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윤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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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제국 (10)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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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않는제국10

    최동수는 오늘 조간신문 경제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기사 때문에 마음이 쓰이고 있었다.

    “재정부, 장미은행 해외 매각 검토”

    “장미은행, 결국 외국기업으로 넘어가나”

    “재정부, 장미은행 처리방침 굳힌 듯”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했지만 재정부는 최근 부실투자 문제로 주가가 폭락하고 해외신인도가 떨어진 장미은행의 해외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아마도 장미은행의 사태를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상황이 더 나빠져 최악의 경우에는 IMF때 겪었던 것처럼 파산으로까지 갈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몰랐다.

    하긴 그 때 얼마나 많은 금융기관들이 부실로 문을 닫고 직원들은 길거리로 내몰렸던가. 도대체 은행 같은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생각이나 했겠는가.

    IMF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은행이 망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도 부도가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국가의 부도! 사람들은 그것이 관념적으로는 와 닿지 않았지만 직장과 가정에서, 그리고 시장에서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금융기관의 실질금리가 연 30%를 육박할 정도로 살인적이었고, 아파트나 상가를 짓던 건설사들은 분양이 안 되거나 분양이 취소되어 줄줄이 파산했다. 대기업을 비롯한 웬만한 직장에서는 20~30%의 감원은 보통이었다. 오죽했으면 해외로 유학 갔던 많은 학생들이 학비를 송금 받지 못해 돌아왔고, 교육당국은 이들을 위해 특별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로펌도 예외가 아니어서 최강로펌도 참 힘든 시기를 잘도 버텼고 결국 살아남은 셈이었다.

    그러나 어딘가에는 틈새가 있기 마련이어서 IMF 때 몇몇 대형로펌들은 대형부실기업의 인수, 합병이나 회사 정리, 파산 등의 사건을 도맡아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최동수도 평소에는 생각을 하면서도 언제나 반복되는 그날그날의 일 때문에 로펌의 전문화, 국제화를 심각하게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IMF는 최동수에게 변화를 강요했고, 최동수 역시 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이제는 로펌의 생존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최동수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고 IMF로 인한 충격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바로 로펌의 체질개선에 착수했던 것이다. 최동수가 가장 먼저 보강한 것이 금융과 IP(지적 재산권), 그리고 가족법분야였다.

    IMF를 겪으며 최동수가 새삼 느낀 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권력과 돈이지만 권력은 유한한데 비해 자본의 힘은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IMF는 대한민국이 그 의사와는 상관없이 국제사회로 편입되는 속도를 가속화시켰고, 이제는 그 어느 것도 이 흐름을 되돌릴 수가 없게 되었다. 국제사회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역시 자본이고, 자본은 국경이나 이념 또는 인종이나 문화와는 상관없이 이익을 쫓아 흐르기 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금융과 IP분야를 강화하는 것은 때 늦은 감마저 있었다.

    최동수가 가족법파트를 강화한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현실을 반영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IMF는 전통적 가부장적 한국 가정의 해체를 가속화시켰다. 이혼의 급증, 재산상속을 둘러싼 다툼, 자녀의 양육에 관한 문제 등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법률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해결이 잘 안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박두현, 송판국, 김일세, 배금호, 심해정, 이수연은 이런 의미에서 최동수가 보강한 기대주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최동수의 기대주들은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 최강로펌도 규모면에서나 실적 면에서 이제 일류 로펌에 바짝 다가섰다고 할 수 있었다.

    기대주 중 단연 으뜸은 역시 박두현 변호사였다. 법원에서 금융전담부 부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베테랑인데다가 타고난 성실함과 치밀함이 금융 분야에서 최고실력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했다. 최강의 금융팀의 명성은 그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 장미은행건의 승패도 전적으로 그에게 달려 있었다.

    헌데 소송 상대방인 장미은행이 경영악화로 해외매각 위기로 몰리다니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장미은행 임직원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것도 경영악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같아 꼭 죄지은 기분이었다.

    최동수는 방을 나왔다.

    “아, 박 비서. 나 박두현 변호사님 방에 잠깐 가요.”

    “네, 대표님.”

    박선희는 최동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쯤 열려 있는 박두현의 방은 언제나처럼 잔뜩 쌓여 있는 기록과 자료, 책들로 빈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방 한쪽에 겨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은 회의용 탁자 위에도 자료가 널려 있었다.

