푸 눌렀다. 고문실의 부자가 큰소리로 울었다.

    “좋은 게 좋지. 암. 그렇고 말고.”

    윤이 사내를 제지하더니 쪽문을 열고 심문실로 들어왔다.

    “왜 이러는 겁니까?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인성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

    “당신들에게 해를 끼친 일이 없는 아이에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

    “아이에게 손대지 말고, 나를 때리고 나를 죽이시오.”

    “말을 하겠소? 아이가 죽고 사는 것은 황 선생 입에 달렸소.”

    “부질없는 짓이오.”

    “그럼 하는 수 없지. 다신 헛일 시키지 마시오. 당신 아들만 더 괴롭히게 될 것이니까.”

    윤은 다시 쪽문을 열었다.

    “나쁜 놈들. 천벌을 받을 놈들.”

    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자에 묶여 있는 현이 인성의 고함을 들었는지 거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윤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우린 이미 천벌을 각오하고 있는 사람이오. 공화국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다시 쪽문이 닫혔다. 몇 번 더 전기 충격을 가하던 사내가 이번에는 현의 웃통을 벗겨 놓고 채찍으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전기 고문은 지켜보는 사람에겐 충격이 덜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를 악물었으나 가죽 채찍을 내려칠 때마다 현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채찍은 혀를 날름거리며 아이의 몸에 하나 둘 길고 붉은 자국을 만들었다. 인성은 의자를 있는 대로 면식용 창을 향해 집어던졌다. 특수 유리인 창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날아간 의자는 요란한 소리만 낼 뿐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방 안에는 무기로 쓸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인성은 정신없이 벨을 눌러댔다. 그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연신 채찍을 내려쳤다. 쪽문은 바깥쪽으로 잠겨 있어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몸을 위로 솟구쳐 옆차기로 힘껏 차 보았지만 철로 만들어진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들의 상체에 난 상처 자국에서 피가 맺혀 흐르기 시작했다. 아, 현아!

    “멈춰라, 이놈들아.”

    인성은 면식용 거울을 주먹으로 두들기며 소리쳤다. 윤이 돌아보며 손을 들었다. 사내가 동작을 멈추자 윤은 거드름을 피우며 다가오더니 쪽문을 열었다. 인성은 잔뜩 벼르고 있다가 안으로 들어서는 그의 턱을 힘껏 걷어차 버렸다. 전혀 예기치 않은 공격에 윤은 헉 하며 짧은 비명과 함께 맥없이 쓰러졌다. 인성은 중심을 잡고 서자마자 그의 턱을 다시 한 번 걷어차 버리고 반쯤 열려 있는 쪽문을 향해 뛰었다. 군관이 허리에서 권총을 뽑아 들고 달려드는 인성을 향해 발사했다. 탕! 귀를 찢는 듯한 굉음에 그는 흠칫 몸을 사렸다. 위협사격이었다. 문이 열리고 대여섯 명의 병사들이 들이닥쳐 거칠게 그를 포박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사내를 제압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윤을 인질로 삼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이럴 바엔 차라리 놈의 총에 맞아 죽는 게 나을 뻔했는데 왜 몸을 사렸을까. 혼란을 제압한 뒤 뛰어들었던 병사들은 재빨리 밖으로 사라졌다.

    “엎드려!”

    함경도 억양인 사내의 목소리는 굵고 낮았다. 그는 인성의 상체를 군홧발로 몇 차례 짓밟았다. 묶인 밧줄이 조여들면서 등과 가슴을 압박했다. 손목에는 피멍울이 맺혔다.

    “좋아. 그냥 둬.”

    어느새 정신을 차린 윤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과연 특수 요원답소.”

    “…….”

    인성은 윤을 죽일 듯 노려봤다.

    “우리는 바로 황 선생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요.”

    윤의 턱과 목이 벌겋게 부어올랐고 아직 충격에서 벗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급소를 건드리지 않은 것은 아들 현 때문이었다. 어차피 여기서 벗어날 수 없는 일인데 아직 극단적인 행동은 삼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즉흥적이었지만 분명 그들 부자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게 뻔했다.

    윤의 제지로 권총을 집어넣은 뒤 사내는 인성을 철봉처럼 생긴 쇠기둥에 묶었다. 바로 곁은 가죽 채찍 진열대였다. 아이는 고개를 꺾은 채 정신을 잃고 말았다. 군관이 욕조로 가서 물을 한 통 들고 와 현의 얼굴에 끼얹었다. 입구 쪽 탁자 위에 얹혀 있는 전기 곤로의 인두가 간간이 불꽃을 튕겼다. 아이가 깨어나 얼굴을 곧추세웠다. 주위를 살피다가 그 동작을 지켜보고 있던 인성과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

    기절했던 아이 같지 않게 눈가에 주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공포를 털어낸 깨끗한 눈빛이었다.

