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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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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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민주주의제도 하에서 국민은 자유의사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한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국회는 법률을 제정하며,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는 그 법률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국가정책을 입안·집행한다. 국민 스스로 선출한 대의기관 활동이 국민들의 삶을 관통하는 것이다. 일찍이 루소는 영국의 상황을 빗대어 “국민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지만 이는 중대한 실수다. 국민은 의회 의원 선거를 할 때에만 자유로울 뿐, 그 선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다시 노예가 된다.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설파하며 대의제 민주주의 대신 직접민주주의의 도입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국민의 의사를 국가의사로 실현하기 위한 정치도구로서 대의제 이외의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인류의 지난 역사와 경험이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대의제는 현실적인 최선의 대안이지 완전무결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로 구성된 대의기관이 제정한 법률이나 그 집행행위가 언제나 국민의 권리와 이익에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 그들에게 합법적인 권한을 부여한 국민들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될 수 있으므로 대의기관의 권한남용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헌법재판소는 법률이나 집행행위가 헌법에 합치되는지 또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한 구속력 있는 판단을 함으로써 대의기관의 권한남용을 막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기여하는 매우 중요한 권한과 책임을 가진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본연의 역할과 존재의의를 여실히 보여주는 용기 있는 결정을 잇달아 내린 바 있다.

2012. 8. 23. 헌법재판소는, 특허권 등의 침해로 인한 민사소송에서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제한한 변리사법 제8조와 부녀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자 중 ‘조산사’가 포함된 형법 제270조에 대하여는 합헌결정을, 일일 평균 이용자수가 10만 명 이상인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게시판을 이용하는 자에 대한 본인확인조치의무(‘본인확인제’)를 부과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5 제1항 제2호 및 동시행령 제29조, 제30조 제1항에 대하여는 위헌결정을 하였는데, 이들 사건은 모두 그 동안 국민들에게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변리사 사건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라고 규정하는 변리사법 제8조는 변리사라는 자격의 형성에 관련된 것으로서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이 인정되므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자의적으로 규정된 때에만 위헌인데, 특허심판원의 심결에 대한 취소소송처럼 특허권 등의 발생, 변경, 소멸, 효력범위에 관한 소송에서는 변호사 외에도 전문성을 갖춘 변리사에게 소송대리를 허용하되,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법률적 쟁점이 얽혀 있는 특허침해소송에서는 공공성과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갖춘 변호사에게만 소송대리를 허용함으로써 적정한 심리와 신속한 진행 및 당사자의 권익보호를 도모하는 데에 입법취지가 있으므로, 그 합리성이 인정되어 입법재량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이고, 변리사에 대한 자의적인 차별이 아니다”라고 판시하였다. 살피건대, 위 조항은 결코 “특허 등에 관한 사항이 관련된 소송이라면 모든 소송에서 제한 없이 변리사의 소송대리가 허용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산업재산권 중 위 조항에 명시된 권리들의 보호범위에 관한 사항이 주되거나 유일한 쟁점으로 다투어지는 소송으로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범위를 한정”한 것이다. 변리사는 특허법 등 관련 법령에 의하여 특허권 등의 출원, 등록 및 특허심판원에서의 심판사건 대리를 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특허권 심결취소소송에서는 그 심리사항이 특허법 제29조의 특허요건에 해당하는 산업상 이용가능성, 신규성, 진보성 등이므로 특허권 등에 대한 전문성이 더욱 요구되어 변리사의 소송대리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그러나 이와 달리 특허침해소송은 손해배상, 침해금지, 가처분, 부당이득반환, 신용회복청구 등이 포함되고 복잡다단한 입증책임, 과실상계 등도 적용되어 오직 법률전문가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고유영역이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 외에는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는 민사소송법 제87조를 충실하게 해석하고, 헌법을 최상위로 하는 법률간 체계정당성을 구현한 판단으로, 이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한편 조산사에 대한 동의낙태죄 처벌조항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법정형 상한이 2년 이하의 징역으로서 높지 않고, 죄질이 가벼운 경우에는 달리 감경을 하지 않더라도 선고유예나 집행유예가 가능하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임무에 종사하는 조산사가 오히려 그 생명을 박탈하는 시술을 한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크므로 비록 벌금형을 선택형으로 규정하지 않았더라도 형벌체계상 균형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낙태죄 처벌조항의 사문화 논란에도 불구하고, 생명권은 헌법상 인정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의 전제가 되는데 이는 태아라고 하여 다르지 않으며, 실상 대부분의 낙태행위가 조산사를 포함한 의료전문가에 의해 행해진다는 점에서 낙태만연과 인명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원칙적으로 일리가 있다. 그러나 반대의견을 제시한 재판관들의 의견과 같이,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여 낙태를 허용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이를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할 여지가 크며, 이러한 점은 임신 초기에 임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시술을 한 조산사를 처벌하는 조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태아의 생명권을 중시한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이 혹시나 임부나 조산사의 권리 침해 최소성 원칙에 반하는 것은 아닌지 소수의 의견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인터넷 게시판 본인확인제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불법정보를 게시한 가해자의 특정은 인터넷 주소 추적으로써, 피해자 구제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 의한 삭제·임시조치, 게시판 운영자에 대한 불법정보 취급의 거부·정지 또는 제한명령,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또는 형사처벌을 통해 본인확인제가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본인확인의 대상인 ‘게시판 이용자’는 정보의 게시자에 그치지 않고 불법행위를 할 가능성이 없는 정보의 열람자도 포함하고 있으며, 적용 대상인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선정도 그 정확성과 기준이 불분명한 이용자 수 산정 결과에 따르도록 함으로써 자의적인 법집행이 가능할 뿐 아니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본인확인정보 의무보유기간이 정보 게시 종료 후 6개월이어서 그 정보를 삭제하여 게시를 종료하지 않는 한 무기한으로 본인확인정보를 보유할 수 있으므로, 본인확인제 관련 조항들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하여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언론의 자유 등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고 판시하였다. 살피건대, 표현의 자유는 개성의 신장과 정치민주화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기본권이므로 이를 제한하는 입법으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이 명백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본인확인제로 인하여 명예훼손 등의 불법정보가 의미 있게 감소하였다는 증거가 없고, 본인확인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모바일 게시판이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 새로운 의사소통수단이 등장함에 따라 본인확인제는 그 공익을 인터넷 공간의 매우 협소한 영역에서만 실현되는 상황이다. 반면, 국내 인터넷이용자들의 해외사이트로의 도피 및 국내사업자와 해외사업자간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켰고, 이용자들은 본인확인에 따른 규제나 처벌을 우려하여 표현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이나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재외국민은 아예 게시판을 이용할 수도 없고, 모바일 게시판 등 새로운 의사소통수단과 경쟁하여야 하는 게시판 운영자는 불합리한 차별을 당하며, 개인정보 유출 우려 또한 높아졌다는 점에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은 타당하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이지만 그 책임을 져버릴 때에는 최후의 권리침해자가 된다. 그간 정치권의 분쟁으로 1년 넘게 재판관 1명이 공석인 채로 유지되던 헌법재판소가 그 상처를 딛고 국민의 낮은 목소리에 귀기울여 당당하게 국민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결정들을 연이어 선고한 용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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