    문 앞에서 최동수가 지켜보고 있는데도 박두현은 미동도 않고 자료검토에 여념이 없었다. 아마 최동수가 그러고 서 있으면 언제까지고 그럴 것처럼 보였다.

    최동수는 빙긋이 웃으며 조그맣게 노크를 했다.

    “아, 박 변호사님. 뭘 그렇게 열심히 보십니까?”

    “아, 대표님. 죄송합니다. 오신 줄도 모르고…”

    “하하하, 대단하십니다. 혹시 제가 방해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오늘은 특별한 스케줄이 없어서 밀린 서류검토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박 변호사님한테 차 한 잔 얻어먹읍시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옆에 있는 회의실로 가시지요.”

    “아닙니다. 그냥 박 변호사님 방에서 마시지요. 특별히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방이 너무 지저분하고 복잡해서…”

    노타이 차림의 박두현은 너저분하게 어질러져 있는 사무실을 돌아보며 멋쩍어 했다. 그는 재판이나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이 없는 날이면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아, 괜찮아요. 변호사들 방이야 다 그렇지요. 좀 큰 사무실을 마련해 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입니다.”

    최동수는 회의용 간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박두현은 탁자 위에 있던 서류들을 부지런히 치웠다.

    “대표님, 집에서 가져온 유자차가 있는데 어떻습니까?”

    “유자차? 좋지요.”

    박두현은 이 비서에게 유자차 두 잔을 주문했고 최동수와 마주 앉았다. 둥근 모양의 회의용 탁자는 작아서 마주 앉은 사람도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였다.

    “요즈음 석훈이는 공부 열심히 하지요?”

    석훈이는 박두현의 큰 아들로 올해 서울대 법대에 수시로 합격한 수재였다. 법대로 진학한 만큼 박두현에 이어 법조 2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에이, 공부는 무슨 공부입니까? 요즈음 어찌나 술을 퍼마시고 다니는지 얼굴 보기가 어렵습니다. 도대체 요즈음 대학생은 왜 그렇게 원수진 것처럼 술을 마셔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그래요. 하긴 이제 1학년이니 그동안 억눌렸던 젊음을 발산해야겠지요. 석훈이는 아무 걱정할 필요 없을 겁니다. 때가 되면 알아서 다 하는 아이니까. 참 든든하시겠습니다.”

    “두고 봐야지요. 이제는 부모가 뭐라 한다고 들을 나이도 아니니까요.”

    “사모님의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최동수는 박두현의 처가 얼마 전 유방암 수술을 받은 것을 알고 있었다.

    “네, 염려해 주신 덕에 이젠 많이 좋아졌습니다. 최 대표님, 요즈음도 사모님하고 오페라 자주 보십니까?”

    박두현도 최동수가 오패라나 뮤지컬 공연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에이, 요즈음은 통 못갑니다. 그것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지요.”

    최동수는 손사래까지 치며 최근 여러 가지로 신경 쓰이는 일이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도 그럴수록 기분전환 하셔야지요. 그래야 저희 같은 쫄자들도 덕분에 오페라 구경 한번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래요? 그럽시다 그럼.”

    최동수는 박두현의 말에 유쾌해진 듯 밝게 웃으며 유자차를 마셨다.

    “대표님, 혹시 뭐 저에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박두현은 유자차 한 모금을 마시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장미은행과 관련하여 언론에서 요란스럽게 보도하고 있어 박두현도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아, 뭐 특별한 건 아니요. 그냥, 박 변호사님도 오늘 신문에 장미은행 매각발표 보셨지요? 장미은행의 상황이 상당히 어려운 모양이지요?”

    박두현의 짐작대로 최동수도 장미은행 건이 걸렸던 것이다.
    “예, 외형상으로는 BIS(국제결제은행) 기준도 충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산규모나 영업이익면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 바르비종 펀드 투자건으로 신인도가 급격히 하락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큰 거래처들이 속속 주거래 은행을 다른 은행으로 옮기고 일반 예금자들도 대거 예탁금을 인출하는 바람에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주가도 물론 반 토막이 났고요.”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소액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박두현도 사실 아까부터 그 점이 걸렸던 것이다.

