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은효
  • 법무법인 동명,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 사법정책, 민사법, 행정법
연락처 : 031-483-5900
이메일 : kimeunhyo@hanmail.net
홈페이지 :
주소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707-3 대한법조빌딩 206호 법무법인 동명
소개 : 법무부 제도개선 위원회 위원, 대한변호사협회 이사, 대의원,법제위원회 민사법제2소위원장, 성년후견법률지원 소위원장,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감사.

이 포스트는 0명이 in+했습니다.

    목록이 없습니다.

    이성과 역사

    0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 대표적인 것들로는 감각(지각), 상상력, 기억, 오성(이성), 도구를 조작할 수 있는 능력 등을 들 수 있다. 인식이란 신체를 통하여 세계를 지각하는 등 하여 그렇게 얻어진 자료들을 분석하고 언어를 통하여 개념화하고 법칙화 하는 것을 말한다.

    인식의 주안점은 이성의 개념화에 있는 것이고 지각은 그 개념화의 근거로 작용하며, 우리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감각적 존재들이지만 그 감각적 존재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이성이다.

    서구 역사를 통해서 이성이라는 언어의 역사와 개념 및 의미의 두께를 살펴보고, 구체적으로 그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법과 규범 등 사회제도에 어떠한 모습으로 구현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Logos라는 언어는 그리스어 Legein “말하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일차적 특성으로 말하는 것, 언어능력에 있으며 “이성”, “(신의) 말씀”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고·중세철학에서의 이성은 일정한 실체로서의 영혼·정신을 의미하며, 신은 이성이고 만물에 충만해 있는 유일자이기 때문에 결국 신은 만물을 통일성 속에 가두며 사유나 원리들에 따라 만물을 움직이고 변화하게 하는 보편이성이다. 이 말은 모든 인식주체에 공통되는 이성이라는 근대적인 의미가 아니라 모든 사물에 공통되는 우주의 이법(理法이)라는 뜻이다 ― 헤라클레이토스, 스토아학파, 플로티노스 등.

    위와 같은 이성의 개념은 서양 고대의 자연법사상(인간사회의 최고의 가치기준으로 나타난 영구법)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하였고 이후 스토아학파의 세계시민주의적 이상(만민법)의 근거가 되었다. 그 후 서로마제국이 망하고(476년) 15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약 1,000년 동안을 중세기라고 하는데, 당시의 이성은 어떠한 의미를 지녔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스토아학파에서 사용된 영원의 법(온 세상에 걸쳐 이성의 원리가 확산되며 만물을 지배하는 역할과 힘의 원인이 곧 이성)의 개념은 신의 이성이며 사물의 자연적인 질서를 유지시켜주고 그것의 혼란을 막아주는 신의 의지라는, 즉 기독교의 인격적 신의 이성과 의지라는 기독교적 요소(창조의 이념)로 등장하며, 법을 영구법(lex aeterna), 자연법(lex naturalis), 세속법(lex temporalis)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후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는 고대철학(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기독교신학의 사상을 방대한 체계로 집대성하고, 기독교적 입장에서 인간 본질의 근원, 궁극적인 목적을 신 안에서 찾고자 하여 “신이 모든 사물을 창조하였기 때문에 신의 지혜나 이성의 산물이 곧 인간의 본질로 자연법이다”라고 하였다. 즉 고대철학에서의 이성이 자연(세계)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면, 중세는 신에서 찾았으므로 중세의 이성은 신의 창조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르네상스 운동과 더불어 15세기부터 근대로 접어들면서 이성에 대한 형이상학/존재론 중심의 고·중세 철학이, 이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자율성으로 인간의 능력은 이성을 전제로 하는 인식론/역사철학 중심으로 전환하게 된다. 즉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문예부흥, Renaissance) 운동과 종교개혁은 중세를 격파하고 근대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정신적 운동의 하나가 되었고, 코페르니쿠스·케플러 등에 의한 자연과학의 발달과 도시지방 중심에서 국민국가 중심으로의 이행 및 제3계급(신흥상인계층)의 등장, 그리고 데카르트에 의해 지향된 새로운 종류의 합리주의(Rationalismus) 등은 근대인의 사유를 크게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코기토라는 인식주체를 확립하고, 이성을 단순히“명석한 인식”, “보편적으로 타당할 수 있는 필연적인 법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으로 보는 인식론적 양상으로 전환시켰다. 따라서 고·중세 자연법의 근거도 인간의 이성에 둠으로써 영구법을 전제로 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에서 출발하여 자연법의 원리를 찾아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위와 같이 근대의 사유방식은 사물들을 이성을 통해서 판단하는 인식의 자명성의 원리(합리주의)와 개인은 이성의 소유자요 자유의 주체로서의 인간, 즉 자신의 행위를 이성으로서 충분히 통제해 나갈 수 있는 자유의지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발견된 것으로, 근대의 개인주의는 그 기초요 시초로서 사회계약이론을 가지게 된 것이다.

    위 근대의 사유방식(합리주의·개인주의 등)은 당시의 개인의 권리, 사회와 국가의 법 이론을 형성하는 각종 제도와 법률(천부불가양의 인권, 국민주권, 권력분립, 대의제도, 법치주의)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그 예로는 자연법의 근거를 인간의 이성에 둔 근대 자연법의 시조라 불리우는 그로티우스(Hugu Grotius, 1583~1645)를 비롯하여 홉즈(T. Hobbes, 1588-1679), 로크(J. Locke, 1633~1704),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등을 들 수 있다.

