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용섭
  • 법학교수, 변호사
  •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 사법정책, 법무,경찰,행정, 재야법조, 법률시장, 변호사양성, 판결결정, 행정법, 헌법재판
연락처 :
이메일 : kasan6@hanmail.net
홈페이지 :
주소 :
소개 :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행정법, 스포츠엔터테인먼트법) 변호사, 법학박사(독일 만하임대) 취미: 바둑, 음악감상, 산책, 스포츠, 독서

이 포스트는 0명이 in+했습니다.

    목록이 없습니다.

    남하 서원우 교수님 서거 8주년을 맞이하여

    0

    ▲ 서원우 교수님

    ▲ 故서원우 교수

    수많은 제자들의 존경을 받아오던 南河 서원우 교수님이 2005년 10월 16일 향년 74세로 홀연히 세상을 떠나신지 8년여 기간이 지나간다.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아 광음여류(光陰如流)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시간은 많은 것을 망각 속에 잊혀지게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명료하게 기억나는 것도 있다. 서원우 교수님과의 깊은 인연의 기억이 그러하다. 나는 서원우 교수님의 지도를 받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대 대학원에 1983년 3월에 입학한 후 서 교수님을 연구실에서 찾아뵈었을 때의 첫 만남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한 상태에서 서 교수님의 연구실을 방문하였는데 정감이 따듯하시고 인간미가 충일(充溢)하시며 대인적 풍모(風貌)를 갖추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이러한 최초의 인상은 서 교수님의 지도를 받고 행정법학을 배우는 과정 내내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나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대구에 있는 육군 제2군 사령부의 수사장교의 복무를 마친 후 1990년에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다. 변호사를 개업하려던 당초의 진로를 변경하여 행정법 연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제처 사무관에 특별 채용되어 공직생활도 함께 병행하였다. 서울대 대학원의 박사과정을 수료한 시점에서, 때마침 법제처의 해외파견공무원으로 1992년 여름에 독일로 공법학을 연구하기 위해 유학을 갈 수 있었다.

    나는 출국하기 전에 지도교수님인 서원우 교수님의 연구실을 방문하여 독일에서 어떤 방향으로 연구하여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는 것이 좋은지 질문 드렸다. 서 교수님은 그 당시 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하지 않았던 분야인 비권력행정 분야인 급부행정법(Leistungsverwaltungsrecht) 이 앞으로 중요시되는 분야이므로 이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해 주셨다.

    나는 서 교수님의 조언에 힘입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는 심정으로, 독일 만하임대학교의 로엘레케(Gerd Roellecke) 교수님의 지도하에 급부행정에 관한 분야를 집중 연구하여 “한국과 독일의 급부행정의 법률유보- 경제보조금의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약 2년 반만에 마치고 1995년 1월에 귀국할 수 있었다. 그 후 법제처 사회문화행정심판담당관을 마지막으로 관료생활을 마친 나는 서 교수님이 정년을 맞이한 해인 1996. 9월부터 경희대에서 행정법 전임교수로 학자의 삶을 시작하였다. 그 후 변호사 활동을 거쳐 전북대 로스쿨의 행정법 전임교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서원우 교수님의 연구방향제시와 적절한 조언 뿐만 아니라 학문의 세계에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신데 대해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서원우 교수님은 학문과 풍류를 겸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따뜻한 인간미와 인덕을 갖추신 한국행정법의 거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의 연찬에 있어서는 엄격한 편이었지만 학회를 마친 후 회식자리에서 제자들과 술을 한잔 하신 후 노래를 부르시면 그 가수 뺨치는 솜씨로 앵콜이 이어졌던 기억이 있다. 서 교수님의 별명이 서인수라고 할 정도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변함없이 왕년의 명가수인 남인수의 애상적인 노래를 즐겨 부르셨다. “산유화”, “애수의 소야곡”을 남인수에 뒤지지 않는 미성으로 멋지게 부르시던 서 교수님의 구슬픈 곡조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서원우 교수님은 각종 학술대회나 행정법이론실무학회 세미나에 자주 참가하셨고, 활기 넘치는 토론과 서 교수님의 명쾌한 코멘트를 들으면서 제자들은 학문적으로 성장하였다. 서 교수님은 열정적으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장려하는 일에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서 교수님은 제자의 지도와 후학의 양성에 있어 세세한 부분을 자세히 알려주시는 방식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도록 하여 지도하셨다. 마치 공자가 반듯하게 네 모퉁이가 있는 물건에서 “한 모퉁이를 들어보여 주면, 나머지 세 모퉁이는 스스로 대답할 수 있도록 (擧一隅, 以三隅反)”창의적 방식으로 대학원의 수업이나 세미나를 진행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 교수님의 지도력과 역량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한국 행정법학의 산실(産室)로 자리잡은 한국행정법연구소와 행정법이론실무학회를 결성하고 이를 시스템화하여 학문적 공동체를 창출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까지도 한국 행정법학계의 최대 군단(軍團) 인 이른바 “서원우 군단”이 형성되어 수많은 제자들이 다방면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다. 매년 정초에 서원우, 김동희, 최송화 교수님 등 3분 선생님을 모시고 신년하례회를 개최할 때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어떤 주제로 어떤 구상하에 신년에 연구할 것인지 한마디씩 이야기 하도록 하여 제자들이 계속적으로 목표의식을 갖고 한해를 보내도록 한 서교수님의 헤안(慧眼)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아울러 서원우 교수님은 우리의 현안문제의 해결을 위해 비교법적 연구방법론의 필요성을 역설하셨고, 약 20년의 역사를 갖는 동아시아행정법학회의 창립에 일익을 담당하시고 초기단계에 있어서 정착과 발전을 위해 중추적 역할을 맡으셨다. 서원우 교수님은 한국의 시오노(塩野宏) 교수로 통할 정도로 일본통이시면서도, 미국에서 유학한 영미법에 정통한 학자이시다. 정년 이후에도 일본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 등 한국의 법학을 외국에 전파하고 한국법학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

    나아가 서 교수님은 정년 이후에도 행정법학에 대한 치열한 열정과 더불어 술과 음악의 풍류속에 낙관적 삶을 사셨다. 건강이 악화되신 후에도 다양한 주제의 논문을 발표하시면서 행정법학의 발전을 위해 일평생을 헌신하신 점은 제자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서 교수님은 행정법학의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토대로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이론 정립을 시도하셨고, 현행 제도와 이론의 문제점을 재검토하고 법해석학의 범주에서 나아가 법정책적 방향을 모색함과 아울러 한국행정법학의 시스템 전환과 방향성 모색이라고 하는 거대담론의 관점에서 논의하시었다. 특히, 행정법은 국가권력에 대한 통제수단이면서도 동시에 정책실현의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와 같은 2개의 노를 저으며 균형을 잡아 국가라는 배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셨다.

    이와 같이 서 교수님은 새로운 사회문제에 새로운 이론을 가지고 대응하면서도 공리공론을 배격하면서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학문경향을 보여주셨다. 정년 이후에도 일본에서 교육과 연구 활동을 수행함과 동시에 젊은 연구자 못지않은 왕성한 학술활동은 물론 제자 및 후학에 대한 격려와 연구의 장려 등 대학자로서의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셨다. 나는 서원우 교수님을 존경하는 제자의 한사람으로서 한국 행정법학의 향상과 발전을 위해 연구에 전심전력으로 매진하고자 하는 다짐을 하면서도 바둑과 음악 감상 등 풍류적 삶의 여유를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끝으로, 학문하는 자세와 정직하고 바른 삶의 방향을 일깨워 주신 나의 은사 서원우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서거 8주년을 맞이하여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