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장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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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무엇으로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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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전, 서울 신림동 어느 골목에서 밤늦은 시각에 폭력배들간에 싸움이 붙어 한 쪽 조직원들 여러명이 다른쪽 조직원 한명을 야구방망이 등으로 심하게 때려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며칠 후 어릴적 친구 한명이 사무실을 찾아와서는 후배 두명이 신림동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어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되었다며 변호를 부탁했다. 후배라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주장인 즉. 자신들은 폭행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그 동네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며 폭력조직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단지 사건 발생 시간에 그 근처에 있었던 것 뿐이라 설명이었다. 나는 의심을 갖고 이리저리 돌려 묻기도 하고, 그들 선배와의 관계도 언급하며 솔직하게 말할 것을 부탁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리고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자신들의 말을 믿어달라,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원래부터 귀가 얇아 사람을 잘 의심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변호사의 기본은 의뢰인의 말을 신뢰하는 것 아닌가.남의 말을 듣고 참과 거짓을 가려내어 판단을 해야 하는 판사나 검사보다는 한쪽의 편을 들어야 하는 변호사가 나는 천직이라고 생각해 왔다. 다만 변호사라도 무조건 의뢰인의 말만 믿고 변호에 나섰다가는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낭패를 넘어 망신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변호사도 나름의 검증과정을 거쳐 의뢰인의 말을 믿을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한다. 하지만 일단 의뢰인을 믿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선 후에는 그들의 억울함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나는 그 두명의 피의자들의 말을 믿을 수 있을만하다고 판단했다. 피의자들에 대해 수사기관이 혐의를 둔 데에는 객관적인 근거가 크게 부족했기 때문에 그러한 허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다행히 재판부도 내 지적을 인정했다. 피의자들은 영장실질심사에서 풀려났다.

    호기롭게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은 피의자들이 석방된 후 수사의지가 꺾여 수사를 포기하다시피 했고 불구속 기소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변호사로서는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냈고 억울한 피의자를 구해냈다는 안도감과 성취감도 느꼈다.

    그 후 경찰이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CCTV 화면을 하나 보여주었다. 사건발생 당시 문제의 장소 주변을 찍은 화면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피의자들이 말했던 상황과 CCTV에 찍힌 상황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흐릿한 화면만으로는 피의자들이 그 속에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피의자들에 대한 증거로 사용되기는 어려운 증거이기는 했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그들로부터 들었던 사건 당시의 상황과 실제가 크게 다르다는 것, 피의자들이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변호인 기망죄가 있다면 그 죄의 증거로는 완벽한 증거였다. 망치로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싶은 피의자들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진심으로 도우려고 했고, 진실하게 대했는데 그런 내게, 그것도 너무나 태연한 얼굴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그저 놀랍고 허탈했다. 그런 피의자들을 내게 소개해 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실컷 욕을 해주고는 연락을 끊는 것으로 분풀이를 하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짧게 경험한 수사기관 재직 시절에도 하나의 사실에 대해 정반대의 주장을, 마주보고 앉은 자리에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너무도 일관되게 펼치는 장면을 본 것이 한두번은 아니다. 둘 중의 한 사람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내 수준의 내공으로는 도저히 누구말이 옳은지 판단할 수가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사람은 말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자료로만 믿게 되는 편리한 타협을 하는데 익숙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수천년동안 비슷한 고민을 해 온 재판관들도 진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포기하고 증거의 손을 들어주기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위안을 삼고자 하지만 속이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다.

     

    ◊ 이 글은 2013년 3월 19일자 한국일보<아침을 열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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