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박형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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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민주화 법령 개정 논의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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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대선을 전후하여 국민적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경제민주화’란 용어가 단순한 정치적 신조어가 아니라 우리 헌법이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규범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도 경제민주화의 헌법적 의미에 대해, “경제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기 위하여 추구할 수 있는 국가목표로서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행위를 정당화하는 헌법규범”이라고 설시하고 있습니다(99헌바91).

    최근 국내외 경제상황의 악화로 인해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정치권에서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현재 제19대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모두 32건 발의되어 있습니다. 개정안의 내용은 출자총액제도 부활이나 순환출자 금지와 같은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규제에서부터 부당공동행위와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규제 강화, 과징금 부과 한도 상향, 전속고발제 폐지, 집단소송제도 및 사인의 금지청구권 도입,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원 임명절차 개선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용은 대기업 계열회사 간 ‘일감 몰아주기’로 불리는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규제 강화일 것입니다. 대기업 총수의 자녀들이 회사를 설립하면 그룹 계열회사들이 안정적으로 일감을 몰아주거나(‘일감 몰아주기’), 심지어 주요 수익사업을 떼어주기도(‘일감 떼어주기’) 하는 행태가 대표적인 비판의 대상입니다. 현행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7호는 불공정거래행위의 하나로서 ‘부당지원행위’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일부 개정안은 현행법상 부당지원행위의 경우 계열회사 간에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였다는 사실을 경쟁당국이 입증하기 어려워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지므로 ‘현저히 유리한 조건’에서 ‘현저히’를 삭제하고 ‘유리한 조건’만으로 하거나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그 요건을 완화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지난 4월초 여러 건의 일감 몰아주기 관련 개정법률안을 심사하면서 대체입법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체입법안의 내용은 기존 개정법률안보다 규제가 더욱 강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현행 법에서 일감을 몰아준 기업 즉, 지원주체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하던 것을 지원받은 회사 즉, 지원객체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한 부당내부거래로 혜택을 받은 계열회사에 대한 대기업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를 넘는 경우 총수가 관여한 것으로 추정하고,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되었습니다. 나아가 대기업 총수 일가 등에 대한 경제적 이익 공여가 정당한 예외적 거래임을 해당 계열회사가 입증하도록 함으로써 부당내부거래의 부당성에 대한 입증책임을 사실상 기업으로 전환하는 내용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한 경제민주화 내지 경제정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대기업들이 우리 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더라도 일부 대기업총수들이 일감 몰아주기를 자녀들에 대한 편법 증여나 상속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것은 경제정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쌓아온 공을 스스로 까먹는 일이라는 여론이 비등한 것이 현실입니다. 일부 재계에서는 지금 세계경제가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인데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투자활동을 위축시키는 대기업에 대한 규제 일변도의 법개정을 논할 때가 아니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 총수가 있는 43개 기업집단의 경우 총수 일가의 평균 지분율이 4.17%에 불과한데도(공정위 보도자료. 2012. 4. 12 기준), 계열회사들을 마치 개인기업인양 편법적인 상속ㆍ증여 등과 같은 사익추구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데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습니다.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넘어서고, 자영업자 창업의 성공확률이 3%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청년실업으로 대학문을 나서기 꺼려하는 팍팍한 시대에 살고 있는 대부분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을 보듬지 않으면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위와 같은 비판이 모든 대기업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년에 지구의 몇 바퀴를 돌며 경영일선에 서서 더욱 치열해진 글로벌 경쟁을 뚫고 나가는 대기업 총수들이 있는가 하면 기술개발과 품질경영으로 국민경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대기업들도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지난 해 공정거래위원회의 모범기준 제정에 따라 광고, 시스템통합(SI), 물류, 건설 분야에 있어서 경쟁입찰 등을 통해 계열회사가 아닌 독립 중소기업에게 사업기회를 개방하는 대기업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립니다.

    지난 4월 10일 △하도급대금의 부당 단가 인하, △부당 발주 취소, △부당 반품행위에 대해서도 기존 기술유용 및 탈취행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급업자에게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하였습니다. 그리고 4월 12일에는 여야 정치권이 지난 대선에서의 공통 공약 80여 개 법안을 올해 6월까지 우선 처리하기로 합의하였다는 언론보도도 있었습니다. 당분간은 경제민주화 관련법령 개정안들에 대한 논란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기회에 그 동안 일부 정치권에서만 논의되어 온 감이 없지 않았던 경제민주화 관련 법령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학계와 실무계 등으로 좀 더 확대되고 다양해지기를 기대합니다. 큰 틀에서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면 이를 기초로 우리 헌법규범의 틀 안에서 피규제자들도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의 합리적인 규제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기존 규제법령의 체계와도 조화되어야 하고, 현실적으로도 효율적인 법집행이 가능하도록 구성해서 당초 입법 취지가 극대화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공정하고 정의로운 경쟁질서의 틀을 더욱 공고히 구축함으로써 기업은 각자의 역할을 다해 국민경제에 기여하고 모든 국민은 나름대로의 경제활동을 통하여 그 혜택을 골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국민경제의 성장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적정한 소득의 분배가 이루어져야 하고, 거대 자본의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여 공정한 경쟁질서를 마련해야 하며, 경제 주체간의 합리적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헌법 규정이 만들어진 지 오래 되었지만 요즘처럼 널리 공감을 얻고 있는 시기도 일찍이 없던 것 같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정치가 어느 정도 민주화되었고, 우리 경제의 역량이 그만큼 커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헌법의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기본권이 과도하게 침해되어서는 물론 안될 일입니다. 그렇다고 특정 개인이나 경제주체가 부당하게 이익을 독차지하도록 허용하는 시스템이 있는데도 마냥 방치해 두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차제에 잘못된 관행과 부조리한 경제질서가 우리 주변에 남아 있다면 시대에 맞게 다시 살펴보고 보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경제민주화라고 하는 우리의 헌법적 규범이자 가치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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