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박철
  • 변호사
  • 법무법인 바른
연락처 : 02-3476-5599
이메일 : cheoll.park@barunlaw.com
홈페이지 : www.barunlaw.com
주소 :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5-27 바른빌딩
소개 :

이 포스트는 0명이 in+했습니다.

    목록이 없습니다.

    무량수전 부처님이 동쪽을 향해 앉은 까닭은?

    0

    언제부터인가 문화유산 답사는 나름의 시각과 미감으로 자신만의 느낌을 찾는 여행이 아니라 정형화된 지식과 시각으로 정답을 찾아다니는 암기공부가 된 것 같아 아쉽다. 그러다보니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차경(借耕)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지 않으면 우리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긴다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었다. 그 분위기 때문인지 무량수전은 언제나 버킷리스트의 첫머리에 올라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연이 닿지 않다가 얼마 전 몸이 조금 편해진 틈을 타서 큰 맘 먹고 처와 함께 부석사로 떠났다.

    ▲  부석사무량수전 [浮石寺無量壽殿]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부석사무량수전 [浮石寺無量壽殿]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왕 먼 걸음을 하는 김에 봉화 청량산의 청량사도 함께 찾았는데, 한 가지 이유는 건강을 위하여 땀이 좀 날 정도의 산행을 하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의 이유는 비운의 왕이었던 공민왕의 흔적을 따라가 보기 위해서였다.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으로 개경을 떠나 청량산성으로 피신하던 도중 영주 부석사에서 무량수전이라는 현판의 글씨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청량산 인근 마을주민들은 공민왕을 마을신으로 모셨는데 청량산에는 공민왕의 사당과 노국공주의 조상이 남아 있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중국식 사찰의 전통에 따라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특이하게도 무량수전의 아미타부처님은 동향으로 앉아계셨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아미타불이 서방극락정토를 주관하시는 부처님이기 때문에 무량수전의 서쪽에 앉아 동쪽을 바라본다는 것이 흔히 하는 설명인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설명도 가능할 것 같다. 태양 중시 전통을 가진 곳에서 신전은 해가 뜨는 동향으로 지어졌는데 이집트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곳에서는 동쪽의 삶과 서쪽의 죽음, 빛의 선과 어둠의 악, 오른손의 신성과 왼손의 부정 등 대비되는 이분법적 사고가 발전하였다. 최초의 불교사원이 지어진 인도도 같은 전통이 있어서 인도의 불교사원은 동향으로 건축되었다. 반면 대승불교가 전해진 중국과 동북아에서는 전혀 다른 생각이 지배하였다. 달이 차고 기울었다가 다시 차듯이 낮과 밤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원을 그리면서 섞이고 순환하는 것이 우주의 질서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순환하는 우주에서 북극성은 변함없이 북쪽을 지키므로 그 우주의 축을 따라 천자는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앉는다는 방위 개념이 생겼는데 진시황이 이를 통치이념으로 정립하였다. 그러니 중국의 사찰은 당연히 이 법칙을 따라야 했다.

    그런데 신라는 중국화된 불교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인도의 불교문화를 직접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석굴암의 석가모니 부처님은 중국의 부처님처럼 남쪽을 향하지 않고 인도의 부처님처럼 동쪽을 향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 석가모니 부처님만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지만 신라에서는 항마촉지인을 한 약사여래도 만들어졌다. 고려 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무량수전의 소조아미타불좌상도 특이하게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는데 신라불의 전통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무량수전의 부처님은 중국불교와 인도불교를 종합하여 우리 나름의 불교문화를 이루었던 증거가 아닌가 싶다.

     

    ◊ 이 글은 2013년 6월 13일자 법률신문 14면 <서초포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