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장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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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는 것이 법이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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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학교에서 국어시험을 보았다며 시험지를 가져왔다. 85점을 맞았길래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무슨 문제가 나왔는지 살펴보았다. 지문을 내 준 후 ‘A의 의견은 다음 중 무엇인가’를 묻고, 그 다음은 ‘A의 의견에 대한 까닭은 무엇인가’를 묻는 식의 문제였다. 내 아이는 ‘의견에 대한 까닭’을 묻는 문제 두 개 중 하나를 틀렸다. ‘의견에 대한 까닭’이라는 표현은 나에게도 생소해 서너번을 읽어보았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문제를 보고 모르겠으면 답을 보고 문제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오랜 수험생활에서 얻은 기술이다. 그래서 답을 보니 A가 그러한 의견을 가지게 된 이유를 묻는 문제였다. 변호사인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희한한 표현을 교사나 아이들은 다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해하게 만들어져 버린 것일까.

    ‘~에 대한’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여럿 있지만 이 시험문제에서는 대상이나 상대로 삼다는 의미에 해당한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 ‘건강에 대하여 묻다’와 같은 쓰임새가 그 예다. 관심의 상대가 전통문화가 되고 묻는 대상이 건강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런 분석대로라면 위 시험문제에서는 ‘까닭’의 대상이 ‘의견’이 되어야 하는데, 의견과 그 의견이 형성된 까닭은 서로 대상관계에 있는 것일까. 대상관계가 아니라 인과관계 내지 내포관계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다면 의견과 까닭에 대상관계에 사용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닐까. ‘A가 의견을 갖게된 까닭은 무엇인가?’가 훨씬 정확한 표현 아닐까.

    너무 궁금하여 선생님께 의미를 물어볼까 싶다가도 괜히 물었다가 ‘그냥 외우면 된다’라는 핀잔을 들을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자꾸 보다보니 그 뜻이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해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저런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우리 아이 학교에서만 쓰이는지 아니면 전국의 초등학교에서도 쓰이는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정확하지 않은 표현 때문에 문제를 못 푸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 하는 걱정은 여전히 잔상으로 남아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도무지 잘 이해되지 않는 표현은 법조계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동양에서 가장 큰 규모라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다. 서울에는 5개의 지방법원이 있는데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지방법원과 중앙지방법원이다. 동서남북이 아니라 가운데 있다는 의미에서 중앙지방법원이라고 지었을 것이다. ‘중앙’에는 한 가운데라는 뜻이 있으므로 어법만으로는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기관을 부를 때 ‘중앙’이라는 말은 지방자치단체와 대립되는 의미에서 전국을 관할하는 기관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 통례이다. 여기서의 ‘중앙’은 ‘최고의’, ‘가장 중요한’ 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런 통례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급의 각종 부처에서 ‘중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앙청사는 정부청사를 가리키고 중앙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말하는 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전국을 관할하는 법원은 대법원이 유일하므로 이와 같은 통례에 따르면 중앙법원이라고 하면 대법원을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와 같이 국가기관 앞에 붙여지는 ‘중앙’이 ‘한 가운데’의 의미가 아니라 ‘최고의’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으므로 중앙지방법원이라고 하면 지방법원 중 으뜸인 법원의 의미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가장 크고 많은 사건이 처리되는 곳이고, 법원장 서열로도 으뜸이기는 하나 법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여러 지방법원과 동일한 지위에 불과하므로 최고법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서울의 다른 지방법원과 구별할 필요에서라면 동부, 서부 등과 같이 맞추어 서울;중부’지방법원이라고 이름을 짓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쓰는 것이 법’이라지만 이 말은 어디까지나 원래 정해진 규칙이나 원칙이 없을 때 예외적으로 쓸 수 있는 보충 기준에 불과하다. 아무데나 쓰는 것이 법이라는 기준을 적용한다면 기존의 원칙과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된다. 21세기의 초등학교와 법원에서 ‘자꾸 보면 익숙해진다’, ‘모르면 외워라’식의 19세기 방식은 더 이상 곤란하지 않겠는가.

     

    ◊ 이 글은 2013년 4월 30일자 한국일보<아침을 열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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