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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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와 친고죄, 공소시효 그리고 악당들의 변호사에 대해

3

(장면)

열혈남아 A는 신문을 보다가, 그만 화가 나서 “이런 우라질!”이라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 옆에서 커피향의 향기로운 냄새에 취해있던 아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A는 변명하듯 “이걸 봐! 성폭행 한 놈을 집행유예로 풀어주지 않나,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처벌을 할 수 없다고 하지 않나, 참! 법원도 썩고, 이런 놈을 변호하는 변호사 놈들도 나쁜 놈들이야“라고 성폭행 사건이 실린 신문기사를 내밀었다.

A의 아내가 생각하기에도 우리나라 법원은 너무 성폭행에 너무 관대한 것 같았다. 그리고 왜 변호사들은 저런 나쁜 인간들을 변호하는지, 돈이면 다 인지 씁쓸해졌다.

과연 A 부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사법부가 생각이 없는 것일까.

1. 이번 호는 요즘 여러 가지 이슈로 촉발된 성폭력에 관대한 법원의 이유와 변호사들의 행태에 대해 잠깐 이해의 말씀을 드리려고, 사안을 만들었습니다.

일단 미성년자나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에 대해서는 엄벌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백번 동의합니다. 또한 우리 법원의 양형이 성폭력에 대해 조금 관대한 면이 있다는 것도 동의합니다. 이러한 것은 남성 중심적 사회의식의 반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호에서 설명 드리려고 하는 것은 왜 피해자와 합의를 하면 집행유예를 남발하느냐, 공소시효를 왜 만들었느냐, 왜 변호사들은 저런 파렴치범들을 변호하느냐에 대해 일반의 이해를 좀 구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친고죄나 공소시효에 대해서는 이러한 제도가 생긴 이유를 알지 못하고, 지금 문제가 된 사건의 관점에서 비난하는 것은 경솔하다고 봅니다. 하나의 제도가 성립한 것은 그 당시로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고, 이제 와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려면 성립 당시의 사정이 이제는 달라졌느냐는 검토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2. 성폭력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가하는 성적행위가 문제된 것으로서 피해자의 의사가 대단히 중요한 범죄입니다. 예컨대 강간죄는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인데, 이는 범죄사실의 공개로 피해자에게 더 큰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염려한 규정입니다. 강간죄를 친고죄로 한 큰 이유는 피해자의 명예를 고려한 것이죠. 이러한 친고죄의 경우 고소를 했다가, 나중 고소취소가 있으면 검사는 불기소처분을 하여야하고, 1심 재판 중에 고소취소가 있으면, 공소기각의 판결이 내려집니다. 그래서 고소취소를 위하여 가해자는 당연히 피해자와의 합의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강간치상이라든지,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의 특수강간 등의 범죄는 친고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하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지를 따지게 되는 것은 법원의 태도 때문입니다. 합의를 하면 많은 경우에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하거나 양형에 참작하여 좀 가볍게 처벌합니다.

그럼 법원은 왜 그럴까요?

그것은 피해자를 생각해서입니다. 기왕 피해는 입었지만, 법의 힘을 빌려 손해배상을 받게 해주려고 해서입니다. 물론 나중 민사절차를 통하여 손해배상을 받는 수도 있지만, 가해자가 자력이 없다든지, 재산을 빼돌려놓았으면 낭패입니다. 그래서 다른 자력이 있는 부모 등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주는 조건으로 법원이 처벌을 좀 가볍게 하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배상을 받는 대신 고소를 취소하거나 합의를 해주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성범죄의 비친고죄화나 피해자의 고소취소가 있어도 실형을 선고하여야한다는 일각의 견해는 이해는 되지만, 실제 법의 이면에서 손해배상이라도 받고 싶어 하는 피해자의 안타까운 사정을 법원이 감안해주고 있는 속사정이 있는 것입니다. 즉, 합의를 위해 돈을 내놓으면 살길이 생기는 가해자의 돈으로 피해자가 손해배상이라도 쉽게 받을 수 있게 해주려는 것이지요. 최근 정부는 장애인 성범죄는 친고죄에서 제외하는 것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친고죄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피해자의 명예를 고려한 것 입니다. 성범죄 피해 사실이 공공연히 밝혀지면 성범죄 피해자가 더욱 비참해질 수 있는 문화적, 사회적, 심리적 현실을 직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처벌해달라는 고소가 있어야 국가가 나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장애인 성범죄의 경우는 성범죄를 당한 것이 사회에 공개되었을 때 성범죄 피해를 당한 장애인을 향해 오히려 뒷전에서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을진대, 이러한 장애인의 명예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고 무시해도 좋을 것인지요. 어떤 피해자는 가해자의 처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피해사실이 공개됨으로써 본인의 인생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 견해로는 성범죄의 경우 친고죄로 그냥 두고, 다만 장애인의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고소를 하고 싶어도 여건상 할 수 없을 수도 있으므로, 성범죄 첩보가 있다면 수사기관은 고소가 없다고 수사 자체를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수사 개시 전에 수사기관 중 독립적인 전담 성범죄상담부에서 우선 진지하게 피해자에게 고소를 하겠는지를 확인의 절차를 거친 후 수사 여부를 결정하였으면 좋겠습니다.