    “꼭 그렇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바르비종 펀드 투자건은 우리가 아니더라도 시민단체에서 먼저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바로 터질 시한폭탄이었습니다. 다만 장미은행의 분식회계를 바로 잡고 경영의 건전화를 목적으로 소액주주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결과가 최악의 상황으로 흐르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음, 그렇겠군요. 헌데 그 소송건은 입증면에서 특별한 문제는 없겠습니까?”

    최동수는 염려하고 있던 일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승소에 자신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예. 회계법인으로부터 그 투자분석보고서는 정상적으로 작성된 것이 맞다는 회신이 왔습니다. 물론 그 분석보고서 내용이 정확한 것이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만, 그 밖에 법리적인 것은 제가 다른 변호사들과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박 변호사님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지요. 혹시 인력면에서 더 지원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혹시 다비드 앤 솔로몬 로펌에 관한 소문을 들으셨습니까?”

    박두현은 망설이다가 어렵게 얘기를 꺼낸 듯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다비드 앤 솔로몬? 그 로펌이 요사이 아주 공격적으로 국내 변호사들을 영입하고 있다면서요?”

    다비드 앤 솔로몬은 뉴욕에 본점을 두고 있는 세계적인 로펌으로 전 세계에 50여개의 지사를 갖고 있고 소속 변호사만 해도 2,000명이 넘었다. 한국에는 작년에 사무소를 개설하여 제법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영미계 로펌이었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소문이 있습니다.”

    “이상한 소문이라니요? 그게 뭡니까?”

    “다비드 앤 솔로몬에서는 올해 국내 변호사 영입보다는 아예 국내 로펌하고 합병할 것을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박두현은 국내 로펌 인수라고 할까 하다가 최동수의 기분을 고려하여 합병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요? 아무래도 한국에서 지속적인 프랙티스를 하려면 어느 정도 국내 기반을 갖춘 국내 로펌하고 합병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최동수는 그게 무슨 특별한 일이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박두현이 말하는 소문의 진상을 아직 모르는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거야 외국로펌이 국내에 사무소를 개설할 때마다 늘 나도는 얘기 아닙니까? 다비드 앤 솔로몬은 뭐 특별히 다른 점이라도 있나요?”

    최동수는 유자차를 한 모금 마시다가 그제서야 뭔가 이상한 감을 잡은 듯 박두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 그게 저어…말도 안 되는 얘기라 말씀드리기가 민망합니다.”

    “아, 괜찮아요. 박 변호사님과 저 사이에 못할 말이 뭐 있겠습니까? 무슨 소문인지 들어봅시다.”

    최동수는 잔을 내려놓고,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박두현을 재촉했다.

    “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비드 앤 솔로몬이 합병 목표로 지목한 것은 바로 우리 최강로펌이라고 합니다.”

    “아니, 뭐요? 우리 최강을…?”

    최동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최강의 실질적인 오너인 자기도 모르게 최강이 외국 로펌의 합병 대상이 되었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최동수는 어이가 없어 말없이 박두현을 바라보았다. 박두현은 최동수의 반응이 의외로 민감한 것 같아 더욱 당황스러웠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아마도 다른 중소로펌을 합병하기 위해 일부러 애드벌룬을 한번 띄워 본거겠지요. 신경 쓰실 것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대표님께서 그런 소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요? 허! 참! 그래도 우리 최강을 합병 대상으로 지목하다니, 재미있군요. 그런데 박 변호사님 혹시 그런 소문이 어디서 나온 건지 짐작이 가십니까?”

    최동수는 우회적으로 소문의 진원지를 묻고 있었다.

    “네, 제가 잘 아는 경제신문 기자로부터 들었습니다. 그 기자도 확인된 사실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렇겠지요. 박 변호사님, 제 기우이겠지만 혹시라도 그런 소문이 확대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에 흔들릴 멤버도 없겠지만. 그래도…”

    “물론입니다. 염려 마십시오.”

    박두현의 방을 나오는 최동수의 가슴은 아까보다 더 답답해져 있었다. 혹 떼러 갔다가 혹을 하나 더 붙이고 온 셈이었다. 다비드 앤 솔로몬이라? 아무리 소문이라도 정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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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로메 44호 : 최동수의 마음이 더 답답해졌겠네요. 다비드 앤 솔로몬의 시선에서도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오늘도 즐겁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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