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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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제9회 법원행정고등고시 합격, 현재 남양주시에서 법무사로 일하며 소설가로도 활동, 법률신문사 간 "법조 50년 야사" 집필, '월요 법창'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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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끝 그리고 시작(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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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그리고시작11

     

    11

     

    언젠가 꿈에서 이런 상황에 빠져 쩔쩔맸던 기억이 났다. 악몽에서 깨어난 그 밤의 두려움과 절망감의 여운들……. 침투 요원들은 작전을 수행하는 도중 피치 못해 북에 잔류하거나 낙오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그런 상황에 대비하는 훈련을 강도 높게 한다. 보통 귀환 루트를 따라 이동을 하거나 본대의 접선을 기다리며 은밀한 지점에서 대기 한다. 그리고 때론 위급한 상황에서 자결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강박관념들이 종종 꿈으로 나타나곤 했으나 이렇게 현실화될 줄은……. 개인 일로 여행을 하는 중에 이런 사태가 발생할 줄은 예상조차 못 했다.

    북의 미그기가 나타난 지 10여 분이 채 되지 않아 항공기는 두어 번 선회하는 것 같더니 어떤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했다. 창으로 운무에 갇힌 바다의 풍경이 잠시 보였다. 바닥이 고르지 않은지 기체가 크게 요동했다. 주변에는 오래된 창고 외에는 별다른 시설물이 보이지 않았다. 원산비행장의 부속 활주로인 듯했다. 항공기가 멎자 안전원 복장을 한 사람들이 기내로 들어와 납치범 2명을 먼저 데려갔다.

    30여 분쯤 지나서 덮개가 없는 일곱 대의 군용 트럭이 도착했다. 우왕좌왕하며 좀처럼 질서가 잡히지 않던 승객들은 한참 만에 트럭 1대당 20여 명씩 나눠 탔다. 사망한 보안 요원 2명과 인성의 쇠침을 맞은 납치범 1명은 항공기에 남았다. 슈윅슈윅,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만 들릴 뿐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량은 시가지를 우회하여 어디론가 느릿느릿 나아갔다. 거리에는 사람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늘어선 건물들은 우중충했다. 변두리는 흡사 유령의 도시처럼 음침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트럭은 먼지를 일으키며 학교인 듯한 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낡은 건물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보였다. 정복을 입은 안전원과 사복 차림의 사내 여남은 명, 그리고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자 세 명이 길게 늘어서 일행을 맞았다. 해가 산 너머로 지자 오싹한 냉기가 피랍자들을 에워쌌다.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은 승무원과 남녀 승객 등 3개 군으로 분류가 되었다. 그들은 먼저 승무원 21명을 운동장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태웠다. 버스가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객들은 숨 쉴 틈도 없이 교실로 떠밀렸다. 20~30명당 교실 1개가 배정되었다. 실내에는 의자나 책상이 하나도 없었다. 치마저고리 차림을 한 여자들이 종종걸음으로 안팎을 들락거렸다. 급하게 청소를 했는지 여자들 치맛자락이 먼지와 곰팡내를 몰고 다녔다. 한 사람당 담요를 1장씩 나눠 주었다.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엄습하는 한기를 막기 위해서 사람들은 담요를 바닥에 깔거나 몸에 둘렀다. 전신 경련으로 혼절한 사람도 나왔다. 전파방해 때문인지 휴대전화는 여전히 터지지 않았다. 인성은 입력되어 있던 전화번호를 모두 삭제했다.

    “도대체 어떻게 검색했기에 권총이나 폭발물이 버젓이 통과했을까?”

    누군가의 불평이 긴 침묵을 깨뜨렸다.

    “승무원들과 짜면 무기는 다른 경로로 들일 수가 있다나 봐요.”

    이 사람도 엔간히 적막을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이젠 어떻게 되는 거죠? 못 돌아가나요, 집에는?”

    사색이 된 어떤 여자는 곁에 있는 사람들을 붙들고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제대로 된 답이 있을 수 없었다. 엄습하는 불안감을 견디려면 무슨 내용이든 대화가 필요했다.

    “에라이, 될 대로 되라지.”

    어떤 남자가 담요를 얼굴까지 뒤집어쓴 채 그렇게 구시렁댔다. 실내는 수런대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인성은 일부러 아들 현과 떨어져 다른 방에 들었다. 아까 항공기에서 공연히 나섰다는 생각 때문에 잠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칫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아들에게도 화가 미칠지 모른다. 막연히 밀려오는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단전호흡을 시작했다. 기진한 사람들은 저녁을 거른 채 하나 둘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새벽, 어둠이 걷히자 갑자기 주위가 부산스러워졌다. 운동장으로 승용차가 들어오고 양복을 말쑥하게 입은 사람들이 주위를 어슬렁거리더니 아침 식사 후 탑승객들에 대한 개별 면담이 시작되었다. 엊저녁부터 줄곧 굶었지만 북에서 내놓은 주먹밥이나 소금 국을 입에 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보위부(국가안전보위부: 북한 국가주석 직속 비밀경찰 기구) 요원들의 숫자가 훨씬 많아진 듯했다. 피랍자의 성분 분석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불려 간 사람들은 다른 곳에 따로 수용이 되는 듯 단 한 사람도 본래 있던 장소로 돌아오지 않았다. 인성은 거의 마지막 차례에 비교적 규모가 작은 교실로 불려 갔다. 면접실은 몇 군데 나눠서 설치된 모양이었다.

