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윤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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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제국 (11) 클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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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않는제국11

    토요일 늦은 오후 강동현은 사무실에 틀어박혀 뭔가를 열심히 뒤적이기도 하고 혼자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로펌도 토요일 휴무를 실시한지 오래되어 직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출근하지 않는다. 변호사나 회계사, 또는 변리사 등 이른바 전문직이라는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기 일이 있으면 토요일이건 일요일이건 사무실에 나왔다. 하지만 토요일 저녁때가 되면 거의 다 사무실을 빠져나가 사무실은 적막에 휩싸이게 된다.

    강동현이 토요일 오후에도 퇴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최근에 클라이언트들이 제기한 클레임 때문이었다. 최강로펌이 고문을 맡고 있는 업체는 각 분야에 걸쳐 다양하고 그 중 굵직한 클라이언트만 꼽아 봐도 100여 곳이 넘었다. 최강로펌은 수시로 클라이언트들로부터 의뢰받은 크고 작은 법률문제에 대해 자문해 주고 필요한 경우에는 법적의견서(Legal opinion)을 작성해 주거나 계약과 각종 인‧허가에 필요한 관계서류를 준비해 주기도 했다.

    이 경우 로펌은 매달 받는 일정액의 고문료 외에 관계서류나 의견서를 작성한 것에 대한 수수료(Legal fee)를 한 달에 한 번씩 청구하는 것이 관례였다. 최강로펌의 경우 다른 로펌에 비해 평균 수수료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라 로펌이 청구하는 청구서(Bill)에 대해 클라이언트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기껏해야 한 달에 한두 건 정도, 그것도 본격적인 클레임이라기보다 회사 사정상 지급시기를 조금 늦춰달라거나 수수료를 조금만 감액해 달라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달에는 빌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본격적인 클레임이 3건이나 들어왔고 이번 달에는 5건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그것도 전부 굵직한 주요고객들이라 금액도 큰 편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클라이언트들이 클레임을 제기한다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니었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고객들로부터의 클레임 제기는 로펌의 서비스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로펌의 명예나 신뢰에 치명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당장 로펌의 재정 상태에 압박을 주는 것이었다.

    강동현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도 선뜻 맡으려고 하지 않는 로펌의 재정, 행정업무를 강동현이 맡은 다음부터는 로펌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전문분야별 경쟁력 강화에 온 힘을 기울일 수 있었다. 강동현도 나름대로 로펌의 경영 쪽에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잘해야 본전인 재정과 행정업무를 싫어하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잘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 만큼 강동현에 대한 최동수나 다른 파트너 변호사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최근 들어 굵직한 클라이언트들로 부터의 클레임제기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이건 분명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강동현은 클라이언트들로부터의 클레임제기 증가에 대해 최동수에게는 보고를 하였지만 다른 파트너들이나 구성원 변호사들에게는 아직 알리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변호사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로펌내의 상황이 이러니 사무실의 재정 문제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상의하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은 다른 변호사들이 클레임제기 사실을 잘 모르고 있어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만약 이 사실을 다 알게 되면 상당한 변호사들과 직원들이 동요할 것이 뻔했다.

    강동현은 클레임 제기의 원인을 분석해 보려고 아까부터 클레임 제기한 업체들과 클레임제기 이유 등을 비교 분석하면서 그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나하고 여러 각도로 검토해 보았으나 딱히 잡히는 것이 없었다. 로펌이 제공한 의견서나 관련서류 등에도 아무런 특이사항이 없었다.

    클레임 제기한 8개 회사 중 외국계 증권회사가 둘, 외국과 합작한 제조업체가 셋, 외식산업을 하는 외국계 패밀리 레스토랑이 둘, 의료기기 수출업체가 하나, 그리고 또 나머지 하나는 일본계 은행이었다. 도무지 클레임을 제기한 업체들 사이에 공통점이나 관련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굳이 클레임 제기 업체사이의 관련성을 억지로라도 찾는다면 외국과의 거래가 활발한 기업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요즈음 기업치고 대외거래가 없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봐야하니 이것도 특별한 관련성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적어도 최강로펌과 고문계약을 체결하고 일을 맡길 정도라면 그 정도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 업체들이 거의 동시에 클레임을 제기한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았다.

