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윤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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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제국 (13) 다니엘 대위와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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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않는제국13

     

    “여보, 이번 시제에는 아무래도 당신이 준영이만 데리고 다녀오셔야 할 것 같아요.”

    토요일 아침 출근준비를 서두르는 강동현에게 아내가 갈아입을 속옷을 내주며 말했다. 토요일 휴무제가 실시된 지 오래였지만 강동현의 토요일 출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더구나 요즈음 사무실 상황이 어렵고 복잡해진 탓에 퇴근마저 늦었다. 강동현은 아직 사무실 상황에 대해서는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것도 없고 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걱정거리를 얹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왜, 당신 내일 무슨 일이 있나?”

    “무슨 일은요, 내일 준호학교에서 졸업행사가 있잖아요? 준호가 그린 작품이 금상을 타서 전시도 하구요.”

    “아, 그렇지. 그게 내일이었던가. 내가 깜빡했네.. 그럼 종현이는 어떡하지?”

    “종현이가 어제부터 기침하는 것이 감기증세가 있나 봐요, 아무래도 시제에 가면 하루 종일 찬바람 쐬며 산을 돌아다닐 텐데 안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알았어.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테니까 준영이에게 미리 말해 둬.”

    시제는 매년 늦가을에 한 번씩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는 문중행사였다. 음력으로 10월 두 번째 일요일에 지내기 때문에 보통 11월 초순에서 중순, 윤달이 끼어 있는 경우에는 12월 초가 되기도 했다. 비가 오거나 몹시 추운 날도 있어 선산과 공동묘지 등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상 산소를 찾아 제를 올리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보통 아침 10시경 문중의 제일 웃어른인 공동선도 밑에 제를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시제가 시작되는데 선산에 있는 산도 대 여섯 기만 둘러보아도 오전 시간은 금방 지나가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선산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준비해 온 떡과 과일 등 제수음식을 나눠먹는 것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운 뒤 전국에서 모여든 제관들은 각자의 직계 조상들 산소를 찾아 흩어졌다.

    강동현도 문종 어른들께 인사를 올린 후 준영이와 가까운 친척들과 함께 증조부 산소부터 돌아보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가 쾌청하고 춥지도 않아 시제 지내기에는 그만이었다. 이런 날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사촌이나 육촌형제들, 조카들과 함께 소풍 나온 기분이었다. 사실 시제는 돌아가신 조상 산소를 둘러보는 기회에 멀리 있는 친척들을 다 같이 만난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는지도 몰랐다.

    “아빠, 여기는 선산이 아니고 공동묘지라는데 왜 선산에 모시지 않았어요?”

    준영이가 증조모 묘 앞에서 어째서 이 산소만 공동묘지에 있는지 물었다.

    “니네 증조할매가 정월 초에 돌아가셨는데, 그 때가 디기 추웠니라. 땅이 다 꽝꽝 얼어서 팔수가 없는 기라. 그래서 묘 자리를 찾다가 공동묘지까지 왔는데 여긴 볕이 잘 들어서 땅이 쪼금 녹았는지 괭이가 들어가더란다. 그래서 여기다 안 썼나.”

    그 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준영이의 5촌 아저씨가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근데 아빠, 아까 산소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어떤 산소는 그 앞에 돌로 제사상 같은 것을 만들어 놓아 제사 지내기가 좋던데 왜 우리 산소들은 그런 게 아무것도 없어요?”

    준영이의 계속된 질문에 5촌 아저씨는 빙그레 웃었다.

    “준영이도 이제 다 컸구나, 이제 조상에 대해서도 알건 알아야지. 원래 아까 처음 제를 올렸던 문중의 제일 윗대 어른이 조선시대 때 난을 피해 이곳까지 와서 정착하셨는데 돌아가실 때에 상석을 일체 하지 말라고 했는 기라. 그래서 출신을 나타내는 상석을 몰랐다 아이가. 제일 윗대 어른 산소에 상석을 못했기 때문에 그 알로는 자연히 할 수가 없었던 기라.”

    준영이는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늦가을의 해는 짧았다. 어느새 저 멀리 보이는 산 위로 한 뼘도 안 되는 곳에 해가 걸려 있었다. 강동현은 일행을 재촉하여 대여섯 곳의 산소를 둘러본 뒤 언제나 시제의 마지막 코스인 할아버지와 할매 산소에 도착했다. 이미 사방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기온이 내려가 으슬으슬 한기마저 느껴졌다.

    조부모의 산소는 용궁읍내에서 풍양으로 나가다가 둘이 끝나는 지점의 야트막한 언덕위에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대로 용궁읍민들의 양식을 마련해 준 들판을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조부모 산소에 대한 제를 마친 뒤 강동현은 사촌형제와 조카 등 함께 온 친척들과 산소 앞에 둘러 앉았다. 가지고 온 제사음식을 제를 지낸 뒤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은 오래전부터 내려 온 관습이었다.

    “준영이 니 이 할배에 대해 아빠한테 자세히 들었나?”

    준영이의 숙부가 준영이에게 이곳에 묻힌 할아버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아뇨, 작은 아버지. 그전에 언뜻 듣기는 했는데 자세히는 잘 몰라요.”

    “이 할배는 참 훌륭한 분이대이.”

    “작은 아버지, 자세히 좀 말씀해 주세요.”

