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임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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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는 직업 아닌 자격… 변호사 자격 가진 사업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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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끝없는 도전과 변신의 ‘열혈남아’ ‘보고펀드’ 대표 박병무 변호사

    박병무 보고펀드 대표는 스스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신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한마디로 ‘열혈 남아’다. 변호사라는 타이틀은 직업이 아니라 단지 자격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변호사직을 뒤로 하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투자업계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뽑은 투자 전문가 상위 5위에 꼽히게 됐다.‘변호사로 기억되고 싶은지, 기업가로 기억되고 싶은지’라는 우문에 ‘변호사 자격을 가진 기업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박 대표를 지난달 24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금은 투자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시절은 오랜 시간을 보낸 변호사 시절입니다. 지금도 변호사들, 특히 김앤장에 있는 분들을 만나면 친정식구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죠. 김앤장의 변호사 시절은 친정과 같고 지금은 다른 데에 시집와서 고생하고 있는 거죠.” 2010년 10월 보고펀드의 공동대표에 취임한 박병무(51·사법연수원 15기·사진) 대표는 사업가로 변신한 자신을 시집살이 하는 것에 비교했다. 스스로 원한 길이었지만 남다른 고충을 겪은 탓이다.


    박 대표는 그의 삶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의 소유자다. 학창 시절에 그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한 시간 가량 걸리는 통학길을 친구와 같이 걸어가면서 공부를 하던 학생이었다. 집은 서울 하월곡동이었고, 학교는 정릉동의 대일고등학교였다. “버스를 타도 정류장에 내려서 30분 이상 걸어야 하는 곳에 학교가 있었죠. 그래서 아예 집에서부터 걸어서 등교를 했습니다. 걸어 다니면서 친구들하고 놀기도 하고, 서로 시험 문제를 내고 답하는 식으로 공부를 하기도 했죠.”

    하지만 공부만 열심히 한 ‘범생’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죠. 체격이 커서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선배들이 동아리 가입을 권유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름도 웃기는 ‘빅스타’, ‘맘모스’라는 불량 동아리였죠. 가입은 안 했지만 그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어요.”

    일화도 소개했다. “중학교 학생회장을 하던 때였어요. 옆 학교에 몇 해 유급을 한 건달같은 학생이 있었는데 인근 학교 학생들을 많이 괴롭혔어요. 친구 몇 명이 몰려가서 혼을 내줬는데 그게 학교 간 패싸움으로 번지고 말았죠. 두 학교 사이에 있던 다리 위에서 20~30명이 떼로 싸웠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선생님들께 꾸중을 심하게 들었지요.”


     

    학교 성적은 매우 좋았다. 1980년 박 대표는 서울대 전체수석을 차지했다. 당장 언론의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때문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만다. “여러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어떻게 공부했냐는 질문에 천편일률적으로 대답하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불쑥 학교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과외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해 버렸는데 그 일이 일파만파로 커졌지요. 당시 정권을 잡은 신군부 세력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던 과외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건 상태였고, 결국 한국전력공사 이사였던 아버지께서 자리에서 물러나셔야 했습니다.”

    우발적으로 시작된 사건은 심각하게 전개됐다. 열렬한 야당 지지자였던 박 대표의 아버지는 진작부터 정권의 눈 밖에 난 상태였고, 아들의 과외 발언이 빌미가 돼 숙청되다시피 쫓겨났다. 모든 경제 활동의 길이 막힌 상태에서 박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사법시험에 빨리 붙는 것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골수 야당 성향 공무원이셨는데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씨의 눈 밖에 나 숙청된 것이라고 생각하셨지요. 공직에서 물러나면서 3년간 취직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워졌죠. 그래서 사시 준비를 일찍 시작하게 됐습니다.” 박 대표는 3학년 때인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에서도 질긴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사법연수원 시절 전두환 정권이 연수원 생활과 훈련소 태도를 보고 절반은 법무관으로, 나머지 절반은 행정장교로 보내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어요. 정부와 군에 비판적인 연수원생들이 많이 나오자 나이가 많거나 정치적 의식이 있는 이들을 길들이겠다는 속셈이었죠.”

