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차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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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조력인 ‘찬밥 신세’… 법률상 권한은 법전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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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범죄 피해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국선변호인’(법률조력인) 제도가 시행된지 6개월이 지났지만 법원과 검찰의 비협조로 법률조력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조력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 A씨는 최근 자신이 담당한 아동성폭행 사건이 공소제기 됐는지 여부와 관련해 검찰로부터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했다. A씨는 사건의 검찰 송치일로부터 2주를 기다려도 아무런 연락이 없자 대법원 사건 검색을 통해 이 사건이 공소제기가 됐다는 사실을 공판준비기일 이틀 전에서야 알게 됐다. A씨는 급히 법원에 재판기록 열람·복사신청을 했으나 재판장의 허가가 나지 않았고, 다시 검찰에 연락해 공소장 열람·복사를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B 변호사는 지난 7월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해 법률조력인임을 밝히고 공판에 참여했으나 법률조력인을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큰 불편을 겪었다. 하는 수 없이 방청석에 앉아 의견을 말할 때마다 손을 들고 진술했다. 피고인(성폭행 가해자) 측 변호인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해 달라고 신청하자 재판부는 B씨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검사와 상의한 뒤 일반재판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 따르면 법률조력인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해 아동·청소년 등에 대해 조사할 경우 수사기관에 출석할 권한을 가지며, 증거보전절차 청구권과 참여권, 증거보전 후 증거물에 대한 열람·등사권과 공판절차 출석권을 가진다. 또 형사절차에서 피해아동·청소년 등의 대리가 허용되는 모든 소송행위에 대한 포괄적인 대리권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법률조력인들의 법률상의 권한이 무시당하기 일쑤다.

     

    ◇기소여부, 공판기일 등 통지 안 돼= 수사단계에서 법률조력인이 관여한 사건이더라도 검찰은 기소사실이나 공소장 등을 법률조력인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고, 법원 역시 형사공판기일 등에 대한 통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법률조력인은 일일이 개별사건의 진행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 등 성폭력 사건은 친고죄가 아니므로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더라도 검찰이 인지나 신고를 통해 수사개시가 가능하다. 따라서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은 사건에서는 검찰이 피의자의 기소여부를 통지하지 않기 때문에 피고인이 법정에서 자백하는 경우에는 피해자가 모르는 채 선고가 되기도 한다.

    형사법정에 법률조력인이 출석하더라도 변호인으로서 앉을 수 있는 좌석 등이 없어 방청석에 앉아 진행상황을 볼 수밖에 없고, 법률조력인에 대한 의견진술 절차가 보장돼 있지 않아 조력인이 손을 들어 재판장의 허락를 받은 뒤에야 피해자 대리인으로서 진술할 수 있다. 기소된 사건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할지 여부, 피해자인 증인소환일정 등과 관련해 법률조력인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결정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방청석에 앉아 손을 들고 얘기를 하니 재판부가 마치 나를 피해자측 관련자 쯤으로 생각하고 법률조력인을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형사법정 내에 검사석과 피고인석이 아닌 한 자리를 법률조력인 전용 좌석으로 배정하고, 공판절차에서도 최소한 조력인에게 최후진술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록 열람·복사 어려워= 성범죄는 범죄 특성상 인적·물적 증거가 제한되고, 피해자나 피의자의 진술이 사건 해결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공판절차 진행 때 피고인 측은 피해자의 진술을 비롯해 수사서류 전부를 열람·복사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자신이 제출한 증거서류와 진술조서 외에 일체 서류를 열람·복사할 수 없다. 심지어 공판에서 피해자가 증인으로 나가 증언한 증인신문조서도 재판장의 허가가 있어야만 열람·복사할 수 있다.

    검찰도 검찰보존사무규칙에 따라 피의자신문조서 등의 열람·복사를 불허하고 있어 조사 과정에서 담당 수사관의 질문을 통해 피의자의 진술내용을 유추할 수 밖에 없다.

    법원과 검찰은 열람·복사의 제한 이유로 ‘피해자 측이 재판기록을 열람·복사한 후 증언을 변경할 수 있다’거나 ‘개인정보 보호’ 등을 들고 있다.

    실제 열람·복사 제한으로 불이익을 입은 한 법률조력인은 “기소된 사건의 기록을 열람·복사하는 이유는 피해자에게 계속해서 피해사실을 반복 이야기하는 고통을 주지 않고자 하기 위한 것”이라며 “피해자 진술이 번복될 수 있다는 막연한 의심만으로 그와 같이 제한하는 것은 법률조력인 제도의 취지를 망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피의자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하는 것이라면 인적사항 등에 대한 열람·복사를 제한하는 방법으로 범위를 제한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수 지급 산정방식 까다로워= 법률조력인에 대한 보수는 변호사가 피해자를 얼마나 만났는지, 경찰조사 입회 및 검찰대질조사 참여 시간은 얼마였는지, 법정에 출석한 일자와 소요된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등 총 소요된 시간에 상응해 지급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법률조력인은 자신이 제출한 의견서는 몇 회이며, 소요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일일이 표로 작성해 법무부에 제출해야 보수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비해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하는 성폭력피해자 무료법률구조 사업은 참여 변호사들에게 형사단계 100만원, 민사단계 100만원, 가사단계 100만원 등 사건별 정액제로 운영하고 있다. 사건의 경중과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보수를 산정하는 것이 불합리한 측면도 있으나, 변호사 입장에서는 여러 무료법률구조 사건을 맡다보면 결국에는 불합리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변호사는 “사건지원에 있어서 무료법률구조 사업과 다르지 않음에도 일일이 피해자와 상담을 한 날짜, 총 시간까지 적어야 하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라며 “차라리 최소의 금액으로 정하더라도 정액으로 정해 바쁜 시간을 쪼개며 법률조력인 활동을 하고 있는 변호사들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법률조력인으로 활동하는 우리들이 돈을 벌기 위해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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