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윤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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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제국 (9) 첫 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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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않는제국9

    9월 8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 318호실, 장미은행 사건의 첫 번째 준비기일이 열렸다. 소액주주를 대리한 최강로펌에서는 팀장인 박두현과 김일세 변호사가 출석했고 장미은행은 예상했던 대로 김앤송과 이앤파트너를 공동대리인으로 선임했다.

    김앤송에서는 금융팀의 떠오르는 별이라는 차영철 변호사가 나왔고 이앤파트너에서는 얼마 전 고등법원 부장직에서 퇴임한 황진 변호사가 출석했다. 출석한 변호사의 면면만 보더라도 장미은행은 물론이고 김앤송과 이앤파트너에서도 이 사건에 전력을 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금융전담부인 제25부로 배당되었다. 오늘 준비기일은 주심인 정영숙 부장이 주재했다. 정영숙 부장은 최근 미국 하버드대에 연수까지 다녀온 자타가 공인하는 법률내 금융법 실력파였다. 깔끔한 외모만큼이나 재판진행에 빈틈없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 만큼 변론준비를 어설프게 하거나 무리한 주장을 했다가는 본전도 못 건진다고 했다.

    “2008가합19305 손해배상 원고 한경수 외51 대리인 최강로펌, 피고 장미은행 외2 대리인 김앤송과 이앤파트너. 최강로펌에서는 누가 나오셨지요?”

    정 부장이 사건을 호명하고 대리인으로 출석한 변호사를 확인했다.

    “네, 최강로펌의 박두현 변호사와 김일세 변호사입니다.”

    “피고 대리인으로는 이앤파트너의 황진 변호사님 나오셨고, 김앤송에서는 어느 분이 나오셨습니까?”

    “예, 차영철 변호사입니다”

    정 부장은 현직에서 퇴임한지 얼마 안 되는 황진 변호사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친근함을 표시했다.

    “먼저 원고들 대리인께서 이 사건 청구원인의 요지를 간략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예, 2007년 2월 경 장미은행에서는 미국계 금융 그룹인 라 쉴드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모펀드의 일종인 바르비종펀드에 10억불이 넘는 거액을 투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투자결정과 투자계약 체결과정에서 전문가로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투자의 원칙도 무시한 과실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장미은행이 투자한 자금은 장미은행의 자산으로서 수많은 고객들이 예금한 돈이고 장미은행의 모든 주주들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장미은행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고 지난해의 영업이익을 1조원 이상 올렸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허위공시이고, 주주들과 고객들을 기망하여 큰 손실을 입게 한 것으로 국민경제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 명백하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를 시정하기 위해 소액주주들을 대리하여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박두현은 최대한 간략하게 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 이에 대해 피고 측에서 의견을 말씀해 보시지요. 어느 분이 먼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정영숙 부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부드러웠다.

    “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상대로 황진 변호사가 나섰다.

    “자통법(자금시장통합법)이 시행된 이래 금융업종간에는 그 경계가 사실상 없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은행도 자금을 가계나 기업에 대출하여 영업하는 것만으로는 증권사나 투자자문사 등 다른 금융기관과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은행에서도 여유자금을 국내주식시장은 물론 선진 외국의 주식시장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국내외의 금융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장미은행의 경영진도 국제금융부를 대폭 강화하여 투자의 다각화를 모색하여 왔는데 해외 유명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인 것입니다. 해외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큰 이익이 날 수도 있고 또 손실을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장미은행의 경영진은 모든 자료와 정보를 종합하여 항상 최선의 투자 결정을 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으므로 전문가로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거나 투자의 원칙을 무시하였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지난 회계연도에는 해외펀드의 투자 수익이 연 평균 27%였습니다. 이는 국내펀드의 연 평균 투자수익의 두 배가 넘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고들의 이사건 청구는 아무 근거 없는 부당한 것으로서 기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법원에서 고등부장까지 역임한 황진 변호사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자신감에 차있는 듯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차 변호사님께서 추가로 말씀하실 내용이 있으면 하십시오.”

    체구가 유달리 커 보이는 차영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키가 180센티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차영철이 일어서자 넓지 않은 준비실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차 변호사님, 그냥 앉아서 말씀하시지요.”

    차영철을 올려다보고 있던 정영숙 부장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하자 차영철은 멋쩍은 듯 도로 자리에 앉았다.

    “네, 우선 공동대리인의 주장을 전적으로 원용합니다. 다만 원고 측에서 장미은행의 투자결정과정에 전문가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주장하시는데, 금융기관의 투자는 국정에 따라 정해진 절차와 방식에 따라서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투자결정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큰 체구와는 달리 차영철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양쪽 대리인의 주장을 모두 들어 봤는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원고 대리인 그러면 원고의 주장사실을 어떻게 입증하실 생각입니까?”