    더구나 이 거래처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최강로펌의 서비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는 클라이언트들이었기 때문에 강동현은 결코 이 일이 우연의 일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아니면 어떤 숨은 힘이 최강로펌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클레임 제기를 사주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도대체 누구인지, 무엇 때문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강동현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 것은 얼마 전 박두현 변호사의 금융팀이 국민연대와 손잡고 장미은행을 상대로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하여 장미은행의 주가가 폭락한 일인데, 그렇다면 장미은행 측에서 손을 써서 최강로펌을 상대로 보복조치를 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고 장미은행 주가의 폭락으로 소액주주뿐만 아니라 장미은행에 투자하고 있는 큰손이나 외국인들이 큰 손해를 봤으므로 최강로펌을 압박하기 위해 장미은행과 거래관계가 있는 업체들을 동원하여 최강로펌에 클레임을 제기한 것일 수도 있었다. 강동현은 이러한 가정 하에 여러 채널을 통해 장미은행이 그 배후에 있는지 은밀히 알아보았으나 아무런 단서도 잡을 수가 없었다.

    만약 장미은행이 아니라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최강로펌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것일까?

    만약 클레임 제기의 배후가 장미은행이라면 사실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장미은행과의 소송만 종료된다면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배후가 장미은행이 아니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그 끝을 가늠할 수가 없게 된다.

    그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최강로펌이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앞으로 클레임제기가 더 심각한 상황으로 더 많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었다. 사실 강동현의 불안은 거기에 있었다. 클레임 제기가 지금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번진다면 최강로펌의 재정 상태는 급격히 악화될 것이고 이런 상황이 1년 이상 계속된다면 버티기가 어려울 것이다. 강동현은 그런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해보고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그런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런데 고개를 저으면 저을수록 자꾸만 떠오르는 불길함 때문에 강동현은 영 마음이 편치 못했다. 왠지 클레임 제기의 배후가 장미은행일 가능성은 희박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강동현이 조사한 바로는 장미은행은 현재의 상황을 수습하기에도 급급해 보였고 거래업체들을 동원해 최강로펌을 압박할 정도의 술수를 쓸 만큼 여유가 있거나 그럴만한 조직이나 인물들이 없었다.

    게다가 클레임을 제기한 클라이언트 중 반은 장미은행과는 전혀 거래관계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강동현을 더욱 불안케 했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었다. 상대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또 어떤 전술을 구사할지 도무지 아무것도 감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강동현은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머리나 식힐 겸 인터넷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강동현은 장미은행에 관한 기사를 일별한 뒤 한국에 사무소를 개설한 외국로펌에 대한 기사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별 생각 없이 기사를 보던 강동현은 작년에 한국 사무소를 개설한 다비드 앤 솔로몬에 관한 최근 기사에서 마우스를 움직이던 손길을 멈추었다.

    다비드 앤 솔로몬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로펌치고는 한국 사무소 개설이 비교적 늦은 편이었다. 그런 만큼 그 로펌은 최근 공격적으로 국내 변호사를 영입했고 현재 외국 변호사를 포함하여 30여 명의 변호사들이 금융과 M&A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 기사 끝부분에 다비드 앤 솔로몬의 한국 사무소 대표인 알렉스의 짤막한 코멘트가 있었다. ‘올해는 한국의 중견 로펌과의 합병을 통해 일류 로펌으로 도약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외국로펌이 한국 사무소를 개설할 때마다 늘 나오는 얘기지만 강동현은 알렉스의 코멘트에 신경이 쓰였다. 강동현은 자신이 너무 예민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최강로펌은 이제 더 이상 외국로펌들이 쉽게 넘볼 수 있는 작은 로펌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강에만도 10여명의 외국 변호사가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굳이 외국 로펌하고 합병할 까닭이 없었다. 만약 합병할 생각이 있다면 최강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인다면 모를까, 수동적으로 외국로펌의 합병대상이 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강동현은 이러한 사실을 언제쯤 최동수에게 보고하고 같이 대책을 상의해야 하는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상황이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동수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조만간 최동수를 만나 상의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재무파트의 손 부장에게 좀 더 확실하게 보안 유지에 대해서도 지시해 놓아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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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냥9호: 최강로펌을 둘러싼 사건들이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앞으로 위험에 빠지게 될 것 같아 걱정도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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