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한희원
  • 법학교수
  •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서울신문 칼럼리스트
  • 사법정책, 법무,경찰,행정, 변호사양성, 생활문화, 형사법, 국제관계법,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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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민주주의(Democracy)와 자유주의(Liberalism)의 진정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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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민주화와 복지!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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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1.6%로 떨어졌다. 하지만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3인의 대선후보들은 복지와 경제민주화 정책을 계속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대기업 개혁이 오히려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저성장일수록 복지확충이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은 보육·교육·대학등록금·노인·골목상권 등에서 화려하다. 정녕 차기 대통령이 이끌 대한민국은 아무런 경제문제 없이 안락한 낙원이 될 것인가?

    그런데 이건 또 무엇인가! 경제민주화 부작용의 예고탄인가? 기획재정부가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 대기업 참여를 배제하려고 하는데 그 빈자리를 우리의 중소기업이 아니라 외국기업이 비집고 들어올까 노심초사한다는 것이다. 이치는 동일하다. 골목상권에 대기업의 진입을 규제한다고 골목상권이 선량한 골목주민들의 몫이 될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분명코 또 다른 중간 우두머리 상인 심지어 이권에 개입하는 조폭집단 등이 새로운 상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고 나설 것이다. 결국 선량한 시민들을 더욱 많이 자영업 진출로 유도하고 더 많이 폐업하게 하는 창업 패망자를 양산할 위험성이 크다. 복지문제도 그렇다. 복지가 돈 없이 가능한가? 국가가 돈을 버는 방법은 3가지 방법 밖에는 없다. 세금을 더 걷거나, 남의 나라에서 돈을 빌려 오거나, 아니면 국가재산을 매각하여 돈을 장만하는 것이다. 결국 경제성장 없는 복지는 후손들의 미래자산을 앞당겨서 사용하는 과소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을 이루고 복지를 통해 빈부격차를 줄이자는 이상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경쟁 없이 상생하고, 성장 없이 복지할 수 있는 그런 유토피아가 가능할까? 정의를 지향한 인류역사의 실천적인 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참된 정의는 무엇일까? 정답은 공동체 정신의 함양이다. 공동체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권리보다는 자발적으로 책임·공동선·헌신·미덕 등 아름다움 삶을 강조하는 정신이다. 하지만 공동체주의는 정의를 무조건적인 공정으로 보지는 않는다. 공동체사회는 결코 평등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공동체사회에는 당연히 불평등도 있고 따라서 빈부격차가 있고 실패하는 사람이나 기업이 있지만 그래도 이웃으로 서로 돕고 살자는 좋은 삶에 우선적인 가치를 둔다. 그를 위해서 합숙교육과 군대처럼 단체생활의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단적으로 역사적인 모범답안이 있었다. 1920년대 대공황시대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공동체정신을 함양하는 정치로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했다. 젊은이들로 구성된 자연보호청년단은 국립공원 내에 캠프를 치고 도로와 다리건설, 산불 끄기, 나무심기를 하면서 뭉치면 할 수 있다는 단결심을 다졌다, 조금만 봉사하면 끼니는 해결할 수 있는 일거리가 예술가들에게도 주어졌다. 음악가와 배우들에게는 시민들을 위해 공연을 하게했고, 작가들에게는 지역의 특색을 발굴하여 아름다운 글로 마을 안내책자를 만들게 했다. 화가들에게는 공공건물의 벽에 색감 넘치는 벽화를 그리게 했다. 공짜는 없지만 함께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단결심을 고양시켰던 것이다.

    원래 불평등의 심화가 사회에 주는 진짜 위험성은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부자와 가난한 자는 서로 멀리하고 심지어 증오와 투쟁의식만 커져간다는 사실이다. 그에 대한 해법으로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경제민주화 같은 강력한 행정규제나 보편복지 같은 무분별한 재분배가 아니라 부자나 가난한 사람 모두를 한자리에 끌어낼 수 있는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기업에서 빼앗아서 중소기업에게 주는 초과이익공유제나, 가진 사람 것을 빼앗아 없는 사람에게 준다는 무상복지가 아니라, 대기업들이 거출한 과학출연금, 국가안보기금 등이 필요하고 가치를 가지는 이유이다. 정부는 중소기업 사장과 대기업 오너회장이 직접 만나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들어 주는 것에 그칠 일이다. 대기업을 악마로 만든다고 하여 경제민주화가 앞당겨지는 것도 그 자리를 중소기업이 차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권은 국가와 선량한 국민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세대들은 배고픈 배를 움켜잡고도 아들딸들을 먹이기 위해 참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빚을 내서라도 당장에 우리부터 배터지게 먹고 보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 아들딸들이 가져야 할 미래의 소득을 우리부터 배불리 먹고 낭비하자는 정치의 사술이다.

    단적으로 복지비용은 사회학적이나 정치적으로는 유용할 수 있지만 그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부쳐도 경제학적으로는 낭비되는 돈이다. 정의론적으로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존재인 개개인의 능력을 근본부터 갉아먹는 마약으로 작용한다. 끊임없이 안락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본성에 비추어 결코 개인의 창의력과 자립심을 향상시킬 수도 없다. 복지는 경쟁에서 뒤쳐진 패배자에게는 달콤한 임시처방으로 불만세력을 잠재울 수는 있지만, 분명코 국가경제에 부담을 가져오고 개인의 창의력을 좀먹는 정치매표를 위한 악성담보일 뿐이다. “진정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통한사회정의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정치권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정치특권과 반칙을 내려놓고 국회의원 자리를 무보수 명예직으로 만드는 혁신을 단행해 보라!”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에 따라서 대한민국의 운명은 달라질 것이다. 선택기준은 명백하다. 대권후보들이 대한민국을 경제실험실로 만들려고 하는 이 판국에, 그나마 덜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을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리라!

    본글은 내일(2012년 11월 2일)자 서울신문 열린세상의 정기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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