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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관 후보 청문회 중간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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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적 소신 묻기보다 정치색 짙은 질의…‘부실 청문’ 못 면해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위원장 이상민)는 11일 민주통합당이 추천한 김이수(59·사법연수원9기)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사형제 폐지 문제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복무 문제 등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자질과 전문성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김 후보자는 사형제 폐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생명권이라는 건 절대적 기본권”이라며 “만약 오판으로 인해 사형을 집행한 경우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기에 가급적 사형은 피해야 한다”고 답했다. 사형제 폐지의 대안을 묻는 질문에는 ‘가석방 없는 절대적 부정기형’을 답으로 내놓았다.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김 후보자가 광주 31사단 검찰관으로 복무한 사실을 지적하며 “군부정권에 협력한 것 아니냐”고 묻자 “계엄법에 따라 재판을 맡았는데 안 맡았으면 좋았을 재판”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광주 사람으로서 항쟁에 참여해야 할 입장이었는데 재판을 맡게 됐다. 아주 복잡한 입장이었다”며 “상황이 엄중해 재판을 안 하겠다고 전출을 요구하거나 칭병하고 드러누울 상황도 아니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박영선)는 10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한 김창종(55·사법연수원 12기)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했다.

    김 후보자는 사형제에 대해 “가석방이나 감형없는 종신형 제도가 도입된다는 전제하에 사형제의 폐지 여부를 국민적 합의에 따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사형제 자체는 위헌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성범죄자에 대한 물리적 거세 방안에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신체적 훼손을 가하는 형벌인데다 한번 훼손을 하면 영구히 복구할 수 없게 된다”며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지금까지 마련된 여러 제도를 통해 교화·치료를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인사청문회를 두고 ‘부실 청문회’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청문 위원들은 후보자의 도덕성이나 소수자 보호, 인권 문제 등 헌법적 주제에 대한 소신을 묻기 보다 ‘유신헌법’이나 5·16 군사정변’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등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색 짙은 질문으로 변죽만 울렸다.

    한 의원은 “정당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과거 재판관들이 자신을 추천한 정당에 유리하도록 재판을 한 경우가 종종있다. 후보자는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턱없이 짧은 준비기간도 문제다. 국회는 자신들이 추천한 김이수, 안창호, 강일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특위도 지난 5일에야 겨우 구성했다. 1주일도 채 안 되는 기간에 무려 3명의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을 준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양 대법원장이 지명한 강일원 후보자에 대해서는 11일까지도 인사 청문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 김이수 후보자 모두발언

    존경하는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이상민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무엇보다 먼저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제가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에 추천된 것만으로 더없는 영광이지만 저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신 것을 생각하면 송구스럽기도 합니다.저는 제 한평생을 국민을 대표하는 위원 여러분께 평가받는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청문회에 임하는 저의 마음과 자세가 국민과 위원님들께 충분히 전달될 수 있도록, 오늘 위원님들의 질의에 대해 제가 가진 모든 생각을 정성을 다해 진솔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존경하는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

    저의 고향은 전라북도 고창입니다. 농업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자랐습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부모님의 높은 교육열로 아홉형제, 자매 모두 고등교육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법관이 돼 올바른 판단으로 사회 정의를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나이 어린 초등학교 시절부터였습니다. 중고등학교는 광주로 진학하였으며, 이 시절 존경하는 은사님들을 만났고, 밤새워 자신의 이상을 이야기하면서 우정을 쌓았던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제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던 1972년은 유신이 단행되던 해였습니다. 순탄할 수 없는 유신의 시대에 많은 사람이 민주화운동에 헌신했지만 저는 법관의 꿈, 이루고 싶은 꿈을 포기할 수 없었고, 마침내 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사법연수원을 제9기로 수료한 후 군법무관을 거쳐 1982년 판사로 임관하였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사귀어 오던 아내와는 연수원 시절 결혼을 하였습니다.

