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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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제9회 법원행정고등고시 합격, 현재 남양주시에서 법무사로 일하며 소설가로도 활동, 법률신문사 간 "법조 50년 야사" 집필, '월요 법창'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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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끝 그리고 시작(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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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그리고시작-10

     

    제 2 부

    10

     

    비행기 멀미를 하다니…….

    프로펠러 소음이 귓속을 후벼 파는 헬기를 타고 무중력 기층을 오르내리면서도 끄떡없었는데, 아무래도 과음이 원인인 듯했다. 군사용인 치누크나 UH-1H 헬리콥터를 화물차에 비교한다면 지금 탑승한 A320 기종은 에어버스로서 최고급 승용차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무슨 멀미람. 하긴 대형 화물차 기사가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서 멀미했다는 소리를 듣긴 했었다.

    오랜만에 참석한 시제(時祭)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함께 뛰놀던 친척들도 모인 자리였다. 옛 친구 같은 일가붙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 유년의 추억 속으로 이끌려 갔고 기분은 한껏 과장되게 마련이었다. 특히 이번에는 아들 현이 처음 동행한 자리였다.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해 놓고 입교를 기다리는 현에 대해서는 아저씨들의 관심이 컸다. 집안내력인지 고령자가 별로 없어 이젠 그보다 항렬이 높은 분들이 몇 되지 않았다.

    “제각(祭閣)은 자네 몫일세.”

    아마 아들 현이 대를 이어 육사에 합격하였고 그 사실을 무척 대견해하고 있는 인성의 마음을 읽은 모양이었다. 여러 아저씨가 벌써 그 턱을 기대하면서 주문을 했다. 몰락 양반의 후손들로 농업에 종사하며 선조의 제례를 세습하여 지키는 이들은 제대로 된 제각 하나 갖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라고 했다.

    선산은 종손의 개인 명의로 된 임야였다. 4대조 이상의 산소를 관리하고 있는데 위토에서 수확하는 농산물은 인건비로 제해 버리고 수입원이라곤 종원들이 내는 회비뿐이었다. 그렇게 재원이 시원찮다 보니 종원들은 매년 노천에서 묘제를 지내는 형편이었다. 원래 5대 봉사가 원칙이었지만 요즘은 가제로 지내던 분들 중에서 3대가 넘으면 신위를 옮겨 문중 주도의 시향(음력 2월, 5월, 8월, 11월에 가묘에 지내는 제사)으로 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농가의 방 하나를 얻어 보관하는 제사 관련 비품도 포화 상태가 되어가는 실정이어서 인성은 현의 육사 합격 기념으로 제각 건축 비용을 쾌히 부담하기로 했다.

    인성은 그들에게 둘러싸였던 기분에서 겨우 빠져나와 곁의 현을 바라다보았다. 아들은 단잠에 빠진 듯했다.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처음 대하는 친척들의 시선이 꽤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흐뭇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친척들과 연락이 두절된 채 혼자 좌충우돌하며 성장기를 보냈던 그는 늘 외톨이 신세였다. 그런 그에게 아들 현은 참으로 대견한 존재였다. 성장하면서 단 한 번도 부모의 속을 썩이지 않았고 스스로 자신의 일을 감당해 내던 아들이었다.

    시제에 아이를 데리고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은 늘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아내가 일부러 빠졌다. 어렸을 때의 희미한 기억을 좇아 수소문 끝에 종중을 찾아냈던 것이나 새로 만든 족보에 가계를 올리고 가끔이지만 시제의 일정을 챙기는 것은 가까운 친척도 없이 외롭게 지내고 있는 아들 현에 대한 배려였다.

    스튜어디스에게 냉수 한 잔을 청해서 마신 인성은 몸을 의자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빙글거렸다. 몇 년 만인가. 이렇게 마신 것이……. 한순간도 긴장을 풀면 안 되었다. 이렇게 문중 일에 몸과 마음을 나누는 것도 일종의 사치였다. 국가 안보. 인성에게 그것은 평생을 집착하며 내용을 채워 나가야 할 화두였다. 직책에 대한 긍지와 사명감 때문에 사관학교 출신이라면 누구나 기대하는 별에 대한 집착도 일찌감치 버린 인성이었다.