    데카르트가 인간의 이성을 해방시킨 후 철학적 추세는 모든 것을 이성 중심주의로 해석, 주체는 대상을 실체화하는 타성에 젖게 되었고 실체를 이해하는데 어울리는 분석을 주요수단으로 삼게 되었다. 데카르트에게서 실체론이 성립되고, 영국의 경험론의 시련을 거치고, 칸트에게서 세계를 구성하는 역할을 부여받고(인식의 범위를 현상계에 국한 인식이란 기본적으로 대상과 사유의 일치가 아니라 사유가 대상을 일방적으로 구성), 헤겔에게서 절대권력(이성)을 얻기까지 수세기 동안 이성은 견고하고 단일한 인식의 출발점이자 구심점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초의 물리학과 화학 분야 등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성장과 그 후 부의 집중과 편재, 노동자의 빈곤과 실업, 노·사간의 갈등과 대립과 같은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은 칼 마르크스(K. H. Marx, 1818~1883)의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출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사상은 19세기 팽배한 이성중심주의의 자유의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지적하면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고 “인간을 자신의 의지와 독립적인 불가피한 존재” 속에 있다고 하면서 이성과 자유의 한계를 구분하였고,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난 가치(교환가치) 자체를 추구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이성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데 이어 인간자체도 중심에서 탈락하게 되면서 20세기 구조주의 인식론이 등장하는 전조를 예고하고 있었다.

    니체(F. W. Nietzsche, 1844~1900)는 자유주의 이성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의지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보고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 하는 계기로 간주하면서, 이성은 예전과 같이 인간의 인식과 경험에서 독보적인 동일성을 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프로이드(S. Freud, 1856~1939)는 정신과의사이면서 정신분석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한 자로서, 주체의 분열·무의식의 개념을 제기하면서 주체·의식·자아를 동일하고 자명하게 보는 이성중심주의의 철학,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근대적 인간개념은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위와 같은 사상의 전환은 근대에 형성된 인간에 대한 개인주의적·자유주의적 성향을 집단주의적·사회주의적 성향으로, 즉 급속하게 변형된 사회경제적 조건하에서 인간의 자기실현과 자유실현으로 하는 사회제도와 규범(사회법,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정의 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이성과 의식을 출발점으로 삼았던 근대철학의 틀에서 벗어나 반 인간주의와 무의식을 강조하는 구조주의의 사상적 특징은 주체와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형이상학과 정면으로 대립하게 되고, 이러한 사상적 전환은 양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파시즘과 나치즘, 스탈린주의 등 현대사의 역사적 격랑 속에서 인간(이성)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구조주의에서 강조하는 것은 근대철학에서처럼 인간 이성이 강력한 주체로서의 지배적인 지위를 누리지 못하며, 주체로부터 출발하거나 주체를 형성 또는 설명하려는 모든 철학적 시도는 주체의 배후에 놓인 구조의 힘을 무시하거나 망각하는 것으로 보고, 인간의 경험으로 접근할 수 없는 사회구조, 개별의식이 아닌 사회적 무의식…구조주의에서는 인간의 지평은 없으며, 사회의 주체는 구조이고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 구조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로서는 레비스트로스(C. Levi-strauss, 1908~1991), 자크라캉(J. Lacan, 1901~1980), 루이 알튀세르(L. Althusser, 1918~1990), 미셀푸코(M. Foucault, 1925~1995) 가 있으며, 데리다(J. Derrida), 세르(H. Serres), 리오타르(J. F. Lyotard) 등 후기 구조주의자들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성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그 표현이 어떻든 지속적으로 새로운 이성관을 제시하며, 이성을 통해 인간해방과 자유실현, 궁극적으로 사회진보가 가능하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 예로 1930년대 초 막스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는 자본주의적 시장교환 체계의 맹목적 우연성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계를 비판하면서 사회적 생산과정을 이성의 원칙에 따라 목적의식적이고 자주적으로 통제하자고 주장하였고(‘이성실현’에서‘이성비판’으로), 위르겐 하버마스(J. Habermas)는 이성과 계몽주의의 전통의 대표적 전략적 합리성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성을 극복하고, 의사소통적 합리성(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의 일반화)의 활성화를 통하여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였고 (‘이성비판’에서‘의사소통적 이성’으로), 악셀 호네트(A. Honneth)는 사회적 무시를 넘어 인간의 동등성과 차이가 인정되는 사회적 인정질서 형성을 개인적인 자유실현과 이성적 인륜성 실현의 필수조건으로 본 것(‘의사소통관계’에서‘상호인정관계’로)이 그것이다.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현재의 이성은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거대한 지배문명을 발달시킨, 분석하고 계산하고 조작하는 합리적·분석적 이성에의 맹신으로부터 초래된 현대문명의 폐단에 대하여 자기비판과 반성을 통하여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이성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그 개념과 의미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서 그 언어가 함의하고 있는 의미의 역사와 두께는 당시의 시대적·사회적·역사적 상황 등을 내재화하고 있고, 동시대인들의 삶과 사상 및 사회·국가의 이론구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성이라는 체계를 통하여 세계를 모두 설명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며 다른 체계들과도 끊임없이 서로 작용하고 보충하면서 인간의 역사가 형성되고 변천되고 있음을 또한 알고 있다.

    순수하고 절대적인 이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시대와 환경 그리고 개인에 따라 상이하고 이질적이며 다수적인 합리화의 절차만이 있을 뿐이라는 프랑스아샤틀레(1925-1985)의 말에 귀를 귀울이게 된다.

    따라서 세계(존재, 실재)에 대하여, 인간(주체)에 대하여, 그리고 언어(기호, 문화)에 대하여 우리들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의 끊임없는 연구와 탐구를 통한 폭넓은 이해는 우리들의 삶과 각종 규범과 제도적 장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