    “…….”

    인성은 아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너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 고난으로 단련된 아버지의 경험도 여기서는 아무 쓸모가 없으니……. 사내가 이번에는 인두를 집어 들었다.

    “그런다고 뭐가 나올 것 같습니까?”

    현이 크게 소리쳤다. 가해자를 쳐다보는 눈길에 불꽃이 튀는 듯했다. 두려움이 없을 리 없겠지만 아버지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야, 이놈들아. 나를 때리고 나를 지져라.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혼란으로 동요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였다. 인성은 있는 대로 목청을 돋우었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나를…….

    “그러니까 순순히 말로 할 때 들어. 아들이 죽어 가는 것을 뻔히 보고도 입을 다물고만 있을 건가?”

    빈정대는 것인지, 나무라는 것인지……. 붙잡았을 때 죽여 버리는 것인데. 인성은 윤을 노려봤다. 그 프로젝트를 타격 대상인 북에 넘겨주면 전부 무너지고 만다. 우선 전면전이 발발하였을 때 북의 선제공격을 막을 도리가 없다. 현대전은 피아간의 대치 전선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경우에 따라 후방이 더 위험해지기도 한다. 지난 50여 년간 진행된 한반도의 정세와 남북의 군사력, 북의 동향 등을 참작하여 종합적으로 결집해 놓은 작전 계획이었다. 그것을 공개하면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정보와 작전 능력이 노출되고 북은 그것을 역이용하게 된다. 당시 프로젝트의 반대론자들은 누설의 위험성을 제일 큰 이유로 삼았다. 그렇지만 국지전을 포함한 제반 상황에 대비하여 그런 준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 외에도 치명적인 손해가 있다. 다시는 그런 프로젝트를 갖지 못할뿐더러 무엇보다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 북의 요소요소에 심어 놓은 핵심 요원들을 모조리 잃게 된다는 점이었다. 현장에서 김정일과 그 측근의 움직임을 세밀히 파악하고 있는 요원들을 잃어버리면 향후 대북 정보는 20년 이상 후퇴하게 된다. 차라리 이대로 입을 닫아야 했다.

    “당신들이 뭘 원하는지 모르지만 내겐 비밀도 계획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발 저 아이만은 살려 주시오.”

    현만 아니라면……. 아들을 위해서는 뭐든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누설하여 목숨을 건진다고 하더라도 남으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북에서의 삶 또한 뻔했다. 그것은 자신은 물론 아들을 위한 일도 아니었다. 목숨을 연명한다고 해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린 목숨은 구차할 뿐이었다. 지난 30년 세월은 끝없이 자신을 죽이는 연습을 하면서 영위해 온 삶이었다. 일부만 공개하여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그 프로젝트는 단계마다 상호보완적이고 단기간에 실현되는 계획이다. 하나라도 빠뜨리면 금방 그 공백이 눈에 띄게 된다.

    “우리도 당신이 그리 쉽게 입을 열거라곤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지. 이 군관. 시작해.”

    악귀가 있다면 저런 음성을 지녔을 것이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이 군관, 그 사내는 걸어 다니는 고문 기구였다. 어쩌면 표정도 없이 태연히 저런 짓을 해낼 수 있을까. 흉악하게 맺어진 콤비였다.

    벌겋게 달아오른 인두가 벌거벗은 현의 왼쪽 가슴께에 닿았다. 연기가 시퍼렇게 피어올랐고 현의 신음이 방 안 가득 퍼졌다. 몸을 꼿꼿이 세운 현은 상체를 뒤틀었다. 아, 저놈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현아. 아이는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썼다. 윤이 손을 들었다. 다른 인두를 들고 현에게 다가가던 이 군관이 걸음을 멈추고 윤을 바라보았다.

    “어떤가. 아들을 죽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지? 그런 일을 하려면 이곳에 끄나풀이 있어야 할 텐데 그들의 정보 하나만 주면 아들은 살려주겠다.”

    윤의 음산한 억양이 화살처럼 가슴에 와서 박혔다. 잔인한 놈들. 천벌 받을 놈들. 인성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러니까 말하라고 했잖아. 아들을 살리고 싶으면 말하란 말이야!”

