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윤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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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제국 (12) 클레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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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않는제국12

    그로부터 20여일 후인 금요일 저녁, 아니 저녁이라기보다 밤이라고 해야 좋을 오후 9시경 최동수는 사무실에서 강동현과 마주 앉아 있었다. 강동현도 이제는 40대 중반에 접어들어 제법 관록과 중후함이 보였다.

    최동수는 강동현이 로펌의 재정과 인사관리를 맡으면서 사무실이 좀 더 안정된 가운데 규모를 확장할 수 있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최동수는 그런 강동현이 믿음직스러웠다. 이제 로펌의 중요한 일은 최강마피아라고 불리는 4인방 보다 강동현과 먼저 상의할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두 사람은 심각한 얼굴로 저녁으로 주문한 참치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직원들은 이미 거의 다 퇴근하여 사무실 안은 어두웠고 아직 퇴근하지 않은 몇 몇 변호사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누가 더 오래 말하지 않고 견디나 하는 시합을 하는 사람처럼 조용히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먼저 다 마신 강동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요즈음 사무실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 거 같습니다.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동현의 밑도 끝도 없는 뚱딴지같은 말을 듣고 최동수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도 사실 요즈음 뭔가 이상한 점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체가 뭔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강 변호사, 강 변호사는 그 이상한 것의 실체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최동수도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지 않고 말을 아꼈다.

    “우선 몇 가지 드러난 점을 파악해 보면 최근 눈에 띄게 사무실의 빌(청구서)에 대하여 클레임을 제기하는 클라이언트(고객)가 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클레임을 제기하는 클라이언트가 대부분 외국계 금융회사이거나 합작업체라는 점입니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빌에 대해 클레임을 제기한다는 것은 우리 로펌의 서비스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는데 최근 들어 갑자기 클레임이 늘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정상적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클레임을 제기한 업체와 그 액수가 모두 얼마나 됩니까?”

    요즈음 들어 부쩍 늘어난 흰머리 탓인지 최동수의 표정은 평소보더 더 어두워보였다. 최근 수수료에 대한 클레임 제기가 늘어나면서 사무실 재정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최근 3개월 동안 클레임을 제기한 클라이언트는 11개 업체입니다. 이것은 보통 한 달에 1개 업체였던 지금까지의 전례에 비추어 보면 아주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액수도 주로 큰 것인데 클라이언트 당 평균 5만 불 정도입니다. 그 여파로 사무실의 재정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이번 달도 정말 조마조마 했습니다.”

    이번 달 변호사들 보수와 직원들 월급을 지급할 자금을 확보하는데 강 변호사와 재무파트 직원들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최동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강 변호사가 수고가 많았습니다. 사무실을 책임지고 있는 한사람으로서 변호사들이나 직원들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최동수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자신이 담당해야할 몫을 강동현이 대신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대표님,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클레임을 제기한 클라이언트들이 클레임 제기에 그치지 않고 고문계약을 해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그것이 현실화 된다면 사무실에 큰 타격이 올 것 같습니다.”

    강동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최동수는 무거운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강 변호사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오?”

    최동수도 낮게 물었다. 최동수의 물음에 강동현은 즉답대신 일어나 커피를 한잔 더 따라와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강동현은 이제 정말 최동수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를 꺼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대표님, 지금과 같은 클라이언트들의 클레임 제기와 고문계약 해지 움직임은 분명 비정상적입니다. 이건 어떤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배후 세력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순간 최동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동안 뭔가가 불안하고 이상한 흐름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실체를 알 수 없었는데 강동현의 말을 듣고서야 뭔가 감이 잡힐 듯도 같았다.

    “뭐요? 보이지 않는 배후 세력? 그렇다면 그게 뭐란 말입니까?”

    “지금까지 제가 은밀하게 여러 경로를 통해 파악해 보려고 했지만 아직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로펌이 M&A의 타깃이 된 것 같다는 것입니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로펌들이 국내 로펌과의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워 국내는 물론 중국 시장까지 장악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돌고 있고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굳이 우리 로펌의 클라이언트를 동원하여 재정을 악화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그건 아마도 큰 저항 없이 쉽게 합병하기 위해 명분을 쌓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상대는 큰 거래처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로펌일 텐데 국내에 들어와 있는 로펌 중에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로펌이 있습니까?”

    강동현은 최동수 앞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오늘밤은 그동안 강동현이 품어왔던 의혹을 최동수에게 모두 말하고 뭔가 대책을 세울 생각이었다.