    ‘TRAP’

    소위 임관 때부터 특전사에서 침투 요원으로 잔뼈가 굵은 그에게 첫 민간 정부가 맡긴 대북 특수작전에 관한 프로젝트였다. 이것은 원래 군사정부의 ‘작전명령 Ⅲ’에 그 기원을 두었다. 그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여 인성이 각론적이고 포괄적인 전략 전술로 구체화했다. 또한 최근 비약적 발전을 이룬 위성 정보망에다 인적 첩보망을 보완했다. 타격 목표를 제대로 겨냥하고 있으므로 즉시 실행이 가능하고 완벽에 가까운 국가 비상 계획이었다.

    평시에는 정보활동을 통해 북한 내 주요 인물에 대한 동향을 파악하면서 요원들의 실전 훈련에 집중한다. 그러나 남북 간 전면전이 벌어지면 즉시 병력을 투입하여 북한의 지휘 계통을 일시에 무력화시켜 확전을 미리 방지한다. 특히 주 타깃은 호위총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김일성과 김정일이었다.

    이를테면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적은 전쟁을 초기에 제압하되 북의 기습적인 핵과 화생방 공격으로부터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한반도 전역을 겨냥하고 있는 북의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전국 어디든 핵과 세균을 탑재하여 공격할 수 있다. 게다가 화생방 공격의 살상 효과가 투하 지점으로부터 100㎢ 정도이기 때문에 전쟁의 초기 진압은 바로 민족의 생존과 직결된다.

    그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집행하는 수장은 10년 이상 군 경력을 가진 별정직 관리관 직급이었다. 혹여 이 작전이 대외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군부가 직접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으므로 수뇌부나 각 요원의 신분은 모두 형식상 민간인이었다. 장군 승진 후보 3순위였고 군에서 인생을 마감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던 터였지만 지휘부의 지명을 받자마자 인성은 미련 없이 모자를 벗었다. 국가 안보에 이바지한다는 긍지만으로 선택한 직책이었다.

    돌이켜 보면 운영 책임자로서 보낸 지난 5년은 그가 견딘 25년간의 군 생활에 버금갈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보람도 컸다. 북한정보에 통달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 이젠 어느 때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임무 수행이 가능할 정도로 작전은 말할 것도 없고 장비나 정예 인력도 확보한 셈이었다.

    다만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 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력 암투를 지켜보면서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특히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군 지휘부가 대폭 교체되었고 성향이 변하고 있는 데다 대북 군사전략이 여러 면에서 혼선을 빚었다. 그런 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미래가 그리 밝지는 않았다.

    냉수를 들이켠 후 심호흡을 하자 어지럼증은 한결 덜했다. 오십이란 장년의 나이지만 지난번에도 침투 병력과 함께 고락을 함께하며 지옥훈련을 견뎌 냈던 그였다. 훈련 중 핵심인 ‘생존 코스’는 간부급이나 요원들도 혀를 내둘렀다. 분기마다 한 번씩 실시되는 그 훈련은 정예 병력 50여 명이 서너 명씩 조를 이뤄 전체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북한의 호위총국사령부의 허점을 뚫고 몇 군데의 적 지휘부를 무력화하는 과정이다. 그 코스를 한 단어로 정리하면 ‘전광석화’가 아닐까 싶다.

    전 과정이 전시를 전제로 한다. 고공으로 작전 지역에 침투한 후 자연 상태에서 생활하고 일부러 뱀이나 들쥐, 토끼, 청설모 등을 산 채로 잡아먹거나 솔잎, 산나물 등으로 생식하는 훈련이었다. 만약을 위하여 3일간의 비상식량을 휴대하지만 별도의 명령 없이는 뜯지 못한다. 또한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은밀히 이동하는데 만일 단 한 명이라도 민간인에게 노출되어 군부대로 신고가 들어가면 전체 훈련은 즉시 중단된다. 이렇게 극도의 기도비닉(企圖秘匿)을 요하고 극심한 체력 소모전인 실전 훈련에 인성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훈련이 극한의 체력을 요하므로 젊은 요원 중에서도 탈락자가 나오곤 했다.