    김일세는 재빨리 정리해 가지고 있던 자료를 박두현에게 건네주었다.

    “네, 먼저 피고 측에 석명을 구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피고 측의 석명정도에 따라 입증방법과 수위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말씀해 보십시오.”

    “우선 작년 2월경 피고 은행에서 미국계 사모펀드인 바르비종 펀드에 10억불을 투자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와, 둘째 그 펀드가 큰 손실을 입어 결과적으로 장미은행이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이 사실인지 여부 셋째, 이와 같은 바르비종 펀드의 손실에 대해 세계적인 회계 법인에서 투자분석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장미은행에 보낸 사실이 있는데 그 보고서를 접수한 것이 사실인지 여부에 대해 먼저 피고 측에서 석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두현은 조용하면서도 힘 있게 말했다.

    “피고 측에서 석명해 주시겠습니까?”

    정영숙 부장은 황진과 차영철을 보며 답변을 촉구했다. 이번에도 황진 변호사가 나섰다.

    “네. 재판장님,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장미은행에서 투자의 다각화를 위해 해외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느 펀드에 얼마를 투자하는지 그 상세한 내역은 일종의 영업상의 노하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밝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해외펀드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는 것은 전혀 사실무근이고 회계법인의 투자분석보고서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피고 은행은 펀드의 손익에 대해 회계 법인에 투자분석보고서를 해달라고 의뢰한 사실도 없고 또 회계 법인에서도 아무 이유 없이 피고 은행에게 투자분석보고서를 보낼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황진 변호사는 장미은행의 투자손실자체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원고 측 석명요구에 대해서도 일체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물론 사전에 김앤송의 차영철과 조율한 내용이었다.

    “재판장님, 그러면 원고 측에서 정식으로 피고 은행에 대해 석명 요구사항을 문서로 작성하여 제출하겠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투자분석보고서를 작성했다는 회계 법인에 대하여 정말로 그런 투자분석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 사실조회를 신청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외국의 회계 법인에 대해 사실조회신청을 하면 제대로 회신을 해주겠습니까?”

    “예, 그 회계법인도 세계적인 기업이고 또 공신력을 생명으로 하는 회계법인입니다. 적어도 재판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실조회서를 보내면 반드시 회신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좋습니다. 그러면 원고 측에서는 석명요구사항과 그 근거를 명시하여 제출해 주시고 사실조회 신청서도 가능하면 빨리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청서가 제출되면 검토하여 채택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기일은 4주 후인 9월 29일 오후 2시로 하겠습니다.”

    법정에서 나오면서 박두현은 황진에게 인사를 청했다.

    “황 부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은 저와 같이 일하고 있는 김일세 변호사입니다.”

    박두현은 옆에서 보도하고 있는 김일세를 챙겨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 현직에서 퇴임한지 얼마 안 되는 황진에게 변호사라고 하지 않고 현직 때의 호칭을 부르며 인사를 청했다.

    “하하하.. 박 변호사, 김 변호사. 우리 잘 해 봅시다.”

    황진도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여유 있게 악수를 청했다.

    “차 변호사도 잘 부탁해. 우리 잘해 보자고”

    박두현은 차영철과는 이미 여러 차례 소송에서 마주친 경험이 있어 친근함마저 느꼈다.

    “예, 박 변호사님, 김 변호사님.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차영철도 그 큰 체구를 구부리며 두 사람과 교대로 악수했다.

    법정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적이지만 일단 법정 밖으로 나오면 다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동업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박변호사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이런 점에서 참 매력 있다고 새삼스레 느꼈다.

    그것도 잠시, 복도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법조출입기자들이 카메라를 터뜨리며 막무가내로 질문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박 변호사님. 장미은행 측에서는 청구원인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데 입증에는 자신이 있습니까?”

    “황 변호사님. 정말 장미은행에서는 그 투자분석보고서를 받은 사실이 없나요?”

    “만약 그 투자분석보고서가 사실이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차 변호사님. 김앤송과 이앤파트너에서는 이 사건 소송수행을 위해 공동팀을 구성하셨나요? 아니면 각각 독자적으로 소송을 수행하는 건가요?”

    박두현과 황진은 물론 김일세와 차영철도 이미 짐작하고 대비하고 있던 터라 기자들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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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로메 44호 : 첫 재판이군요! 어려운 말들도 나와서 찾아가면서 보고 있습니다^^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 그냥9호 : 지난회는 살짝 사건 밖의 느낌이 있었는데, 드디어 사건이 진행되는군요. 작가님의 전문분야여서 더욱 자세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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