    “대표님, 이건 어디까지나 제가 지금까지 추적해 본 결과를 종합하여 내린 시나리오입니다만 물론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 단순히 외국 로펌이 우리와 합병하기 위해 우리 로펌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겠지요. 제가 나름대로 판단하기에는 로펌의 재정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번 장미은행 사건을 맡고 나서부터입니다. 우리가 국민연대와 손잡고 장미은행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면서 장미은행의 주가가 폭락했잖습니까? 그런데 장미은행도 외국의 사모펀드에 M&A 될 거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 로펌의 클라이언트들의 클레임 제기와 장미은행 사건이 어떤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만약 제 가설이 맞는다면 보이지 않는 큰 힘이란 바로 장미은행을 노리는 세계적인 사모펀드일 가능성이 크고 그 정도의 큰 힘이라면 우리 클라이언트들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최동수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져 갔다. 강동현의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강 변호사의 말은 그 장미은행을 노리는 사모펀드가 우리 로펌까지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는 겁니까? 그럼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로펌 중에 세계적인 사모펀드와 밀접하게 관련된 로펌이 우리 최강을 겨냥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예, 그렇게 추리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로펌 중에 세계적인 사모펀드나 금융기관과 관련된 로펌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건 표면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세계적인 로펌과 금융자본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그런 관계를 속 시원하게 파헤칠 수는 없겠지만요.”

    “그래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도 보니까 세계적인 로펌들의 수익 중 상당부분은 금융분야에서 올리더군요. 그러니 당연히 로펌과 금융기관, 아니 정확하게는 국제적인 투기자본과의 관계는 남다르다고 봐야지요.”

    “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최동수의 눈이 더 커졌다. 그는 버릇대로 안경을 다시 고쳐 썼다.

    “아니 뭐가 또 있단 말입니까?”

    “만약 그 세계적인 사모펀드가 장미은행과 우리 로펌을 동시에 노린 것이 사실이라면 그 장미은행 사건을 대표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요? 그건 세계적인 회계법인의 투자분석보고서를 근거로 한 것이기 때문에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 아닙니까? 더구나 지난번 박 팀장의 말에 의하면 그 투자분석보고서의 진정성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고 하던데요.”

    “예, 저도 그 얘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적어도 그 정도의 힘을 가진 펀드라면 회계 법인에게 그런 투자분석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그 투자분석 보고서 내용도 에매한 점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니면 아예 그 회계법인 조차 그 펀드와 관련된 게 아닐까요? 사실 우리는 세계 금융시장에서의 치열한 생존경쟁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 기준만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회계 법인에서 어떻게 그런 투자분석보고서를 낼 수 있겠느냐고 생각 할 수도있지만, 먹느냐 먹히느냐하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그런 상식적인 얘기가 과연 통할까요?”

    최동수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상황은 최동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 로펌이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말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

    “아직은 확실치 않아 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도 조만간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로펌이나 아니면 곧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 로펌에서 우리 로펌을 향해 어떤 액션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액션이라면? 합병제의 같은 거 말이요?”

    “네, 그렇습니다. 그 쪽에서도 우리 로펌과 합병하려면 우리 로펌이 재정악화로 공중 분해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테니까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우리 로펌이 어떤 로펌인데 외국로펌과 합병한단 말이요? 절대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우린 우리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요.”

    최동수는 주먹을 쥐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소리치며 흥분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무실 재정이 계속 악화된다면 다른 변호사들이 많이 동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문제겠지요. 그래서 말입니다만, 혹시 대표님께서 비공식적으로라도 합병에 관한 얘기를 듣거나 소문을 들은 것은 없으신지요?”

    강동현은 최대한 조심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기 전에 좀 더 정확한 상황파악이 필요했던 것이다. 강동현 역시 최동수와는 모든 문제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오, 그런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최동수는 정말 말도 안 된다는 듯 즉각 부정했지만 순간 얼마 전 박두현의 방에 갔다가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가만, 강 변호사. 지금 소문이라고 했지요? 강 변호사도 다비드 앤 솔로몬이라고 알지요? 그 로펌에서 우리 최강과 합병을 추진할 뜻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일이 있어요.”

    “그래요? 대표님은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으셨습니까?”

    “몇 주 전 장미은행 사건을 맡고 있는 박 변호사 방에 가서 차 한 잔 마시며 이것저것 얘기 하다가 박 변호사가 어느 기자한테 들었다면서 그런 소문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 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흘려보냈는데.”

    최동수의 말에 강동현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역시 다비드 앤 솔로몬이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최동수는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묻었다. 강동현도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무실 재정이 이대로 계속 악화된다면 오래 버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한정 은행대출을 받으면서 연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 뾰족한 대책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자금 악화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기업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거나 외국의 거대자본에 헐값에 넘어가는 것을 무수히 지켜봐 왔다. 아니 단순히 지켜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로펌은 그 와중에 그런 M&A를 부추기고 법적으로 정리해 주면서 거기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아 먹어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자신이 평생 키워 온 로펌이 거대자본 앞에 무너질지도 모를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것도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말이다. 최동수는 이런 것이 바로 총성 없는 전쟁이고, 경제전쟁, 아니 시쳇말로 쩐의 전쟁인가 하는 생각에 허탈감과 두려움에 온 몸이 떨려옴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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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냥9호: 드디어 음모들이 하나씩 펼쳐지는 것 같아요. 계속 읽고싶어지는 회였습니다.

  • 응디52호; 처음에 어려운단어가 많아서 어려울줄알았는데 문장은 읽기 쉽게 되어있어 읽는데 점점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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