    이 프로젝트를 맡은 지 어언 5년이 지났지만 아직은 체력적으로 별문제가 없었다. 원체 강건한 체질인 데다 생활을 절제하며 관리해 왔을 뿐 아니라 뒤늦게 시작한 요가의 덕도 없지 않았다. 단전호흡, 의식의 이완과 함께 반복적인 수련을 통하여 신체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 특히 심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인성은 두 팔을 뻗어 길게 기지개를 켜고 나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끝없이 펼쳐진 동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래에 엷은 운무가 약간 깔리긴 했으나 늦가을의 맑고 투명한 창공과 어울려 장관이었다. 사천공항을 이륙한 지 30분쯤 지났으니 이제 곧 수도권으로 진입하겠지. 그는 잠들어 있는 아들 현의 왼손을 살며시 잡았다. 여자 승무원들이 수레를 끌며 승객들에게 나눠 주었던 음료수 컵을 회수하느라 기내 분위기가 약간 어수선했다.

    그때였다.

    통로를 달려 뛰는 듯한 조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타다다당’ 하며 급작스럽게 총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몇 명의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인성은 잡았던 아들의 손을 놓고 안전띠 버튼을 누른 뒤 반사적으로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급작스런 소란이 있은 후 실내가 순간적으로 진공상태로 변하는 순간 또 한 번의 총소리가 울렸다. 총소리가 난 것은 조종실 쪽인 듯했다. 잠에서 깨어난 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인성을 바라보았다.

    아, 하이재킹…….

    국내 항공기의 보안 상태는 항상 경계 대상이었다. 국가 기간 시설을 점검할 때마다 이 점은 단골 지적 사항이었다. 분단된 한반도의 특성상 항공기는 단 몇십 분 사이에 월경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국내 안보의 가장 큰 취약점이었다. 게다가 벌써 30여 년 가까이 전혀 사고가 없었다는 점 때문에 첨단 시스템에만 의존하여 종사자들 역시 별로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단 본부에서도 간부급을 포함한 실행 요원들은 국내선 여객기 탑승을 꺼리는 편이었다. 인성 역시 장거리 이동 시에도 늘 승용차를 이용했다. 하지만 단풍철과 겹쳐 주차장으로 변해 버리는 11월의 고속도로 형편 때문에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항공편을 이용했다.

    주말 오후라는 느슨한 시간대에 기습을 당한 100여 명의 탑승객은 그런 진공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이내 극도의 소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공포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고함을 질러 댔다. 인성은 이런 돌발 상황에서 자신이 비무장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신체 일부와도 같았던 비상용 무기도 항공기에 탑승할 때에는 휴대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통로에서 몸을 숙이고 앉아 있는 스튜어디스 한 명을 불러 신분을 밝혔다.

    “기내에 보안 요원이 있지요? 그 사람에게 안내를 좀 해 주시오.”

    공포에 질려 웅크리고 있던 그녀의 표정이 일순 밝아지는 듯했다. 인성은 함께 일어서려는 아들 현을 만류하여 자리에 앉혀 놓고 그녀를 따라갔다. 제1출입문 앞 기둥에 기댄 채 조종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보안 요원 1명이 보였다. 인성은 신분증을 내밀었다. 국내의 업무 수행을 위해 국방부장관이 발행한 특수 요원 신분증이었다. 대외비여서 비상시에는 제일 먼저 폐기해야 할 증서였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침착하게 탑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승무원들은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훈련이 부족한 것 같았다. 급작스런 상황에 놀라선지 그의 눈동자는 반쯤 풀린 상태였다. 말도 못하고 자꾸 턱짓만 해 댔다. 복도 끝에는 제복을 입은 남자 2명이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고 기장실로 통하는 문 곁에 긴장된 표정으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사내의 얼굴 반쪽이 보였다. 인성은 안주머니에 늘 비상용으로 휴대하고 다니는 쇠침을 꺼내 들었다. 사격은 물론 단검 던지기 명수인 인성은 이 조그만 쇠침으로 야전에서 식량을 확보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요원들을 훈련하는 중이었다. 짐승들의 움직임에 따라 쇠침의 속도를 조절하여 급소를 꿰뚫는 기술이었다. ‘생존 코스’에서도 이 쇠침은 필수 장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용하기에 따라서 보안 요원이 휴대한 가스총보다 이 쇠침이 더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권총을 어떻게 반입했을까. 특수 요원으로 무기가 몸의 일부인 자신도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해 아예 무기를 두고 탑승하는데…….

    “모두 3명입니다. 권총을 휴대한 2명은 기장실로 들어갔고요.”