    1980년 5월,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광주 소재 부대의 군검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현장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5월 27일 도청이 함락된 후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주검의 검시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이 주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비장함 속에서 제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시신의 상태와 사망 원인을 정확하게 조사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하고 성실하게 기록하는 것, 그것이 광주 영령들의 억울한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고 또 역사 속에서 올바르게 평가받도록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염원했던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는 제가 지금까지 판사 생활을 하는 동안 줄곧 큰 기둥이자 버팀목이 돼왔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지난 30년의 판사 생활은 좋은 재판은 무엇인지, 법관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담담한 가운데에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사법연수원 교수로서 근무했던 3년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영재들을 만나 균형잡힌 인격과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사회정의와 법치주의 실현에 헌실할 법조인을 양성하는 데 큰 행복을 느꼈습니다. 더욱이 판사 생활의 마지막 시기에 사법연수원장으로 봉사할 기회를 주신데 대해서는 나라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

    저는 평소 법관은 법을 바르게 적용해 법을 어긴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응분의 제재와 처벌을 하고 피해를 본 사람에게는 응분의 배상과 보상을 하며, 나아가 치유와 회복에까지 관여하는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야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즉, 법과 법관은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해야하고 특히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그리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역할이 더욱 제고돼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국민의 권익이 경시되었을 때에는 법률을 자구 그대로 해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법률의 목적이나 정신에 입각한 구체적 타당성 있는 해석을 통해 국민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국민이 사법권을 법관에게 위임한 이유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법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저는 무엇보다도 균형감각과 적절한 소송지휘를 통해 소송당사자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 기울이고 정확한 사실인정의 토대 위에서 설득력 있는 판단을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는 30년 동안 법관의 길을 걸으면서 정의로운 재판과 법관의 역할뿐만 아니라 법관의 올바른 업무수행자세에 관해서도 답을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저는 평소 논어의 계씨 편에 나오는 유구사(有九思), 즉 군자가 깊이 생각해야하는 아홉가지를 법관이 갖춰야할 자세로 여겼고, 후배 법관들에게도 기회가 될 때마다 소개했습니다. 그 중 사물을 볼 때에는 밝고 정확하게 보려고 생각한다는 시사명(視思明), 일 처리를 경건하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사경(事思敬)의 자세는 제가 만약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선출된다면 더욱 각별히 유념해야할 재판관의 자세일 것입니다.

    한편 법원장으로서 사법행정을 담당한 6년의 기간은 저에게는 소통과 봉사를 위한 기회였습니다. 특히 청주지방법원 판사들과 함께 교도소를 방문해 재소자들에게 크고 작은 억울한 사연을 듣고 형사재판을 개선하려고 했던 일, 판사들이 초등학교 학생들의 멘토가 되고, 학생들과 함께 법을 주제로 한 영화를 제작했던 일, 홀몸 노인과 장애인 가정에 도시락과 연탄 등을 배달한 일이 기억납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법원이 재판의 영역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다가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만이 사법불신을 해소하고 좋은 법원 나아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국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헌법적 분쟁을 신속히, 그리고 종국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극복하고, 국가 사회를 통합해야하는 소명이 있습니다. 특히 많은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이 점점 더 헌법재판소로 집중되고 있는 어려운 시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책무를 수행하려면 사회현상과 법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 필요하고 주권자인 국민의 참된 의사가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과연 이와 같은 엄중한 책무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청문회를 거쳐 국회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선출된다면, 저는 지난 30년 동안 실천하려고 했던 법관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재판과 사법행정을 통해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토대로 재판관의 직무에 헌신하겠습니다.

    국민의 작은 목소리에 소홀함이 없이 귀 기울이고, 국민의 참된 의사와 시대정신이 어디에 있는지 늘 고민하고 성찰하는 낮은 자세를 견지하겠습니다.

    이념적 대립과 사회적 갈등에 직면해서 중립성과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겠습니다.

    헌법을 해석, 적용하는데 있어서 갈등보다는 화합을 추구하고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미래를 지향함으로써 국민이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정의로운 나라라고 자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조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그리고 여러 위원님!