    갑자기 윤이 맞고함을 질렀다. 인성은 잠시 K17의 실체를 떠올렸다. 그는 김정일의 산책 시간, 즉 몇 시에 어느 통로로 다니는지, 사무실과 별장들의 위치와 집무실의 구조, 지하 통로, 행사 일정, 수행원의 특징 같은 것을 세세히 제공하는 요원이었다. 이들도 그런 요원의 색출에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안 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인성은 목울대가 터지도록 큰 소리로 그렇게 소리친 후 혀를 내밀고 힘껏 그리고 깊이 깨물었다. 입술에 잘리다 만 혀가 매달려 너덜거렸고 순식간에 입 안팎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윤과 사내가 깜짝 놀라 달려왔다. 그때였다. 현이 아버지를 부르며 발악했다. 얼마나 용을 썼는지 오른쪽 손목을 묶었던 가죽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현은 재빨리 몸을 틀어 사내가 올려놓았던 인두를 치우고 불이 활활 타고 있는 전기 화로를 집어들더니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걸 자신의 머리에 뒤집어썼다.

    ―안 돼.

    인성의 잘린 혀가 피를 뿜었다. 그때 현의 머리 위에 불똥이 튀면서 검고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머리카락과 살이 타는 냄새가 방 안 가득 퍼졌다. 왼 팔목이 묶인 채 현은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화로가 떨어져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두 사람이 달려와 수건으로 인성의 입에 재갈을 물린 뒤 다시 현에게로 달려갔다. 이 군관이 매달려 있는 현의 왼쪽 팔목에서 가죽끈을 풀어냈다. 머리카락과 두피는 모두 타 버렸고 전신은 이미 축 늘어진 뒤였다. 이게 무슨 일이냐. 아,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현아. 인성은 쇠기둥에 묶인 채 온몸을 비틀었다.

    그렇게 가면 안 된다. 이건 아니다. 이건 개죽음이다. 안 된다. 그렇게 가서는 안 된다. 점차 정신이 흐려졌다.

    네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마냥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고맙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흡사 나를 알아보는 것 같던 올망졸망한 그 눈망울을 바라보면서 나는 감탄했단다. 내 모든 것을 이어받은 분신, 피와 살을, 생각과 가슴까지 고스란히 이어받았던 아들아. 너는 또 다른 나였다. 네가 그 씩씩한 모습으로 환히 웃을 때엔 나는 마냥 행복했고 혹여 네가 아프기라고 하면 전신이 쓰리고 괴로웠다. 어떤 위기에 처하든 네가 있다는 사실만 생각하면 저절로 기운이 났다. 네가 없는 삶을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니. 너의 존재는 바로 삶의 보람이었고 근원이었다.

    내 아들 현아! 너는 어쩌면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군인이 되어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좇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떨렸든지……. 바로 이게 살아가는 보람이려니 했다. 바르게 살았구나, 내가 정말 멋진 아들을 두었구나 싶었다.

    아, 그리고 얼마 전 네가 육사 합격 통지서를 받던 그날은 참으로 잊을 수가 없구나! 화랑의 후예가 된 늠름한 네 모습을 그려 보다, 그려 보다 이젠 이렇게 아버지의 뇌리에 박혀 있잖니. 너는 나의 자존심이었고 명예였다. 그런 너를, 공연히 허욕을 채우려다 죽였구나. 자랑하고 싶었다. 생활 능력도 없는 철부지를 내버려 뒀던 그 일가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네가 얼마나 든든하고 멋진 아들인지 똑똑히 알게 해 주고 싶었다. 당신들이 멸문의 집안이라고 멸시했던 우리가 이렇게 다시 일어섰다고 말이다. 아,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교만이었고 허영이었던 것을……. 세상을 훨훨 날았던 아버지가 집안에서는 그렇게 옹졸했구나. 현아. 어떡할까. 아버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허탈감으로 몸부림을 쳤고 정신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인성의 팔다리를 병상에 묶은 채 한 달 이상 주사를 놓고 강제 투약을 하며 설레발을 쳤다. 혀는 설근에서부터 반 이상이 잘려 나가 음성언어 기능이 상실되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말을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그 혀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 아직도 윤의 낭패스런 자탄이 귀에서 윙윙댔다.

    “그렇게 일렀건만 이게 무슨 실수야?”

    그는 이 군관을 심하게 나무랐다. 실수라고? 사람을 죽여 놓고 실수라고……. 그렇게도 사람을 죽이는 너희가 정색을 하며 어떤 말을 한들 달라질 것이 없지 않은가. 너희를 결코 그냥 두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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