    너무 당황하여 어정쩡한 자세로 꼼짝 못하고 있던 그가 인성의 출현으로 겨우 몸을 뒤로 빼면서 조그맣게 말했다. 복도에 쓰러진 사람들은 이미 절명한 듯 보였다.

    “보안요원은 모두 몇 명이죠?”

    인성은 조종실 입구에서 객실 안쪽을 감시하고 있는 사내와의 거리를 눈어림하며 물었다.

    “저까지 3명입니다.”

    도움을 받거나 힘을 합할 만한 인력이 없었다. 비무장 상태인 기장실은 지금 권총을 휴대한 납치범 2명이 점령해 버렸다. 북쪽으로 향하고 있던 항공기가 방향을 돌리지 않는 것을 보면 이들의 의도는 분명했다. 창으로 F4 공군 전투기가 접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전투기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지 않았다. 시간상으로 보더라도 이 여객기는 이미 휴전선 가까이 접근했을 것이다.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인성은 기수 쪽으로 왼발을 내딛으며 각도를 잡고 쇠침을 힘껏 날렸다.

    명중이었다. 그것은 기장실 문 앞에 쪼그리고 앉은 사내의 정수리에 꽂혔다. 그가 맥없이 쓰러지는 순간을 틈타서 인성은 재빨리 조종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기장실은 우리가 점령했다. 까불면 이걸 폭파해 버린다.”

    기장실 입구에 걸린 LCD 화면에 눈매가 사나운 사내가 나타났다.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사내는 손에 든 것을 화면에 클로즈업시켰다. 아, C4(TNT와 RDX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만든 C형 복합 물질, 제4형 복합 폭발물질〈Composition-4 Explosives〉)였다.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된 KAL 858기에 김현희가 설치했다던 바로 그 액체폭약이었다. 아무리 조립품이라지만 자그마한 건전지도 탐색해 내는 검색기가 어떻게 저런 것을 놓쳤을까.

    손발 맞는 동료가 한 명만 있었으면…….

    인성은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놈들이 고성능 폭탄으로 무장했다고 해도 입구가 제압된 지금, 보조하는 동료 1명만 있다면 이들의 허를 찌를 수 있을 텐데……. ‘TRAP’의 내용에도 테러 대비 훈련이 포함되어 있어서 수없이 반복연습을 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액체폭약에 충격을 가하면 폭발의 위험이 컸고 게다가 권총으로 무장한 놈들이었다. 단순히 1:2의 대결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제압해 보겠지만 이 경우에는 무리였다.

    궁지에 몰린 것으로 판단한 그들이 자폭을 시도하기라도 한다면 여객기는 100여 명의 승객과 함께 공중분해가 되고 만다. 긴장 속에서 자꾸만 시간이 흘렀다. 이젠 창밖의 우리 공군 전투기가 보이지 않았다. 여객기는 어느새 비무장지대로 진입한 모양이었다. 아, 정말 큰일 났구나. 나서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가 되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승객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인성은 재빨리 자리로 돌아왔다. 현이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단 본부에 상황을 전하려고 했으나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침착해야 한다.”

    인성은 자신에게 다짐하듯 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선 신분증을 모두 폐기해야 한다. 현재 황인성이란 본명은 말소된 상태이고 황윤식이라는 가명으로 행세한다. 황윤식은 호적도 없고 실체도 없는 임무수행용 이름일 뿐이었다. 북쪽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면 위험한 상황을 가져온다. 대외적으로 ‘TRAP’은 존재할 수 없는 기밀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그 프로젝트의 군 개입 사실만이라도 가려져야 한다. 인성은 지갑 속의 모든 증명서를 꺼내 비닐 커버를 벗긴 다음 입속에 넣고 꼭꼭 씹어서 삼켜 버렸다.

    “아버지.”

    현이 가리키는 창으로 인공기 마크를 단 미그 19기가 보였다. 2대였다. 연기처럼 하얀 부유물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인성은 화장실로 달려가서 팔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었다. 스위스의 롤렉스사 제품이었다. 작전용으로 직접 주문한 것인데 소형 카메라와 나침반이 부착된 최첨단 디지털시계였다. 시중에서는 전혀 구할 수 없으므로 자칫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는 위험한 물건이었다. 재빨리 분해하여 변기 속에다 버리고 물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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