3. 그럼 공소시효가 무엇인데, 악당들을 처벌하지 못한다고 할까요?

공소시효란 어떤 범죄에 대하여 검사가 일정 기간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형사사건을 방치하는 경우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공소시효 제도를 둔 취지는 범행 후 시간이 오래 흐를수록 증거가 없어져서, 이제 와서 진범을 찾기가 너무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피해자나 목격자가 세월이 좀 지난 후 직접 범인을 지목한 경우에도 사실상 기억의 왜곡이 일어나서 억울한 일이 심심치 않게 생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어린 아이의 기억과 증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왜곡이 되기 쉬운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세월이 너무 흐른 후 억지로 범인을 잡으려하다가 오히려 억울한 일이 벌어지기 쉽다는 점에서 공소시효란 제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시간의 경과로 인하여 처벌필요성이 감소되었다거나, 장기간의 도망생활로 인하여 처벌받은 것과 같은 상태가 되며, 국가의 태만으로 인한 책임을 범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를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라에 따라 공소시효에 대한 태도는 다르지만, 국제적으로도 전쟁범죄나 집단살해죄와 같은 경우는 공소시효가 배제되고 있습니다.

4. 우리는 악당들을 침을 튀기며 변호하는 변호사들을 봅니다. 그래서 악당의 친구도 악당이므로, 그 변호사들을 욕하며, 심지어는 변호사 사무실 앞에서 시위까지 하면서 결국 사임하게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 변호사들은 그렇게도 욕을 먹어야 할까요?

변호사는 자기가 사건을 맡기 싫다면 당연히 수임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뢰인이 악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는 것은 국민들의 법감정에는 부합할지 몰라도 변호사로서의 윤리에는 오히려 저촉되는 것입니다. 일단 의뢰인이 악당이라는 것은 누가 판단한 것입니까? 언론과 여론에 의해 악당이라고 최종 결정되는 것은 형사소송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호사는 변호시 진실을 적극적으로 왜곡하여서는 안되지만, 변호활동을 하던 중 의뢰인이 유죄임을 개인적으로 알았더라도 이를 검사나 법원에 알릴 의무가 없다는 침묵의무가 있습니다. 변호사들이 수임하여도 좋을 의뢰인인지 여부를 불확실하고 변덕스러운 여론이 결정하는 사회라면 이미 법치주의에서 야만으로의 퇴행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 피해는 어쩌면 악당의 변호사들을 비난하는 여러분이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런 비난 가운데는 돈만 아는 변호사란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중죄인에게 사선변호사가 없으면, 법률상 국선변호사를 선임하게 되어있는데, 국선변호사도 양심상 악당을 옹호할 수 없다고 수임을 거절하여야 하나요. 그렇지 않다면 악당을 직무상 변호할 수밖에 없는 국선변호사는 비양심적인 변호사가 되나요. 비록 우리의 본능적인 정의감에 어긋나는 면이 있지만, 형사소송의 역사상 악당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그를 변호해줄 변호사란 존재의 당위성이 인정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위 글은  제가 작년 국회보에 법률칼럼을 연재하던 중에 기고했던 글입니다(국회보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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