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임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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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자기이익 연연 말고 사회문제 적극 참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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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서울변회 명덕상 수상 안동일 변호사

“변호사는 민주주의 건설자입니다. 시각을 넓혀서 법조계의 이익에만 얽매이지 말고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전문가로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러면 직역 수호와 확대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겁니다.”

지난 20일 서울지방변호사회 105주년 기념식에서 명덕상을 수상한 안동일(72·군법1회·사진) 변호사를 24일 서울 서소문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근 그의 화두는 변호사의 사회적 역할이다. 그는 변호사들이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사회적 역할을 등한시 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변호사 단체들이 회원들의 먹거리와 일거리를 걱정하는 것도 좋지만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참여해주기를 바랐다.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를 맡고 있던 1987년 4월 13일 대통령이던 전두환씨가 격렬해지는 민주화 요구에 맞서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민주화 세력들이 원하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곧바로 문인구 당시 대한변협회장이 상임이사회를 소집하고 호헌 조치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의 반향은 매우 컸다. 언론이 앞다퉈 보도하기 시작했고, 문 협회장과 안 변호사는 군부정권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다. “성명은 독재 타도를 외치는 많은 시민단체와 재야단체에 힘을 주었습니다. 당시는 안기부 요원이 변협에 상주하던 시절이었죠.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성명 발표 후 안 변호사는 문 협회장과 함께 피신했다. “다행히 6·10항쟁과 6·29 선언을 거쳐 헌법이 개정됐고, 새로 들어선 노태우 정권은 당시 변협의 사회 참여를 의식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할 때 대통령이 변협회장을 독대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변협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있었던 일이죠.”

변호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소신은 4·19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생이었던 안 변호사는 시위에 참여하면서 시민들의 힘에 의해 독재정권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4·19 혁명을 겪으면서 지식인의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어요. 불현듯 이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친구와 함께 한달 동안 학교에 나가지 않고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960년 6월 4·19혁명을 생생하게 기록한 ‘기적(奇蹟)과 환상(幻想)’을 출간했다.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사회 문제에 참여하고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두 번의 변호가 있다고 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과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의 주범인 김현희를 변호한 일이다. 안 변호사는 두 사람을 변호하면서 겪었던 일들도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껴 2004년 ‘나는 김현희의 실체를 보았다’와 2005년 ‘10·26은 아직도 살아있다’라는 두 권의 책을 발간했다. “두 사건 다 실체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죠. 현장에서 보고 들은 일들을 기록하고 후세에 전하는 것도 변호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재야법조계에서는 제일 큰 상인 명덕상을 수상한 소감을 묻자, 법조와 국민들을 위해 이룬 것이 없다며 오히려 무안해 했다. “아직 쟁쟁하신 선배 변호사 분들이 많은데 예상하지 못한 상을 타게 돼 너무 당황스럽네요. 법률문화 발전을 위해 남은 생도 봉사하라는 의미로 알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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