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은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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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과’ 삶’에 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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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파,도심,시내,강남

    현재 언론 지상을 뒤덮고 있는 전직 대통령, 정치인, 국세청 등 고위 공직자 및 공기업 임원, 종교지도자, 언론매체 등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가 집단에 의해 법과 제도를 악용하여 조직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부정부패와 부도덕성은 그들이 과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업무)’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들에게 있어서 ‘일’과 ‘삶’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자신의 일에 대한 깊은 내면의 성찰은 과연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까지 하다.

    현대사회에서의 너나 없는 돈에 대한 집착은 우리들에게 일에 대한 기본과 원칙, 윤리와 양심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 시대와 동떨어진 진부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다.

    과연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에서 ‘일’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현대인의 삶에서 일 혹은 직업은 삶의 수단을 제공해주는 동시에 삶의 의미를 제공해주는 약속으로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존감의 근원이며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일은 우리의 사회적 지위, 인간관계의 범위, 상호작용 까지도 결정하고, 우리 정체성의 주된 원천이자 개인의 자존심과 행복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하며, 규율∙소속감∙규칙성∙자기 효능감 같은 다양한 심리적∙사회적 욕구를 만족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들은 지금껏 우리가 하는‘일’에 대해, 그리고 ‘일과 삶의 관계에 대해’, ‘일이 우리의 삶에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얼마나 성찰해 볼 기회를 가졌는가!

    ‘일’(work)이라는 단어는 인간 활동에 매우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용어로서 고대영어의 명사 워르크(woerc)와 동사 위르칸(wyrcan)에서 파생되었고, 그 의미는 “(한 개인의)일반적 행동, 실행 하는 것, 행위”라고 정의 되었다.

    따라서 ‘일’이라는 단어는 동사이자 명사이며, 활동이자 활동의 산물이기도 하다.

    ‘일’은 노동의 산물 및 다양한 행위나 그러한 행위의 대상을 나타내는 단어 이지만, ‘노동’은 일하는 사람들을 나타내며 육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또한 ‘업무’는 보수나 소득을 얻는 일에만 구체적으로 관련되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을 하는 경제적 존재의 활동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일은 강제적인 것이자 ‘저주’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이란 가능하면 노예에게 떠맡겨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이득을 얻기 위해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저주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재산(땅과 노예들)을 소유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야 말로 그가 생각하는 ‘인간적인 삶’의 기본이었다.

    또한 고대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물질세계에서의 일은 영속성을 결여하고 있으므로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마음 혹은 영혼 속에 존재 한다고 믿고 있어 개인의 생각과 견해가 그의 일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다.

    초기 기독교인들도 고대그리스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보다는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그 이유는 심리적이기 보다는 금욕적인 이유에서였다.

    신약성경에도 사도바울은 질서와 정당한 보상, 수양을 위한 일의 중요성을 인정하였다.

    12-13세기에 이르러서는 ‘일’은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시켜줄 뿐 아니라 그들의 잠재적인 미덕 및 악덕과 동일시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일’에 ‘매력’을 부여했고, 신교도들은 일의 의미와 정체성, 구원의 징표를 찾는 과정을 만들었다.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일, 즉 소명으로서의 일의 개념은 일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특징을 강조함으로써 일은 삶의 수단을 넘어 삶의 목적, 저주에서 소명으로 변화하였고, 일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

    18c 밴자민 프랭클린은 “부가 사회에 이득이 되고 개인에게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정당화 된다.”고 주장하였고, 그는 ‘일’은 종교적 목적이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일을 강조 하였다.

    막스 베버는 프랭클린이 노동윤리로부터 ‘윤리학’을 이끌어 냈다고 생각하였고, 도덕적 토대 없이 부를 추구하는 것은 천박하고 공허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그 후 산업화의 과정을 통하여 일은 시간에 따라 구조화됨으로써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을 집이나 작은 작업장 밖으로 끄집어냄으로써 가정생활과 직장생활 사이의 경계를 그었다.

    최근 컴퓨터, 이메일, 팩스, 휴대전화 등의 신기술의 발명은 우리를 일터의 벽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우리에게 융통성과 기동성을 부여하였으나, 일하는 시간의 범위를 넓히거나 그 시간의 양을 증가시키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신기술이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잠재적으로 우리를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내내 고용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기술이 우리가 일하는 방식과 우리가 하는 일의 종류를 변화시켰지만 ‘일’이라는 개념과 본질 자체를 급격히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일이 주는 가장 근본적인 만족은 생계를 꾸리는데서 오는 만족감,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모을 수 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일 자체이지 그것을 가져오는 부는 아닐 것이다.

    또한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은 일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정체성과 자기 가치 그리고 자기 주변의 세상을 형성하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일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되며, ‘일’을 ‘우리 삶에서 의미를 갖는 일’로 생각하고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 ‘의미 있는 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은 역사 속에서 변화해 온 일의 개념과 본질을 살펴봄으로써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즉 우리들의 삶이 대부분 일과 소비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 현실속에서, 일을 통한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생활 속에서 선택의 방법’을 터득 할 수 있는 지혜를 탐구 할 필요성이 있음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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