    박 대표는 곧바로 젊은 연수원생들과 함께 단체행동에 나섰다. “단체로 행정장교로 지원하기로 한 거죠. 사법연수원장께 많이 혼났습니다. 정부에서도 조사에 나서 강하게 압박했지요. 하지만 다행히 단체행동의 효과가 있었는지 행정장교의 비율을 상당히 줄이고, 법무관과 행정장교 후보를 같은 장소에서 훈련하는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가정형편 어려워 司試준비… 대학3년때 최연소 합격

    사법연수원 성적 좋았지만 판·검사 싫어 로펌 선택

    우연한 기회 M&A 분야 눈 떠 ‘전문변호사’로 활동

    사법연수원 성적은 좋았지만 박 대표는 로펌행을 택한다. “부모님은 판·검사가 되기를 바라셨지만 당시 시대 상황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게 했습니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좁더군요. 그나마 로펌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대학 졸업 때까지 김앤장에서 판례를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 인연으로 김앤장을 들어가게 됐습니다.”

    변호사시절 박 대표는 인수·합병(M&A)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M&A 분야는 우연하게 뛰어들었어요. 1996년 신원이라는 회사가 서울 명동의 제일백화점을 인수하기 위해서 제일백화점의 소유주인 제일물산 주식을 사들이는 적대적 M&A를 했습니다. 그 사건에 우연히 참여하게 됐습니다. 당시 시가 150억원밖에 안 되는 제일물산 주식을 사들여 400억원 가량인 제일백화점을 얻게 됐으니 상당한 논쟁 거리가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적대적 M&A 전성시대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첫 적대적 M&A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로 박 대표는 종합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한 여러 적대적 M&A 사건에서 공격과 방어 측을 오가며 활약하게 된다. 그렇게 박 대표는 M&A 분야 전문가가 됐다.

     

    2000년 변호사 업무 그만 두고 기업 경영가 길로

    ‘로커스 홀딩스’ ‘하나로 텔레콤’ 대표 연이어 맡아

    2010년 투자업계 투신… 투자전문가 상위 5위 랭크

    하지만 2000년 박 대표는 돌연 변호사를 관두고 로커스 홀딩스라는 지주회사의 대표로 취임한다. “당시 시가 총액이 1조원에 달했던 로커스라는 IT회사의 대주주가 제 중학교 동창의 추천을 받아 저에게 로커스의 지주회사인 로커스 홀딩스 대표 자리를 제안했죠.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집요한 설득에 넘어갔습니다. 처음 1년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마침 IT 거품이 꺼져 여러 모로 어려운 시기였죠. 운좋게도 영화제작사인 시네마서비스와 게임제작사인 넷마블을 인수하게 됐고, 정상적인 운영도 가능하게 됐죠.”

    2006년부터는 하나로 텔레콤 대표직을 맡았다. 하지만 그 시절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박 대표는 2008년 4월 고객 정보 수천만 건을 본인 동의 없이 다른 업체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입건됐다. 이듬해에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박 대표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싫어했다. “검찰 수사 때에는 여러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를 했죠. 친분이 있는 기자들에게 부모님이 걱정하시니 실명이라도 빼달라고 했지만 안 되더군요. 이미 하나로 텔레콤을 나온 상황이었고, 또 하나로 텔레콤이 이미 SK텔레콤에 인수된 뒤였기 때문에 검찰 수사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그때는 언론에서 관심을 거둔 뒤라서 거의 보도가 안 됐죠.” 박 대표는 당시 충격으로 2년간 사업가로서 활동을 중단했다가 2010년 보고펀드의 공동대표에 취임했다.

    그는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어려운 시대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진취적으로 생각했으면 합니다. 저는 요즘엔 과실을 다 같이 나누는, 사회주의적 색채가 있는 기업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글=임순현·사진=홍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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