    “어서 오오.”

    인민복을 입은 사내가 건성으로 맞았다. 그의 곁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는 2명은 양복 차림이었다. 셋 다 바싹 마른 체격이었는데 한껏 과장된 표정들이었다. 실내는 급조된 공포와 어색함으로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인성은 앞에 놓인 나무 걸상에 앉았다.

    “이름이 머야요?”

    인민복 차림의 사내가 들고 있는 문서에 연필로 표시하면서 물었다.

    “황윤식입니다.”

    “무슨 일 하나요?”

    “장사꾼입니다.”

    “무슨 장사를 하오?”

    양복 입은 사내가 끼어들었다. 입을 닫고 있는 다른 사내보다 키가 크고 젊어 보였다.

    “수영 장비를 판매합니다.”

    그가 운영하는 단 본부는 외형상 요원들의 수중 장비인 잠수복이라든가 수경, 오리발 같은 물품을 취급하는 회사였고 그는 대표이사였다. 단과 요원들의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집은 어데요?”

    “서울 태릉에 삽니다.”

    “부자들 동네 사는구만요.”

    곁의 키 작은 사내가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태릉에 무슨 부자들이 산담. 인성은 마로니에의 넓은 낙엽이 뒹굴던 육사와 선수촌 앞 도로의 풍경을 떠올렸다.

    “개지구 있는 물건들 몽땅 꺼내 놓으라요.”

    키 큰 사내의 말이 떨어지자 인민복 사내의 입이 히죽 벌어졌다. 그는 곁에 있는 원통 안을 힐끗 들여다봤다. 인성은 호주머니에서 지갑과 휴대전화, 자동차 열쇠를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양복 입은 키 큰 자가 지갑을 뒤적여 돈과 주민등록증을 꺼내면서 명령하듯 말했다.

    “윗도리랑 모두 벗기요.”

    “예?”

    “속옷은 일없소.”

    인민복이 선심을 쓰듯 말했다. 그들의 지시에 순종하는 것만이 고생하지 않고 살아남는 길이리라. 인성은 겉옷을 모두 벗었다. 인민복 사내가 인성이 벗어 놓은 옷을 뒤지기 시작했다. 먼지 한 톨 놓치지 않을 듯 샅샅이 훑었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인성의 움직임을 노려보고 있던 키 작은 사내가 인민복에게 뭔가 눈짓을 했다. 소지품은 인민복의 날랜 손놀림 앞에서 즉시 종류별로 분류되었다.

    “옷 도루 입기요.”

    키 큰 사내의 지시에 따라 인성은 옷을 입었다.

    “사천에는 뭘 하레 갔댔소?”

    옷을 입은 뒤 자리에 앉자 키 작은 사내가 물었다.

    “묘제를 지내러 갔습니다.”

    “묘제?”

    “음력 10월에 지내는 조상에 대한 제사지요.”

    “집이 태릉이라멘서요?”

    “예.”

    “서울 사람이 경상도까지 가서 무슨 제살 지낸다는 거요?”

    참, 그랬다. 여기는 제사에 대한 관념이 별로 없는 곳이지.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도 이젠 제사는커녕 고작 산소 관리나 하면서 조상을 생각할 뿐이라고 들었다.

    “아, 그건……, 남쪽에선 보통 조부나 증조부 대까지만 집에서 제사를 지냅니다. 그리고 그 윗대의 조상은 종중이 있는 고향에서 위패를 모셔놓고 1년에 한두 차례 자손들이 모여 공동으로 시제사를 모십니다.”

    “거참, 무슨 지랄들인지 원.”

    키 큰 사내가 혀를 찼다.

    “주루 어데서 생활을 하우?”

    키 작은 사내가 물었다.

    “서울입니다.”

    “서울이 다 당신 땅이오?”

    “아, 자, 잠실입니다.”

    인성은 ‘주식회사 수정’의 건물이 있는 종합운동장 부근 사무실 위치를 들먹였다.

    “나가 보시우.”

    키 큰 양복이 또 한 번 혀를 끌끌 차더니 출구 쪽으로 턱짓을 했다. 돌아서면서 힐끗 보니 인민복의 사내가 인성의 소지품 중에서 뭔가를 꺼내 키 작은 사내의 양복 호주머니에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시선을 여전히 책상 위의 서류에 고정하고 있는 사내들이 가소로웠다. 승객들의 신원파악보다는 소지품에 더 눈독을 들이고 있는 듯했다. 출입문을 열자 전신에 한기가 달려들었다. 여자 안내원 하나가 무표정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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