    저는 저 나름대로는 지난날 법관의 자세와 본분을 다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돌이켜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오늘 청문회에서 위원님들께서 주시는 조언과 충고를 국민의 뜻으로 겸허히 받아들여 제가 앞으로 어떤 일을 담당하는지 그 말씀들을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끝으로 저에 대한 청문절차에 귀하신 시간을 내어주신 위원장님과 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9.11

    헌법재판관 후보자 김이수

     

     ■ 김창종 후보자 모두발언

    존경하는 국회 법사위 박영선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먼저 저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위해 바쁘신 가운데도 귀중한 시간을 내어주시고,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위원장님과 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헌법 수호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관 후보자로서 이자리에 서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무한한 책임감 또한 느낍니다.오늘 이자리는 국민의 대표이신 위원님들로부터 제가 과연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를 검증받는 자리인 만큼 저는 진실하고 겸손한 자세로 이 청문회에 충실히 임하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저는 1956년 경북 선산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그 곳에서 성장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대구로 유학 나와서 영신중. 고등하교와 경북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군법무관을 마친 후 1985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한 이래 27년 동안 묵묵히 재판업무에만 전념하였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또 법관의 외길을 걸어오면서, 인간은 존엄하고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의 이념과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수호를 명한 헌법적 사명 역시 제가 걸어온 외길만큼이나 변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라고 믿어 왔습니다.

    제가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면서 언니의 병간호 및 가사 일을 돕기 위해 부득히 언니의 집에서 근무장소를 출근하다가 사고를 당한 공무원에게 통근 재해를 인정한 사건이나 노동조합이 주최한 노조체육대회에 참가했다가 부상을 당한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사건, 그리고 산업연수생으로 기숙사에서 잠을 자다 사망한 베트남인의 유족급여 지급청구권을 인정한 사건 등은 모두 우리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 인권의 보장, 특히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의 권리보호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자한 작은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저는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그 덕분에 어릴 때부터 스스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인내심을 배웠고, 누구보다 강한 의지력을 키울 수 있었으므로 감사했습니다.

    과거 풍족하지 못했던 그 시절, 우리나라 형편상 저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국민들이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로서는 현대적 헌법이 추구하는 복지국가의 이념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기초생활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국가는 그 역량이 허락하는 한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헌법적 책무를 다해야합니다.

    저 역시 그와 같은 입장에서 현대 복지국가 헌법의 이념이 재판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 재직 당시 ‘부양능력있는 자식이 연락을 끊고 경제적 지원을 거부한 사건에서 국가는 부모에게 사회복지 서비스 혜택을 제공해야한다’고 판결한 것 역시 같은 취지였습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저의 법관으로서의 삶 외에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돌아보면,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던 굴곡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낯선 도시에 나와 중학교때부터 대학졸업 때까지 가정형편상 10년간 자취생활을 하고, 그 기간동안 13번에 걸쳐 직접 이삿짐을 나르며 사글세방을 전전하던 시절, 장학금을 받지 않고는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집안사정 때문에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 원하는 대로 법대에 진학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관으로서의 삶을 꿈꾸며 원대한 포부를 키우던 시절, 순박하고 착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소박한 삶에 만족해하던 시절, 그리고 2002년 김해에서 발생한 중국 민항기 사고로 장인, 장모님, 처형 내외, 그리고 처남 등 다섯 분을 한꺼번에 읽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겪은 시절, 특히 2002년 항고기 사고는 제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인간 생명권의 존귀함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다시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저의 순탄해 보이는 삶 가운데 혹 잃어가는 듯한 법관으로서의 초심을 다시 한 번 다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제가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이자리에서 말씀드리는 것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소소한 굴곡이 있는 삶,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삶이라도 바로 이러한 한 개개인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고 그것이 헌법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저는 헌법재판관이라는 직책이 헌법의 가치와 이념을 구현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며,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는 자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편견없는 열린 마음과 인간 및 사회현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 필요하고, 사회의 갈등과 다양한 가치관을 조정할 수 있는 중립성과 포용력을 갖춰야할 뿐만 아니라, 헌법가치를 굳건히 지켜나갈 수 있는 확고한 신념을 갖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과연 이와 같은 막중한 책무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 지를 생각하면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하지만 제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다면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헌법적 정의가 넘치고 헌법이념과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제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 위원님들께서 저에게 지적해 주시고 충고해 주신 소중한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앞으로 맡겨진 소임과 책무를 다하는데 밑거름으로 삼겠습니다.

    오늘 청문회를 위해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 주시고, 경청해 주신 위원장님과 위원님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2.9.10

    헌법재판관 후보자 김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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