    “그럴까. 이 할배가 젊었을 때에 처음에는 만주로 갔다가 나중에는 상해로 가서 김구선생을 만난기라. 그땐 일제 시대였으니까 독립 운동하겠다고 의열단에 들어갔는데 그 때 할배 나이가 몇 살만 더 먹었어도 윤봉길의사처럼 됐을지도 모르지. 해방 전까지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독립 운동한다고 고생한 걸 말로 어떻게 다 했겠노. 또 그때야 이 할배만 그랬겠나, 누구나 다 마찬가지였지. 해방 후에 고장에 돌아와서 목재사업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하셨는데 그기 나중에 보니까 다 목적이 있었던 기라.”

    “목적이요? 그게 뭔데요?”

    준영이 뿐만 아니라 또래의 조카들도 닭다리를 하나씩 집어든 채 모두 숙부의 설명에 호기심어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할배의 목적은 빨리 돈을 모아 학교를 세우는 거였대이. 그것도 농업학교나 기술학교가 아니고 국제상업고등학교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던 기라.”

    “국제상업고등학교요? 농촌에 왜 굳이 국제상업고등학교를?”

    “할배가 오랫동안 독립 운동한다고 중국을 떠도는 동안 크게 깨우친 것이 앞으로는 외국과 장사를 잘해야만 나라가 부강하고 국민들도 잘 살 수 있다는 기라. 그러려면 물론 기술도 가르치고 공장도 많이 만들어야겠지. 하지만 여기는 산골짜기라 공장을 세울만한 여건도 안 되고 농사지을 땅도 별로 없으니까 공업학교나 농업학교는 안 된다고 생각하신거지. 그래서 이곳 학생들한테 영어도 가르치고 외국과 장사하는 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쳐서 넓은 세상으로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한기라.”

    “그래서 학교를 세우셨어요?”

    “암, 세웠지. 바로 여기가 그 국제상업고등학교 터 아니가.”

    숙부는 위엄있게 생긴 수십 마리의 한우들과 백여마리의 젖소들이 한데 어울려 놀고 있는 산소 바로 아래의 넓은 목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 곳엔 이미 학교라고는 흔적조차 없었다.

    “이미 학교가 오래전에 문 닫아서 지금은 목장으로 쓰고 있지만 저쪽 왼쪽이 학교 건물이 있던 데라.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할배 글자학교 세우는 기 억수로 어려웠대이. 근데 참 그때 할배가 우연히 만난 미군정보장교 때문에 덕을 많이 봤다 카더라.”

    “미군 장교요? 어떻게요?”

    “할배가 6.25전쟁이 끝난 후 학교를 세울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알아보고 있는데 어느 날 개포쪽으로 가다가 논두렁에 처박혀 꼼짝 못하고 있는 미군 짚차를 발견한기라. 다행히 사람은 크게 안 다쳤는데 짚차가 길 아래 처박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어서 할배가 사람들을 부르고 소를 동원해 가 짚차를 안끌어냈나. 그 때 짚차에 타고 있었던 사람이 미군정보장교인 다니엘 대위하고 부관이었던기라. 다니엘대위는 부관하고 장차 공군기지를 건설할 후보지를 물색하기 위해 예천 일대를 돌아보다가 용궁까지 왔던 기라. 원래 예천은 태백산맥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려온 소백산맥 아래 부분이라 레이다에 잘 안 잡힌다 카더라. 그래서 공군기지로는 최고인기라.
    당시는 물론 도로도 포장 안 된데다가 길이 좁고 험해서 짚차가 미끄러져 논두렁에 처박힌 거지. 공군기지를 건설할 후보지를 물색하기 위해 돌아다니던 미군장교와 인재를 육성할 학교 부지를 물색하기 위해 돌아다니던 독립투사의 만남.. 어떠냐? 상당히 그럴싸하지? 암튼 할배는 그 다니엘대위를 집으로 데리고 잘 대접해 보냈고 그 후로도 몇 번 서신 왕래도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할배가 나중에 학교를 세울 때 도움을 받았는기라. 아마도 그 미군장교가 그땐 끝발이 섰던기지.”

    “그런데, 작은 아버지. 지금은 왜 학교가 없어졌어요?”

    준영이는 그렇게 어렵게 세운 학교가 문을 닫은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글쎄다, 할배가 너무 많이 앞서 간 때문이라고 해야겠지. 그 때 학교를 세우고 한 학년에 세 반씩 180명 정도 모아서 영어하고 무역업무, 부기 등을 가르쳤는데 당시 월사금(등록금)은 돈이 없으니까 쌀이나 잡곡으로 받았는기라. 그런데 도무지 학생들이 월사금을 내지를 못하는 기라, 할배가 전 재산을 털어서 학교를 세우고 좋은 선생들을 모집해서 월급주고 몇 년은 그런대로 버텼는데 학생들 태반이 월사금을 못내니 무슨 수로 학교를 계속할 수가 있겠노? 나중에는 선생들이 할배 집에 몰래 와서 밀린 월급 달라고 날마다 데모를 하지 않나, 그렇다고 정부에서 보조를 해주기를 하나, 지방 유지들도 나서서 도울 형편이 안 되고. 결국 그렇게 몇 년을 버티다가 1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할배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기라. 할배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좋아했데이. 아마 지금 너희들을 보면 좋아서 죽을게다.”

    강동현은 한참동안 설명을 마친 사촌동생의 눈이 촉촉이 젖어드는 것을 못 본채하며 그 옛날 학교의 운동장 터에서 놀고 있는 무심한 소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사방은 어둠이 깔려 길을 분간키 어려웠다.

    “자. 이제 다 먹었나? 춥다, 내려가자.”

    아이들은 그제야 춥다고 손바닥을 비벼 대며 부산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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