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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comb Theory (‘벌집’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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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사회는 사유재산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이며 자유와 평등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개인주의사상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사회이다. 즉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추구하며 나는 나를 위하여 사는 사회이다.

그런데 내가 나만을 위하지 않고 “내가 너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 또는 손해보는 것 즉 봉사정신을 미덕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공산주의사회에서는 일하지 아니하고 먹는 것은 죄악이라고 한다. 그러하다면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을 일하지 아니하고 먹게 하는 것이며 그 사람에게 거지근성을 키워주는 것이 되니 반드시 미덕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2.) 자본주의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하였지만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벽에 부닥쳤다. 그래서 소위 수정자본주의라고 하여 제도적으로 경제를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통제경제’체제와는 다르지만 경제를 통제하는 제도적 장치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냐 하는 데는 이론이 없지 않다. 우리는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제도적 장치 즉‘법’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고 본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도이니 그 법만으로는 부족하므로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이 사회는 나는 나를 위하여 사는 사회이지만 조금은 내가 너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 또는 손해보는 것이 미덕이라고 하는 까닭을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누구나 다소 희생하고 손해볼 줄 알아야 한다지만 그리고 그것은 다다익선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 또는 분량의 한계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푸는데 는 기하학의 원리를 동원하기로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다. 이를 사람은 모두 같은 길이의 선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 선으로 어떠한 도형을 그리느냐 하는 것은 자유이다. 이를 ‘자유와 평등’이라고 한다. 같은 길이의 선으로 도형을 그릴 때 그 도형의 면적은 삼각형보다 사각형을 그리는 것이 더 넓다. 사각형보다는 오각형, 육각형, 팔각형, 궁극적으로는 원을 그리는 것이 가장 그 면적이 넓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원을 그리려고 한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얻으려는 것이 경제원칙이다.

3.) 사람은 ‘로빈슨 크로스’와 같이 무인고도에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서로 상관관계를 맺고 붙어사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사람과 사람의 결합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 개의 도형이 빈틈없이 서로 맞붙어 있게 그리려면 모두가 원을 구릴 수는 없다. 같은 길이의 선으로(평등)도형을 그리면서(자유) 그 도형은 서로 빈틈없이 맞붙게 그려야 하는데(인간사회) 그 도형의 면적을 가장 넓게 그리는(경제원칙) 기하학적 원리는 정 육각형을 그리는 방법이다. 바로 벌집모양인 도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길이의 선으로 그린 원과 정 육각형은 그 면적을 계산하면 정육각형은 원보다 약10%정도 적다. 그러하다면 우리가 더불어 잘 살려면 내가 나만을 위하여 원을 고집할 것이 아니고 정 육각형을 그림으로써 너를 위하여 약10%정도는 양보해야한다는 계산이 된다. ‘아담 스미스’는 모두에게 원을 그리게 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그 도형은 정 육각형인 벌집 모양인 도형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으나 이는 이뤄지지 안았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지혜로 벌집을 만들어야한다. 정의는 질서가 잘 유지되는 인간관계의 조화 외에 각자가 그의 몫을 가질 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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